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가(訓民歌)

2018.12.14 14:04

우민거사 조회 수: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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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뉘손대 타나관데 양자조차 같아산다

한 젖 먹고 길러나 이셔 닷 마음을 먹지 마라


    형아, 아우야, 네 살들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얼굴의 생김새까지도 닮았단 말이냐

    같은 젖을 먹고 자라났으니 딴 마음을 먹지 마라.

 

   송강 정철이 지은 훈민가(訓民歌) 16수 중 제3수이다.

 

   훈민가는 송강 정철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였던 1580(선조 13) 정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16수의 연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각 수는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다.

   훈민가의 창작 의도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유하는 데 있었다. 그렇지만 정철은 사대부들이 사용하는 어려운 용어 대신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였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일지라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훈민가 16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부의모자(父義母慈)

 

아바님 날 낳으시고 어마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면 이 몸이 살아시랴

하날 같은 은덕을 어디다혀 갚사올고

 

2) 군신유의(君臣有義)

 

님금과 백성 사이 하늘과 따히로되

내의 설은 일을 다 알오려 하시거든

우린들 살진 미나리를 혼자 어찌 먹으리.

 

3)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뉘손대 타나관대 양재조차 같아산다

한 젖 먹고 길러나 이셔 닷 마음을 먹지 마라.

 

4) 자효(子孝)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아 엇지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5) 부부유은(夫婦有恩)

 

한 몸 둘에 난화 부부를 삼기실샤

이신 제 함께 늙고 죽으면 한 데 간다

어디서 망녕읫 것이 눈 흘기려 하나뇨.

 

6) 남여유별(男女有別)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듯이,

사나희 녜는 길흘 계집이 치도듯이,

제 남진 제 계집 하니어든 일홈 묻디 마오려.

 

7) 자제유학(子弟有學)

 

네 아들 효경(孝經) 읽더니 어도록 배홧느니

내 아들 소학은 모래면 마츨로다

어느 제 이 두 글 배화 어질거든 보려뇨.

 

8) 향려유례(鄕閭有禮)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나서 옳지옷 못하면

마소를 갓 곳갈 싀워 밥 먹이나 다르랴.

 

9) 장유유서(長幼有序)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받치리라

나갈 데 겨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鄕飮酒) 다 파한 후에 뫼셔 가려 하노라.

 

10) 붕우유신(朋友有信)

 

남으로 삼긴 중에 벗같이 유신(有信)하랴

내의 왼일을 다 닐오려 하노매라

이 몸이 벗님곳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가.

 

11) 빈궁우환 친척상구(貧窮憂患 親戚相救)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 할고

어와 저 아자바 옷 없이 어찌 할고

머흔 일 다 닐러사라 돌보고저 하노라.

 

12) 혼인사상 인리상조(婚姻死喪 隣里相助)

 

네 집 상사들흔 어드록 찰호슨다

네 딸 서방은 언제나 마치느슨다

내게도 없다커니와 돌보고져 하노라.

 

13) 무타농상(無惰農桑)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쟈스라

내 논 다 매여든 네 논 졈 매여 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14) 무작도적(無作盜賊)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앗디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비지 마라

한적곳 때 실은 휘면 고쳐 씻기 어려우니.

 

15) 무학도박 무호쟁송(無學賭博 無好爭訟)

 

상륙(象陸) 장긔 하지 마라 송사 글월 하지 마라

집 배야 무슴 하며 남의 원수 될 줄 어찌

나라히 법을 세우샤 죄 있는 줄 모르난다.

 

16)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저멋거니 돌이라 무거울가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가.

 

 

  *1996년 작.

  *범부가 청주지방법원충주지원장으로 근무할 당시에 처도 관사 부근 서예학원에 다니면서 한글서예를 익혔다. 그리고 소석(素石) 정재현(鄭在賢) 선생님과 그 문하생들의 서예전인 明倫緣墨會展(명륜연묵회전) 찬조 출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