
희망의 노래(용마산, 아차산)
2017.02.06 14:11
희망의 노래
2017년의 첫 해가 한 달 전에 떴고, 설도 지나고,
그제가 입춘(立春)이었다.
진짜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이 시작된 것이다.
닭의 목을 아무리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
대한(大寒)을 전후하여 맹위를 떨치던 엄동설한도 결국
한 발짝씩 다가오는 봄의 전령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입춘이 되면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김)의
입춘방(立春榜)을 집의 현관에 붙이는 것을 아직도 미신이라고 터부시할 만큼 편협한 사람들이 설마 있지는 않으리라.
建陽多慶(건양다경)도 물론 좋지만,
대신 올해는 특히 國泰民安(국태민안 :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의 방(榜)을 붙이면 더 좋지 않을까.
각 가정집에는 건양다경을 붙이고 광화문에다 국태민안을 붙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남쪽에는 어느 새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아직 매화를 보기 어려운지라,
꿩 대신 닭이라고
입춘인 지난 주말에 용마산(龍馬山)과 아차산(峨嵯山)을 찾았다.
두 산은 한양의 동쪽 외사산(外四山)에 해당하는데,
용이나 말이 뛰노는 것도 아니고(용마산) 설악산처럼 높고 험준한 것도 아니건만(아차산)
이름만큼은 두 산 모두 거창하다.
이름이야 어떻든 이날 같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마냥 상큼하기만 한 날씨에는
두 산이야말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높이의 산으로 산행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등산객들로 붐볐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로 가장 많이 변한 것 중의 하나가
각 자치단체가 관할구역 내에 산들의 등산로를 정비한 것이 아닐는지.
거기에 제주 올레길의 열풍이 더해져
서울도 안팎의 산에 가보면 등산로가 참으로 잘 닦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용마산과 아차산도 마찬가지였다.
용마산을 관할하는 중랑구청과 아차산을 관할하는 광진구청이 경쟁이라도 하듯,
경사가 급한 곳에는 나무 계단이나 데크를 설치하고
울퉁불퉁한 곳에는 멍석을 깔아 놓아 걷기가 편했다.
작은 일 같아도 시민을 위한 행정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엉뚱한 데 돈 낭비하지 말고 시민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일에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가가 할 일이 아닐까.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환이 서린 아차산은 비록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한강을 굽어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그런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임에도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로 인해 한강이 뿌옇게 보여 안타까웠다.
잠실벌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는 윗부분만 희미하게 보이는 게
마치 지상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공중으로 치솟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마저 맑았더라면 정말 멋진 입춘 산행이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웠다.
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아직 날아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올해도 “하늘실종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 뿌연 하늘이 마치 작금의 나라 형편 같아서 마음이 더욱 편치 못하다.
그래도 명색이 새 봄을 알리는 입춘인데
어느 시인처럼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현실이 암울하다고 희망마저 잃으면 정말 암흑의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 말이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죄악"이라고 하지 않던가.
입춘
유승희
봄 앞에서 선 날
새 봄에
아차산 산행 중 한 보루(堡壘)에서 묘한 정경을 발견했다.
돌 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이 분명 성황당인데,
맨 위에 미륵불이 좌정하고 한강을 굽어보고 계신 모습이 범상치 않다.
그냥 다듬지 않은 돌을 올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순간 그 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체유심조 아니던가.
사진을 보고 나서
"자고로 난세에는 미륵불을 찾게 되고, 성황당은 그런 백성의 마음"
이라고 하신 임권택 감독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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