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바람이 푼다(風之解雲)
2021.07.18 11:51
이상 기후로 인해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벳 고기압이 위세를 떨치는 바람에
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해 국지성 소나기만 간헐적으로 내릴 뿐,
장마가 이름값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형국이다.
대신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덥다, 더워”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한다.
그런데 자연의 섭리가 묘하여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수록 하늘은 청명하다.
하늘만 놓고 본다면 마치 가을 같다.
더위는 잘 갖춰진 냉방시설 덕분에 이겨낼 수 있는 반면에
미세먼지로 뒤덮여 숨이 막히는 하늘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설적으로 무더위를 반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의 서부처럼 낮 기온이 50도를 넘어가
사망자가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탁 트인 하늘 아래 눈이 시원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어제 그 청명한 하늘 아래 제헌절을 맞았다.
돌이켜 보면,
'삼천만이 한결같이 지킬 언약'을 담은 제헌헌법을 1948. 7. 17. 공포한 이래 73년이 지났다.
유구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의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현세를 살아가는 범부들에게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실로 격변에 격변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제는 유엔개발기구(UNCTAD)에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인정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데, 정작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깊이 뿌리 내리고자 추구했던 헌법의 이념이
목하 100%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자유민주주의가 저 맑은 푸른 하늘처럼 찬연하게 빛나고 있을까.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아니다’로 귀결된다.
심지어 위정자(僞政者)들의 묵인 내지 방조 하에
'대한민국 억만 년의 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버리려고 하는 시도들도 횡행한다.
진즉에 실패로 귀결된 사회주의(더 나아가서는 소위 인민민주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유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일도 버젓이 벌어진다.
흔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결국은
헌법 정신을 무시하는 대통령의 행태를 단적으로 일컫는 표현일 뿐이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그리고 양옆을 봐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면이 꽉 막혀 있는 작금의 현실은
단순히 코로나를 핑계 대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
위정자(爲政者)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에만 충실해도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이에 더하여, 내년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권주자’입네 하면서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반헌법적, 반민주적인 언사는 또 어떤가.
엎친 것도 모자라 덮치기까지 하니 답답함이 극에 달할 판이다.
작자미상의 옛시조에 이런 게 있다.
해 다 져 저문 날에 지저귀는 참새들아
조그마한 몸이 반 가지도 족하거든
하물며 크나큰 수풀을 새워 무엇 하리오
참새의 작은 몸뚱이를 생각하면 반쪽자리 나뭇가지 하나로도 족한데,
커다란 숲을 통으로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모습이라니...
제 분수를 모르니 무리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애꿎게 원치 않아도 그런 모습을 봐야 하는 어린 중생들의 심사만 답답하다.
그러면 누가 이 답답함을 풀어줄 것인가.
본래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했다.
매듭을 푸는 것은 바로 묶은 사람들의 몫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이념에 빠져
그럴 생각을 아예 안 하면 어찌할 것인가.
조선 중기의 문신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쓴 ‘해변(解辨)’이라는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천하의 물건은 맺음이 있으면 반드시 풀림이 있기 마련이다.
허리띠가 묶이면 송곳으로 풀고, 머리카락이 엉키면 빗으로 푼다.
병이 단단히 맺히면 약으로 푼다.
구름은 바람이 풀고(風之解雲. 풍지해운),
근심은 술로 풀며(酒之解愁. 주지해수),
적진은 장군이 풀고,
귀신은 사당의 기도와 주문이 푼다.
묶인 것 치고 풀지 못할 것이 없다.
...(중략)...
능히 풀 수 있는 자만이 푼다(能解之者解之).
나라를 망치는 위정자(僞政者)들도
알고 보면 국민이 선택하여 국정을 맡긴 사람들이다.
그들이 잘못된 매듭을 지어놓고 풀지 않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풀 수밖에 없다.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스스로 흩어지지 않으면 바람이 풀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낡은 사회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
국민이 오로지 표로밖에 안 보이고, 21세기의 지금도 돈만 주면 그 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표퓰리스트를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에 터 잡은 올바른 질서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의 헌법이 추구하는 정신 아닐까.
참으로 더운 제헌절이었다.
그리고
기념식조차 없이 지나간 슬픈 제헌절이었다.
댓글 4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03 | 항민(恒民),원민(怨民),호민(豪民) [3] | 우민거사 | 2021.08.08 | 324 |
» | 구름은 바람이 푼다(風之解雲) [4] | 우민거사 | 2021.07.18 | 302 |
301 | 미라가 된 염치 [2] | 우민거사 | 2021.06.27 | 221 |
300 | 본디 책을 읽지 않았거늘(劉項元來不讀書) [2] | 우민거사 | 2021.05.23 | 225 |
299 | 한 모금 표주박의 물(一瓢之水) [4] | 우민거사 | 2021.05.09 | 369 |
298 | 한 잔 먹세 그녀 [1] | 우민거사 | 2021.04.25 | 239 |
297 | 세상에는 찬 서리도 있다 | 우민거사 | 2021.04.03 | 231 |
296 | 조고각하(照顧脚下) | 우민거사 | 2021.03.21 | 221 |
295 | 아니 벌써 | 우민거사 | 2021.03.03 | 174 |
294 | 과부와 고아 | 우민거사 | 2021.02.14 | 170 |
한변은 그제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 달라는 청원을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