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圖(세한도)

2018.12.09 10:42

우민거사 조회 수: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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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글귀이다.

글씨체는 예서 죽간체(竹簡體).

       

   

이 글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이다. 추사는 어떻게 세한도를 그리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스승 추사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끈끈한 의리가 담겨 있다.

 

    이상적은 통역, 번역을 담당하는 관리인 역관(譯官)이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다방면에서 빈번하게 교류를 하던 터라 청나라 말에 능통한 역관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추사는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수도인 연경(지금의 북경)을 드나들었다. 그는 청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조선 최고의 학자로 성장했다. 특히 금석학(金石學)과 서화(書畵)에 관한 명성은 청나라에서도 드높았다. 그는 자연히 역관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추사와 이상적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상적은 조선의 대표적인 역관이었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연경의 문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시인이기도 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조선 최고의 지식인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추사였지만,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동김씨의 미움을 사 제주도로 유배된다. 1840년 그의 나이 55세였다. 한양에서 가장 먼 제주도, 유배형 중 가장 무거운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것)에 처해졌다. 이제 추사는 가시나무 울타리 밖의 세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친구들도 떠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작별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완전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추사를 유일하게 잊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자인 역관 이상적이다. 이상적은 청나라를 드나들며 최신 서적을 구하여 변함없이 추사에게 보내 주었다. 스승인 추사에 대한 이상적의 한결 같은 태도에 감동한 추사는 1844년 생애 최고의 명작을 이상적에게 남긴다. 그게 바로 歲寒圖(세한도)”이다. 제자 이상적을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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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