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無高天還返底(고무고천환반저)
2018.12.14 14:22
高無高天還返底(고무고천환반저)
淡無淡水深還墨(담무담수심환묵)
僧居佛地少無慾(승거불지소무욕)
客入仙源老不悲(객입선원노불비)
하늘은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없지만 정작 땅에 닿아 있고,
물은 그보다 더 맑은 것이 없지만 깊이 들어가면 오히려 검게 된다.
불국정토에 사시는 스님 욕심 없이 지내니
이곳 선원에 들어온 나그네는 늙음도 슬프지 않구나.
제천 금수산(錦繡山. 1,016m) 중턱에 있는 정방사(淨芳寺) 원통보전(圓通寶殿)의 뒷면에 걸린 주련의 글이다.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 2년(66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淨圓)스님이 창건한 절로서, 법당 앞에 서면 청풍호(=충주호)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는 이 절의 창건설화이다.
정원스님이 십여 년 천하를 두루 다니며 공부여 부처님 법 가운데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닫고 부처님 법을 널리 펴고자 스승인 의상대사께 여쭈었다.
“십여 년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다 보니 불교의 깨침은 세상의 앎과 다르지 않고, 부처와 중생의 근본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수 있겠습니까?”
이에 의상대사는 자신의 지팡이를 하늘에 던지며,
“내 지팡이 뒤를 따라가다 멈추는 곳에 절을 지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 있다. 그 산 아랫마을에 윤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을 테니 그 집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뜻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정원스님이 의상대사가 던진 지팡이를 따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지금의 정방사 자리에 도착했을 때 지팡이가 땅에 내려앉았다. 정원스님이 살펴보니 겹겹이 아름다운 산이 펼쳐지고 맑은 강이 흐르는 풍경 속에 우뚝 솟은 억겁의 바위는 마치 하늘세계의 궁궐(梵王宮) 같았다. 스님이 산 아랫마을의 윤씨 집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전하니, 집주인이 말하기를,
“어젯밤 꿈에 의상이라는 스님이 흰 구름을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그대의 전생을 잘 알고, 불가의 연이 있어 말하는 것이니, 내일 어떤 스님이 오거든 정성을 다해 도와주기 바라오.’하고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창건된 사찰이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바람이 꽃향기에 어우러져(芳) 펼쳐진 정방사(淨芳寺)이다. ‘정(淨)’자는 정원(淨圓)스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촌부가 2009년 2월에 청주지방법원장으로 발령받은 후 봄에 제천지원을 방문하였다. 그 길에 정방사를 들렀다가 이 글을 발견하고 그 심오한 뜻에 감탄하였다. 출처는 알 길이 없으나 참으로 멋진 선시(禪詩)이다. 그래서 암송하며 종종 화선지에 옮긴다.
*2014년 작[제25회 대한민국 서법예술대전 출품. 행·초서(우수상), 예서(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