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僧舍(제승사)

2018.12.14 14:36

우민거사 조회 수: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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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北山南細路分(산북산남세로분)

松花含雨落繽紛(송화함우락빈분)

道人汲井歸茅舍(도인급정귀모사)

一帶靑烟染白雲(일대청연염백운)

 

     산에 난 오솔길은 남북으로 갈라지고

     송화는 비를 맞아 어지러이 떨어지는데

     도승이 물을 길어 띠집(초가집)으로 들어가자

     한 줄기 푸른 연기가 흰 구름을 물들이네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 1347-1392)이 지은 시 題僧舍(제승사. ‘절집에 붙여라는 뜻)”이다.


    이숭인은 고려 말기의 학자로서 목은 이색(牧隱 李穡),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공민왕 때 장원급제한 후 여러 차례 벼슬길을 오갔으나, 친명파와 친원파 양쪽의 모함을 받아 여러 옥사를 겪었다. 그리고 결국 조선 개국 당시 정도전의 원한을 사 그의 심복에게 살해되었다.

 

    바야흐로 5월이다. 높은 산에 남북으로 난 오솔길에 송홧가루가 날려 어지럽게 떨어진다. 그 길에 물을 길어 초가집으로 돌아가는 도승의 모습이 보이고, 이내 그 집에서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라 흰 구름을 물들이며 그 속으로 스며든다. 이 얼마나 목가적인 풍경인가.

 

    그러나 이 시에 은유적으로 숨어 있는 이면(裏面)도 과연 이렇게 목가적일까.

   시인이 살았던 고려말의 시국과 시인의 처지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산길이 이 갈래 저 갈래 갈라지듯 국론이 이리저리 분열되고, 그 와중에 애꿎은 인재들의 목숨이 우수수 떨어진다. 마치 송화가 비를 맞고 떨어지듯이. 그런 세상이 싫어진 현인들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오두막을 짓고 물이나 길으면서 지낸다. 반면에 세속에서는 악인들이 설치면서 온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마치 한 줄기의 푸른 연기가 흰 구름을 물들이듯 말이다.

    

*2013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