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두보(杜甫. 712-770)의 ‘曲江(곡강)’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조정에서 퇴청하면 날마다 봄옷을 잡혀놓고

매일 곡강(曲江)의 언덕에서 취한 채 돌아오네

외상술값은 가는 곳마다 있지만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오

 

   여기서 나이 칠십을 가리키는 말인 고희(古稀)가 유래했다. 두보가 살던 때는 사람이 70세까지 산다는 게 드문 일이었다. 이 시를 읊은 두보도 58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입에 올리고 있는 지금은 나이 70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적어도 100세는 되어야 고희(古稀)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른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촌부도 올해 고희(古稀)의 반열에 들어섰고, 지금은 어엿한 법관이지만 코흘리개 시절에는 하도 말썽을 피워 ‘말썽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작은 아들의 제안으로 베트남 나트랑(=나짱)에 고희 기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6월 5일부터 4박6일의 일정이었다. 

 

   베트남은 촌부의 세대에게는 한국군이 파병된 월남전(베트남전쟁. 1960-1975)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과거에는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던 나라이지만, 종전 후 5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것은 지난 일이 되었고, 지금은 한국인의 해외 여행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찾는(2023년 880만 명. 1위는 일본으로 2023년 1,946만 명) 나라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베트남의 다낭이 ‘경기도 다낭시’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촌부는 2003년 12월에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다녀온 후 21년 만에 다시 가는지라 경기도 다낭시를 피해 무더위를 무릅쓰고 ‘나트랑(Nha Trang)’을 행선지로 정하였는데, 나트랑에 도착한 후 그게 오산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나트랑도 이미 ‘경기도 나트랑시’였다.   

 

   나트랑의 관문인 캄란(Cam Ranh) 공항(나트랑 남쪽 45km)이며, 공항에서 북쪽으로 13km의 긴 해안을 따라 쭉 들어선 리조트들과 그곳의 맛집 거리, 나트랑 시내의 호텔, 백화점, 슈퍼마켓, 마사지업소... 등 가는 곳마다 한국인들로 넘쳐났다.

   그러다보니 한국 돈을 베트남 돈으로 환전(한국 돈 1원= 베트남 돈 15동. 이건 공식환율이고 대개는 1원=20동으로 계산한다)해 준다는 캄란 공항의 한국어 안내판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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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틀은 어부인과 단둘이 아마노이(Amanoi) 리조트에 묵었다. 베트남 남동부 빈하이만(Vinh Hy Bay)의 해안에 위치한 이 리조트는 누이추아(Nui Chua) 국립공원(세계자연유산이다) 안에 있다. 캄란 공항에서 남쪽(55km)으로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만은 평화(Peace), 노이는 장소(Place)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마노이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장소'이다. 

나트랑2.jpg[아마노이 리조트 전경]             

 

   총 31개의 독립된 파빌리온(Pavillion)이 있는 이곳에서의 이틀은 그야말로 휴식시간 그 자체였다. 숲속의 파빌리온은 이동을 위해 전기차를 부르기 전에는 아무도 안 오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동쪽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한 후 숲속을 산책하고, 낮에는 숙소에 딸린 개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바닷가로 나가 해수욕을 즐겼다. 해수욕장은 리조트에 머무는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어 이곳에서의 수영도 거의 혼자 한다.  그런데 수영복 바지에 휴대폰을 넣은 채 무심코 바다에 들어가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통에 휴대폰이 먹통이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노쇠해져 가는 나이는 어쩔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언덕 위에 있는 중앙 파빌리온(Central Pavillion)에 있는 식당은 전망이 탁 틔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이 붐비지 않아 한적한 이곳에서 여유있게 식사를 할 때면 마치 양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전망대는 인디아나 존스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트랑3.jpg[독채 파빌리온과 그에 딸린 수영장]

 

나트랑4.jpg[식당]

 

나트랑5.jpg[리조트의 해수욕장]

 

나트랑6.jpg[전망대]

 

   중앙 파빌리온 옆에 있는 절벽 수영장(Cliff Pool)은 멋진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넓은 수영장을 혼자 차지하고 수영을 하노라면 마치 별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연꽃이 피어 있는 호숫가에 자리한 요가 파빌리온은 한 폭의 그림이고, 그 바로 근처에 있는 스파에서의 전신마사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집사람이 현재 요가 선생인 큰 며느리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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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8.jpg[절벽 수영장]

 

나트랑9.jpg[요가 파빌리온]

 

   아마노이 리조트에서 이틀을 보낸 후 작은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있는 퓨전 리조트(Fusion Resort)로 갔다. 이 리조트는 캄란 위의 해안에 있는 여러 리조트 중 하나이다. 전술하였듯이 그 많은 리조트의 투숙객이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퓨전 리조트도 숙소에 개별 수영장이 있고, 해변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노이 리조트에서와는 달리 두 손주들과 물놀이를 하고 동물원(리조트에 온 아이들을 위해 간이동물원이 있다)을 구경하고, 함께 외부에 나가 식사를 하다 보니 이틀이 금방 지나갔다. 그런 와중에 이 곳에서도 전신마사지를 한 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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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12.jpg[퓨전 리조트] 

 

   나트랑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더위였다. 아침 기온이 26-28도, 낮 기온이 40-45도나 되어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목욕을 한다. 비가 잠깐이라도 오면 좋으련만 종일 작열하는 태양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밖에 인천공항에서 새벽 6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나트랑 공항에서 밤 9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았고, 베트남항공의 비즈니스석은 이름만 비즈니스석이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일반석과 별 차이가 없었다. 

 

   촌부는 술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여기저기 옷을 맡기고 외상술을 마실 일도 없고, 옛부터 드문 일이라고 한 칠십도 맞이하였으니 두보의 시와는 다른 삶이 되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제 진 해가 오늘 떠오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길 따름이다. 그래서 일찌기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읊은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의 삶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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