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는 바람이 분다

2024.07.27 22:38

우민거사 조회 수:102

 

    말 그대로 큰 더위가 맹위를 떨친다는 대서(大暑)도 지나고(22일) 삼복더위의 한가운데인 중복(中伏)도 지났다(25일).

   기나긴 장마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아직은 장대비와 무더위가 반복되는 나날이다. 그런데 날씨가 하도 춤을 춰 일기예보가 맞는 때보다 틀리는 때가 더 많아 기상청이 원성의 대상이 되는 지경이다. 그래서인가 기상청도 장마가 언제 끝날지 예측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상청이 자랑하는 슈퍼컴퓨터도 변화무쌍한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한 느낌이다(***이 글을 쓴 후인 7월 30일에 기상청은 공교롭게도 27일에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예측 불허의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새벽에 우면산(牛眠山)에 갈 때마다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된다. 우산을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 기껏 우산을 들고 나서면 하늘이 멀쩡하고, 오후에나 비가 올 거라는 말을 믿고 그냥 나서면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속절없이 맞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차라리 일기예보 대신 집을 나설 때 눈에 보이는 하늘의 색을 보고 나름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확률이 반반이다.

 

   그래서 이판사판으로 운(運)을 하늘에 맡기고 길을 나설 때가 많다. 비가 많이 오면 무장애숲길을 걷고, 다행히 비가 안 오면 소망탑까지 오른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바로 더위다. 새벽 6시 전후의 이른 시각인데도 만만치 않다. 40일 가까이 이어지는 장마의 새중간에 낀 탓에 습도가 워낙 높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땀이 쏟아진다.

 

   서울의 7월 평균 습도가 80%를 넘어섰고, 어제(26일) 새벽에는 92%였다. 이는 공기가 최대한으로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의 92%까지 찼다는 이야기다. 100%를 넘으면 수증기가 더 이상 공기 중에 머물지 못하고 응결되어 물방울이 된다(심지어 오늘 금당천은 오후에 습도가 100%였다),

 

   모기에 물리는 것을 감수하고 반 팔 웃옷에 반바지를 입어도 소용이 없다. 바람이라도 불면 좋으련만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를 오를 때면 그조차 없어 마치 사우나에 들어간 느낌이다.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인내하고 산을 오르면서 내심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정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분다. 정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분다...”

 

   땀을 쏟으며 소망탑(우면산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까닭에 소망탑이 정상 역할을 한다)에 도착하면 정말 신기하게도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 준다.

    날이 맑으면 남산은 물론 멀리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까지 다 보여 그 경치에 팔려 있노라면 서늘하기까지 하다. 그렇다. 산 정상에는 이렇게 바람이 분다. 그래서 일찍이 율곡(栗谷) 선생이 읊지 않았던가. 

   “曳杖陟崔嵬(예장척최외) 長風四面來(장풍사면래)”(지팡이 끌고 정상에 오르니, 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누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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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이처럼 정상에 오르면 으레 바람이 부는 것이 어찌 산에서뿐이랴. 인생사가 다 그렇지 않은가. 아니 그보다 더하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순간부터 바람 잘 날 있던가. 안팎으로 부는 바람에 시달리다 못해 심지어 탄핵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여당의 당대표는 선출되기가 무섭게 야당에서 그를 대상으로 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한술 더 떠 국가의 방송과 통신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그 정점의 자리인 방송통신위원장이 야당의 탄핵 추진에 밀려 연이어 사퇴한 것도 모자라, 직무대행인 부위원장까지 탄핵 추진에 밀려 사퇴하는 마당이다. 새 방통위원장 후보는 임명도 되기 전에 청문회 단계에서 벌써 탄핵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정상적인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자연의 산 정상은 오르기는 힘들어도 일단 오르면 불어오는 바람이 희열을 선사하는 데 비하여, 인간 세상의 정상은 힘들여 올라도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우니 이를 어쩔거나. 결국은 정상에 오른 사람이 제대로 된 올바른 길을 꿋꿋이 가면서 중심을 잡을 수밖에 없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무릇 사사로이 총애하는 사람은 있는데 뛰어난 사람이 없거나(有寵無人),

뛰어난 사람은 있는데 주도하는 사람이 없거나(有人無主),

주도하는 사람은 있는데 책략이 없거나(有主無謀),

책략은 있는데 따르는 백성이 없거나(有謀無民),

따르는 백성은 있는데 군주다운 덕이 없다면(有民無德) 

나라를 얻기 어렵다

 

고 했다. 군주가 되려면 극복해야 하는 이른바 '五難'(오난. 다섯 가지 어려움)이다. 

 

   조직의 대소를 불문하고 그 정상에 오른 지도자의 주위에 총애하는 사람, 뛰어난 사람, 주도하는 사람, 책략이 있는 사람, 따르는 추종자가 아무리 있어도, 지도자가 지도자답게 올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그는 결코 정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사방에서 부는 거센 바람에 날려갈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길은 가시밭길처럼 힘들다. 세상이 험난할수록 더욱 그렇다.

   목하 극도로 분열되어 사생결단으로 편 가름만 하는 세상에 의탁하여 사노라니,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오난(五難)을 극복하고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현자(賢者)의 출현에 목마르게 된다.

   이런 목마름이 어찌 한낱 촌노(村老)에 국한된 것이랴. 

 

바람이전하는말-조용필.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