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도 있었네(금대봉)
2021.09.24 00:00
이런 곳도 있었네
두타산을 다녀온 지 1주일만인 2021. 8. 28.에 금대봉을 찾았다. 이제는 60대 후반으로 접어든 촌부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소 무리일 수도 있지만, 진즉에 잡혀 있던 일정이라 그냥 길을 나섰다.
금대봉(金臺峰. 1,418m)은 함백산의 북쪽에 있는 산으로,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를 품에 안고 있다.‘금대’의 본래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금이 많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2018. 3. 3.에 함백산 등반을 위하여 두문동재 꼭대기까지 갔다가(함백산은 이곳에서 남행한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등산로를 폐쇄하는 바람에 되돌아선 일이 있는데, 그때 그곳에 있던 간이휴게소 겸 매점 주인으로부터, 북쪽으로 금대봉 가는 길은 열려 있으니 그리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촌부가 금대봉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계기이다.
그 후 금대봉이 야생화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어오다 이번에 히말라야산악회의 여름 산행지로 정한 것이다.↖
[금대봉의 위치]
산림청이 1993년에 금대봉과 대덕산 일대 126만 평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후로는 이곳을 탐방하려면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보통 인터넷으로 하는데, 예약이 힘들 만큼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다). 매년 4월 넷째 주 금요일부터 9월 30일까지 입산이 가능하며, 1일 입산 가능 인원은 300명이다.
등산로의 기점은 두문동재 정상인데, 자동차로 이곳까지 가려면 두문동재에 뚫린 터널로 가면 안 되고 터널 옆으로 있는 옛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터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고갯길이 정선과 태백을 연결하는 38번 국도였다).
옛길답게 꼬불꼬불 운치가 있는 이 길의 정상에 다다르면, 해발고도 1,268m의 두문동재 고갯마루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주차장도 설치되어 있다. 이곳이 금대봉 산행의 출발지이자, 남쪽으로 함백산을 가는 산행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금대봉 쪽으로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탐방지원센터가 있어, 등산객의 사전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입산 허가 징표인 팔찌를 준다. 산행 동안에는 이 팔찌를 계속 차야 한다.
[두문동재 고갯마루]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
[탐방안내도]
10시 30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등산의 첫발을 내디뎠다. 등산로는 평탄 그 자체이다. 등산로만 놓고 본다면, 금대봉이 해발 1,418m나 되는 고봉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출발해서 70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북쪽의 대덕산 방향(이정표에는 고목나무샘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다)으로 직진하면(이 길이 넓다) 야생화 군락지로 곧바로 간다. 금대봉 정상을 가려면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길이 좁다).
아무리 야생화를 보러 왔다지만, 코앞에 있는 정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정상 방향을 택하였다. 그래 봐야 정상까지는 불과 500m이다.
[삼거리 이정표]
그나저나 금대봉 정상은 볼 게 없다. 야생화가 널려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무들로 둘러싸인 평지인지라 주위의 풍광도 조망할 수 없다. 산객 입장에서는 실로 맥 빠지는 정상이다.
금대봉에 왔으니 그 정상을 밟아봐야 한다는 것과 백두대간의 한 곳(두문동재에서 금대봉 정상을 거쳐 동쪽의 매봉산으로 이어진다)에 선다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위에서 언급한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결국 삼거리에서 잠시 금봉산을 다녀온 셈이 되었다(30분 소요).
[금대봉 정상]
삼거리에서 이정표에 씌어 있는 고목나무샘(1.2km 거리) 방향으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산중 고속도로라고 해도 될 만큼 넓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금대봉의 왼쪽 옆구리로 난 길인데, 금대봉 야생화의 잔치가 바로 이 길의 좌우에서 펼쳐진다.
워낙 걷기가 편한 길이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의 양옆으로 야생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야생화 군락! 이 군락지에서는 꽃들이 길을 덮어 헤치며 지나가야 한다.
[야생화 군락지]
마침내 길의 오르막 끝에 있는 계단을 지나면 나무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나온다. 끝없이 펼쳐지는 야생화 군락과 그 뒤로 배경을 이루는 하이원리조트, 그리고 풍력발전단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고개를 돌려 온 길을 되돌아보면 밋밋한 모습의 금대봉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야생화 군락지]
[하이원 리조트]
[풍력발전단지]
[금대봉 정상]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다. 촌부의 눈에는 야생화단지의 대표격인 점봉산 곰배령보다 이곳의 야생화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 갖가지 야생화의 이름을 알 리 없는 촌부는 그저 아름답다는 말만 되뇐다.
박영극님이 그나마 몇 가지 꽃 이름을 가르쳐 주지만, 이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다만 한 가지, 정선 곤드레밥으로 유명한 곤드레(=고려엉겅퀴)를 닮은 각시취가 그 특일한 생김새와 고운 특히 색깔이 예뻐 기억에 남는다.
[각시취]
하루 300명만 입산 가능한 예약제를 실시한 까닭인가, 이 넓은 산에 산객이 드물다. 나무 데크의 전망대에서 전후좌우를 둘러보며 눈을 호강시킨 다음, 퍼질러 앉아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산행망좌좌망행(山行忘坐坐忘行. 산길을 가다 보면 앉기를 잊고, 그러다 한번 앉으면 가기를 잊는다)이런가, 따스한 햇볕과 산들바람이 나그네를 자리에 마냥 붙잡아 놓는다.
[전망대]
금대봉의 야생화만 구경할 요량이면(사실 그것만으로도 금대봉을 찾는 가치는 충분하다). 이곳에서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 쪽으로 온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걷기 나름이겠지만 왕복 2-3 시간이면 충분하고, 굳이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된다.
높은 산은 가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 코스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큰 힘 들이지 않고 높은 산을 오르며 멋진 풍광을 보고, 아름다운 야생화도 지천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누구 하나 힘센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니 그 아니 좋은가.
그래서 일찍이 남파 김천택(金天澤. 숙종~영조 때의 가객)이 갈파하지 읺았던가.
강산 좋은 경을 힘센 이 다툴 양이면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소냐
진실로 금할 이 없을새 나도 두고 노니노라
이날 산행을 한 우리 일행의 모임은 명색이 히말라야산악회이다. 그러니 두문동재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금대봉의 북쪽 능선으로 향했다. 방향은 대덕산 쪽이지만 목적지는 검룡소이다. 이 능선에는 야생화는 별로 안 보이고, 대신 잣나무 수림이 울창하며,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도 무성하다(촌부의 눈에는 잣나무가 조림한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하지 않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멀지 않은 곳에 고목나무샘이 있다. 이 샘물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후술하는 검룡소에서 용출하는 물의 일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높은 산 위에 있는 샘이건만 안타깝게도 깨끗하지가 않다. 그래서 마시는 것을 단념했다. 당국자의 관리가 요망되는 대목이다.
[고목나무샘]
오후 1시 30분에 분주령에 도착했다. 삼척과 태백의 경계에 있는 분주령은 이름을 보면 분명 고개일 것 같은데, 나무들이 우거지고 올라오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안 보이는지라, 일견(一見)해서는 고개임을 모르겠다.
여하간에 이곳은 삼거리로, 왼쪽으로 대덕산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 대덕산을 올라갔다 갈까 하다가 생략하기로 하고, 그냥 검룡소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택하였다. 야생화는 이미 실컷 보았고, 대덕산은 검룡소와는 상관없으니 굳이 시간을 들여 다리품을 팔 일이 아니었다.
[분주령에 있는 등산 안내도]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 또한 잘 정비되어 있어 걷기가 편하다. 길옆의 계곡에 들어가 발을 담그니 1분도 못 있겠다. 얼음물 그 자체이다.
그래도 촌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등산하면서 발에 쌓인 피로를 회복하는 데는 계곡에서의 탁족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물이 탁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맑으면 맑을수록 좋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닌가. 인지상정이 따로 있을소냐. 더구나 지금 세상에는 갓끈을 씻을 일도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얼음물 계곡]
검룡소(儉龍沼)는 금대봉을 다 내려와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다시 900m 올라간 지점에 있다.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이며 소(沼) 주위가 모두 잘 정비되어 있다. 지방자치의 효과이리라.
둘레 20여m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룡소는 석회 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 5천 톤가량 솟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이 곧바로 20여m의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는바, 이 또한 장관이다.
그 많은 양의 물이 어디서 그렇게 용출되는 것인지 신기하다. 아무튼 그 물이 흘러 흘러 한강을 이루는 것이니, 한양 나그네들에게는 생명수나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검룡소]
검룡소에서 내려와 탐방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불렀더니 금방 온다. 택시를 부른 이유는, 두문동재 정상에 서울에서 타고 온 차를 두었으니 택시 외에는 이동수단이 없는 까닭이다.
사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해 택시 이용이 쉽지 않았던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원점회귀형 산행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는지라 등산코스를 원하는 대로 잡을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그러니 다리가 버텨주는 한, 내 앞으로도 계속 산을 찾으리라. 66세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위(自慰)하면서 말이다.(끝)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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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29. 2년만에 금대봉을 다시 올랐다.
생태보존을 위해 여전히 1일 탐방객수를 제한하는데, 인원수가 2년전의 300명에서 500명으로 늘었다.
아침 9시부터 입산이 가능하다.
코스는 지난범과 동일하게 잡았고, 다만 올해는 지난번에 생략했던 대덕산도 올랐다.
금대봉의 풍광은 2년전과 시종여일하고,
대덕선의 풍광이 또한 장관이다.
만일 금대봉을 찾는다면 1~2시간 더 투자하여 꼭 대덕산도 오를 것을 권하고 싶다.
대덕산은 야생화 군락지가 금대봉과 또다른 아름다움을 뽐냈다.
금대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생화들도 눈에 띄었는데,
꽃이름에 문외한인 촌부는 그냥 "야, 무지 에쁘다!" 감탄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대덕산 정상에서는 멀리 함백산 정상과 그 밑의 오투(O2) 리조트 스키슬로프도 보였다.
그리고 풍력발전단지의 발전기들도 보다 또렷이 보였는데,
알고보니 이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곳이 "바람의 언덕"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었다.
하산하여 두문동재 정상의 탐방지원센터(차를 주차하고 입산을 시작한 곳)로 택시로 이동하였는데,
택시운전사가 "바람의 언덕"을 꼭 들러갈 것을 추천했다.
정말 멋진 곳으로 마음에 안 들면 택시 요금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그러자고 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43만 평에 이르는 고랭지 배추밭 풍경이며,
매봉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하나같이 입을 벌리게 했다.
이날도 벌써 5,0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새로운 발견이다. 금대봉, 함백산, 태백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또 하나, 택시운전사가 추천한 태백호텔(2022년에 개관)의 사우나는 정말 일품이다.
산행에서 흘린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에 적격이다. 이 또한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