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가리나, 어이를 갈거나(덕유산 종주)
2019.07.14 15:36
어이 가리나, 어이를 갈거나
작년에 이어 올 1월에도 덕유산 설산등반을 했다(2019. 1. 12.). 히말라야산악회의 도반들(박영극님, 박재송님, 오강원님, 최동진님. 가나다 순)과 함께 오른 산행이었다.
무주구천동으로 올라가 최고봉인 향적봉을 거쳐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하산한 후, 다시 무주구천동 입구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서울에서부터 타고 간 스타렉스를 그곳에 세워 두었다). 그 때 우연히 ‘나봄리조트’를 발견하고 그곳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며 설산 산행의 피로를 푼 후, 저녁식사를 하고 귀경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덕유산 종주 이야기가 나왔다.
덕유산 종주는 먼저 남덕유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향적봉까지 걷는 것이다. 촌부도 진즉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1박2일을 예정해야 하기에 그동안 망설여 왔다. 그런데 나봄리조트를 대하는 순간, 이곳에서 1박하고 다음날 종주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반들 모두가 좋다고 쉽게 의견이 합치했다. 다만 날짜는 다가오는 여름으로 하자고 했다. 종주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낮이 긴 여름이 적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기해년의 전반부가 다 지나가는 시점인 지난 6월 21일 무주로 내려가 22일에 덕유산 종주길에 올랐다.
덕유산 종주!
총연장 20Km가 채 안 되는 거리이지만, 그보다 두 배나 되는 지리산 종주보다 더 어렵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덕유산 종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코스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막연히 종주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 코스의 난이도를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 발을 내딛은 촌부는 이번에 그 어려움을 몸으로 절감해야 했다.
이제껏 긴 세월 동안 다녀본 산행 중 가장 힘든 코스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2019. 6. 22.
절기상으로 하지(夏至)인 날이다. 비록 덥기는 하지만, 1년 중 낮이 제일 긴 날이니 산에서 오래 머물 수 있어 종주 산행에는 적격인 날이다.
전날 비 예보가 있어 한때 가슴을 졸였지만, 오후 3시 무렵부터나 비가 내릴 수 있는데, 그나마 양이 5mm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에 과감히 길을 나섰고, 그렇게 해서 무주구천동의 나봄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다 되었다.
밤이 깊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간단하게라도 푸느라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3시간 후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나봄리조트]
누룽지를 끓여 아침 요기를 간단히 한 후, 오강원님이 미리 예약하여 놓은 택시기사가 운전하는 스타렉스(우리 일행이 서울에서 타고 간 차이다)를 타고 새벽 5시에 출발하여 40분 걸려 남덕유산 밑의 영각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행정구역이 함양이다(서상면 상남리). 하지답게 사위가 이미 환하다.
사람의 선입견이 참으로 묘하다. 그동안 덕유산 종주는 영각사(靈覺寺.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876녕에 창건된 고찰이다)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에, 영각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위쪽의 영각사 경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산로가 당연히 영각사를 관통하여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흐린 날씨에 구름이 낀 것인지, 아니면 안개가 자욱한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영각사 경내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등산로가 안 보였다. 스님이나 일하는 절 식구들이라도 보이면 물어보련만 이른 새벽이라서인지 인적도 없다.
덕분에 절을 구석구석 살피며 구경을 하는 소득을 얻기는 했지만(주법당이 '화엄전'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다. 촌부의 일천한 경험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주법당의 이름으로 대적광전이나 비로전이 아닌 ‘화엄전’이라는 이름을 내건 절은 처음 보았다. 그 법당 밖에서 부처님께 무사 산행을 빌었다), 경내에서 20여 분을 배회하다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영각사 표지석 앞에서]
[영각사 화엄전]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갔더니. 맙소사! 버스정류장 바로 아래쪽으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남덕유산 등산로 입구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입견으로 그 안내판이 안 보였던 것이다. 그러길래 자고로 '심부재언이면 시이불견이라' 하지 않던가(心不在焉 視而不見. 마음이 가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남덕유산 등사로 입구임을 알리는 안내판]
그 안내판 앞에서 아침 6시에 종주의 첫발을 내디뎠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난 제법 넓직한 길을 따라 산속으로 400m 정도 들어가면 영각탐방지원센터가 나오고 ‘남덕유산 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임을 알리는 조형물과 안내지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남덕유산 탐방로 입구]
[덕유산 종주 코스]
영각사 입구에서 남덕유산(일명 봉황산) 정상까지 거리는 3.8Km이다. 단순 거리로 치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표고차(標高差)가 무려 800여 미터에 이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표고차가 그 정도인데 거리가 3.8Km에 불과하다면 등산로가 그만큼 매우 가파르다는 이야기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덕유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급경사의 너덜길과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수없이 지나야 했다. 더구나 하루에 마쳐야 하는 종주 산행이다 보니 서둘러 올라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사타구니에 불이 나도록 걸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기도 했는데, 구름이 앞을 가려 한 치 앞이 안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가 오전 8시 30분. 두 시간 반만에 오른 것이다. 등에서는 땀이 내를 이루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영각사 입구에서 남덕유산을 오르는 길이 덕유산 종주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임을 안 것은 종주를 마친 후의 일이다.
[너덜길]
[철계단]
[구름에 덮인 등산로]
[남덕유산 정상]
어느 산이든 종주 산행의 백미는 봉우리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을 걸으면서 주위 풍광을 한눈에 조망하는 것인바, 길을 경계로 오른쪽은 경상남도의 함양과 거창, 왼쪽은 전라북도의 장수와 무주인 덕유산 종주길은 그 전후좌우의 경치가 특히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날만큼은 장마가 시작되는 시점인 데다 비 예보까지 있던 터라 1,507m나 되는 남덕유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위는 구름에 덮여 있을 뿐이었다. 멋진 경치는 고사하고 오히려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판이었다. 그래서일까, 오가는 산객이 보이질 않았다.
그나저나 이 남덕유산을 시작으로 앞으로 해발 1,400~1600m 사이의 봉우리 다섯 개(삿갓봉, 무룡산, 칠이남쪽대기봉, 백암봉, 중봉)를 더 넘어 15km를 걸어야 마지막으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도달한다는 안내도를 보노라니 갈 길이 아득했다.
“어이 가리나~ 어이를 갈 거나~”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천리 황성길을 가는 심봉사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남덕유산에서 가파른 경사의 내리막길을 월성재(‘월성치’라고도 한다)까지 30분 정도 내려갔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50분 정도 올라야 삿갓봉(1,419m)에 도달한다. 힘이 들면 삿갓봉 정상에 오르지 않고 산록으로 우회할 수도 있으나, 종주에 나선 만큼 정공법을 택하여 정상에 올랐다. 대신 그만큼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시계를 보니 10시 34분이다.
이쯤에서는 구름이 바람을 타고 서서히 걷혔다 몰려왔다 하여, 한양나그네로 하여금 잠깐씩 주위의 멋진 경치를 조망하며 종주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을 때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마음을 졸였다. 종주 내내 이 비구름은 우리의 뒤를 따라오며 겁을 주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종주를 마칠 때까지 겁만 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길을 잘못 들은 영각사에서 부처님께 무사 산행을 빌었던 효험이 아닌지 모르겠다.
[삿갓봉 정상]
[삿갓봉 주위의 경치]
힘들여 산에 올랐는데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안 보여 아쉬워하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그 구름을 걷어내니 천지가 한눈에 들어올 때의 즐거움은 산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오죽하면 다산(茶山) 선생마저도 이를 두고 '이 아니 즐거운가(不亦快哉)'라고 노래하지 읺았던가.
岧嶢絶頂倦遊笻(초요절정권유공)
雲霧重重下界封(운무중중하계봉)
向晩西風吹白日(향만서풍취백일)
一時呈露萬千峰(일시정로만천봉)
높고 높은 산꼭대기 힘들여 올랐더니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가로막네.
이윽고 서풍 불어 밝은 해가 드러나니
만학천봉이 일시에 다 보이네.
----다산 선생의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제5수---
삿갓봉을 내려가면 삿갓재 대피소가 나온다. 덕유산 종주를 1박 2일에 걸쳐 여유 있게 할 경우에 1박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 후 이미 5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였다. 그렇지만 험한 고비는 다 넘겼고, 이후의 등산로는 지나온 길에 비하면 한결 수월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삿갓재 대피소]
아침을 워낙 일찍 먹은 터라 배가 고프기도 했다. 박재송님이 준비해 온 연잎밥의 맛이 꿀맛이었다. 이에 더하여 박영극님이 160m 아래에 있는 참샘에서 떠온 약수가 목을 시원하게 적셨다. 5시간 걸으며 생긴 갈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산행에서 늘 앞장서서 걷고 식사도 잘했던 최동진님이 이날은 전과 달리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식사를 할 생각을 안 한다. 요새 건설 시공현장을 누비느라 피로가 누적된 데다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힘든 종주 산행에 동참하였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12시에 무룡산(일명 불영봉)을 향해 출발했다(삿갓재 대피소로부터 2.1km 거리). 덕유산을 전에 종주한 경험이 있는 박영극님이 무룡산도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고 하여 다소 긴장했는데, 막상 올라 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시간도 50분밖에 인 걸렸다). 등산로가 완만한 데다, 지나온 남덕유산이나 삿갓봉이 워낙 험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룡산 정상(1,492m)에는 제법 넓직한 공터가 있어 다른 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우리 일행 전원이 나오는 인증샷을 하나 남겼다.
[무룡산 정상부근의 올라가는 길]
[무룡산 정상]
무룡산을 지나면 칠이남쪽대기봉을 오르게 되는데, 아쉽게도 이 봉우리는 표지판이 없어 언제 올랐는지 모르게 지나쳤다. 안내지도에 표시해 놓을 요량이면 표지석이든 표지판이든 세워 놓는 것이 정도일 것이거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심사를 모르겠다.
아무튼 무룡산에서 칠이남쪽대기봉을 지나면 동엽령이다. 동엽령까지 가는 동안에 조릿대(산죽) 군락지를 지나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한 곳은 살아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또다른 한 곳은 전부 고사한 곳이 다.
비슷한 환경에서 그렇게 생(生)과 사(死)가 갈린 이유를 촌부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인간사 또한 그러하니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니다. 다만, 식물이든 사람이든 삶과 죽음이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숙연해졌다.
지금 살아서 이 길을 걷고 있는 촌부 또한 어느 한순간에 사라질 실로 유한(有限)한 존재 아니던가.
[생과 사가 갈린 조릿대 군락지]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가 문득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아득하다. 하늘 아래 구름 속에 아련히 보이는 남덕유산, 그리고 그 앞의 순서대로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는 삿갓봉과 무룡산. 그곳들을 촌부가 넘어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봉우리들이 멀리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동엽령으로 가다가 뒤돌아본 풍광]
동엽령(무룡산으로부터 4.1km)은 무주와 거창을 넘나드는 고개인데, 덕유산 국립공원 긴급재난 안전쉽터로 휴식을 위한 공간이 있고 벤치가 있어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오후 2시 42분 도착).
[동엽령의 쉼터]
휴식 중에 이곳에서 만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우리의 행선지를 묻길래, 향적봉까지 가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이 분 말씀이, 이곳에서 향적봉까지 거리가 4.3Km이고 곤돌라는 오후 4시까지만 운행을 하는데 ,시간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냐고 한다. 오후 5시 반까지 운행(전날 인터넷에서 학인한 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이 때가 이미 오후 2시 45분. 오강원님이 최대한 먼저 가서 곤돌라를 잡아보겠다며 서둘러 앞장을 섰다. 오강원님은 지난 봄에 함께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후로 전보다 훨씬 힘이 넘쳐나시는 모습이다.
박영극님과 박재송님은 힘들어하는 최동진님과 함께 천천히 오기로 하고, 오강원님과 촌부가 서둘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 높은 산에서 어디 내 맘같이 쉽게 진도가 나가랴.
마치 하늘로 가는 관문처럼 보이는 급경사의 철계단을 지나 백암봉(1,503m)에 도착하니 가쁜 숨이 턱에 와 닿는데, 야속한 시간은 어느새 한 시간 가까이 흘렀다(오후 3시 41분 도착. 동엽령에서 백암봉까지 거리는 2.2km).
[백암봉 오르는 철계단]
[백암봉 정상]
인증샷으로 갑제1호증(정상사진) 한 장을 남긴 채 백암봉을 지나 1km의 거리를 달리다시피 하여 중봉(1,594m)에 올라서니 마침내 향적봉이 지근거리에 보인다.
그러나 공단 직원의 말대로 오후 4시에 하행 곤돌라가 마감된다면 이미 늦었다. 시계바늘이 4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도리없이 향적봉에서 백련사를 거쳐 무주구천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반 체념상태가 되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오강웜님은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앞서갔다.
[중봉]
중봉에서 향적봉까지는 1.1km이다. 두 봉우리의 표고차가 20m밖에 안 되어 향적봉의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지만, 막상 걸으려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15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25분 족히 걸렸다(오후 4시 35분 도착).
오강원님조차도 이제는 곤돌라 잡는 것을 단념하고 일행들이 올 때까지 인증샷을 남기고 있는데, 갑자기 향적봉 전체를 울리는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행 곤돌라를 5시 30분에 마감하니 유념하라’고 곤돌라 운행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오, 나무관세음보살~!”
그러면 그렇지, 분명 전날 서울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에서 확인했는데... 뒤늦게 도착한 일행들에게 곤돌라를 탈 수 있다고 하니 모두 얼굴이 환해진다.
촌부만이 아니라 다른 도반들도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백련사를 거쳐 무주구천동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내심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봉에서 본 향적봉]
[향적봉 정상]
하행 곤돌라를 타는 설천봉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11시간에 걸친 덕유산 종주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더운 여름의 하짓날에 덕유산 종주를 해냈다는 뿌듯함과 대견함이 ‘하이파이브’를 하는 표정들에서 우러나고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무주리조트로 내려가면서 새벽에 우리 일행을 영각사 입구까지 태워다 준 택시기사에게 오강원님이 휴대전화로 연락하니까 그가 택시를 몰고 왔다. 현대 문명의 이기 중 이기인 휴대전화의 유용성을 새삼 말해 무엇하랴.
택시를 타고 나봄리조트로 돌아가 그곳 사우나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종일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덕유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우나야말로 강추이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한 후 박재송님과 최동진님이 번갈아 운전하는 스타렉스에 몸을 싣고 귀경길에 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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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2. 여섯번째로 덕유산을 오르고, 그 해 여름인 6. 22. 남덕유산에서 출발하여 향적봉에 이르는 덕유산 종주를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3. 1. 14. 여덟번째로 덕유산을 올랐다.
본래 눈꽃 산행을 기대했는데, 1월 들어 계속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산행 전날에는 비가 많이 내린데다 당일에도 계속 안개비가 내려 눈꽃은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안개에 젖은 무주구천동 계곡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요란하게 소리내며 흐르는 계곡물을 보노라니, 한겨울 산행을 하는 건지 한여름 산행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곳곳에 폭포까지 떨어지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본래 빙벽을 이루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구천동 계곡 옆으로는 그 사이 어사길이 만들어지고, 향적봉 정상의 표지석도 바뀌었다. 정상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