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4월과 잔인한 5월
2024.04.30 22:39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만 지나면 5월이다.
5월은 일년의 나머지 열한 달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달이다.
신록이 우거지고 날씨가 좋아서 5월의 앞에는 상징적인 수식어로 ‘푸른’이라는 말을 붙여 ‘푸른 5월’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제는 ‘푸른 5월’이 그 자리를 ‘푸른 4월’에 양보해야 할 듯하다. 이틀 전인 28일 한낮 기온이 영상 30도 안팎으로 오르내려 서울은 영상 28.9도였고, 강원도 정선은 무려 31.2도였다.
그러니 이제는 5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4월이 ‘푸른 4월’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른 아침마다 대하는 우면산은 이미 녹음이 우거졌고, 금당천변의 풍경도 푸르름 일색이다.
반면에 4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인 ‘잔인한 달’의 자리는 5월이 차지해야 할 것 같다. 본래 신록과 소생의 계절인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부른 것은 엘리엇(T.S. Eliot)이 지은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유래한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시인이 4월은 잔인하다고 말한 것은 봄이 겨울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눈으로 볼 때, 겨울에는 눈(雪)으로 세상의 고통과 더러움이 덮이고 비축한 식량으로 조용히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봄에는 비록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낼망정 역설적으로 세상이 시끄럽고 욕망으로 혼란스러워 잔인하다는 것이다.
4월 10일에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여당 참패, 야당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야당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여당 입장에서는 ‘잔인한’ 결과이다.
그에 더하여 2년 전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어제(4월 29일) 처음으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공식 회동을 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거기에 여당 측 인사는 낄 자리가 없었다.
여당에게는 4월이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 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갑남을녀(甲男乙女)들에게는 4월보다는 5월이 훨씬 더 잔인하게 다가올 것 같다.
치솟는 물가로 주머니 사정이 더욱 빠듯해지기만 하는데,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 웬 기념일은 그리도 많은지.
이에 더하여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하여 환율과 원유 가격이 요동을 치고, 그 여파로 기름값, 전기료, 공공서비스요금이 들썩이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기술패권 다툼과 무역분쟁 또한 실시간으로 우리 경제에 암운을 드리운다.
어디 그뿐이랴,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의정(醫政) 대치 상태가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나겠다고 하니, 만일 그것이 현실화되면 의료대란이 일어날 게 불보듯 뻔하다.
이처럼 어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는 5월이 내일이면 시작된다. ‘푸른 5월’이 아닌 ‘잔인한 5월’이 열리는 것이다.
작금에 민초(民草)들은 IMF 외환위기 사태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게 하루하루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민생을 살피고 대책을 세우느라 밤을 새워도 시원찮을 판에,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여당을 앞에 두고 기세등등한 야당의 입법 독주 시즌2를 예고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심지어 명색이 국회의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입에서까지 고작 정파적 이해에 치우친 발언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일신의 영달과 안위(安危)나 살피면서 권력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위정자(僞政者)들의 눈에는 민초(民草)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낱 ‘가붕개’일 따름인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잔인한 5월’이 예고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렇다고 ‘푸른 5월’의 희망을 완전히 저버릴 일은 아니다. 예로부터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해인 수녀의 ‘5월의 시’중 한 대목을 떠올려 본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중략)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조성우 - 04 - 봄날은 간다-One Fine Spring Day (Main Theme) - 192k.mp3
---봄날은 간다(조성우)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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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제는 속 좀 셨하게 해 주겠지
또 그러길 바랬는디.
적폐청산 까지는 아니더라도 죄 지은 눔들 영창 좀 보내나 했드만 뭔 죄지은 눔들한테 뭔 인권이 있다고.
뜨뜨 미시지근한 죽 쒀서 개 줬구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