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푸른 초원, 푸른 호수 (몽골 트레킹)
2024.08.31 19:50
푸른 하늘, 푸른 초원, 푸른 호수
우리나라의 여름 기후가 아열대로 변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연일 계속되 는 찜통더위에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사상 처음 한 달 내내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7월 21 일부터 8월 20일 현재까지).
그런 와중에 8월 10일부터 15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몽골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번에도 혜초여행사 주관이었는데, 참가인원은 총 14명이다.
한반도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몽골은 아침 기온이 8~13도, 낮 기온은 20도 내외로 시원했다. 밤에 게르에서 잘 때는 추워서 난로를 피워야 했다. 덕분에 피서(避暑)를 겸한 트레킹이 되었다.
[트레킹 코스]
2024. 8. 10.
오전 8시 35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대한항공)가 1,957km를 날아 오전 10시 32분에 몽골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몽골은 한국보다 1시간 늦으니, 대략 3시간 걸림 셈이다.
기다리고 있던 현지 몽골인 가이드(이름이 '바트뭉흐'이다. 인천에서 3년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말이 유창하다)님이 안내하는 대로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섭씨 20도의 시원한 공기가 객을 맞는다. 그리고 곧바로 시야에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지대! 공항을 마치 거대한 풀밭 위에 건설한 느낌이다.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
[공항 주위 초원지대]
공항에서 대기중이던 버스를 타고 테를지 국립공원(Gorkhi-Terelj National Park)으로 이동했다.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울란바토르에서 동쪽 70km 떨어진 헨티산맥의 산기슭에 있는 이 공원은 해발 1,400~1,600m의 고산지대로서, 199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몽골 최고의 휴양지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바위산과 계곡, 우거진 숲과 드넓은 초원이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선사하고, 거기에 기암괴석과 온갖 야생화가 유혹의 손길을 뻗쳐 몽골인들은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몽골인들은 이 공원의 곳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승마를 즐긴다.
전체 면적이 2,920㎢나 되는 넓은 이 공원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온 천지에 게르 캠프(=리조트)가 널려 있다. 대부분 하얀 색이라 초원의 푸른 색과 잘 어울려 금방 눈에 띈다. 최근에 지었거나 한창 짓고 있는 캠프들은 개중에는 우리나라의 펜션 같은 모양을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전통적 모습인 원형의 게르 형태이다.
[그린 스카이 게르 캠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은’ 숙소인 그린 스카이 리조트(Green Sky Resort. 해발 1,450m)에 도착하여 배정된 게르에 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야채수프와 찐 고기만두(소고기와 양고기)로 먹을 만했다. 그런데 소식가인 촌부에게는 1인분의 양(量)이 너무 많았다.
식사 후에는 홍차를 마셨는데, 이후로도 식사 때는 늘 홍차가 나왔다. 촌부는 몽골인들이 홍차(특히 후술하는 수태차)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기후 조건이 차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홍차는 전량 수입품이다.
[찐 만두와 야채 수프]
게르는 외형은 전통적인 형태를 그대로 따랐지만, 내부 시설만큼은 현대식으로 깔끔하다. 바닥에 열선을 깔았고, 라디에이터도 있어 밤에도 훈훈하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 갔다가 바닥에 물기 하나 없는 그 깨끗함에 놀랐다. 공동 샤워장(내부가 각각 칸막이로 구분되어 단독 사용)에는 더운물도 나온다.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해 시설을 현대화한 셈이다.
[게르 내부의 모습]
점심심사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린 후 오후 3시에 첫 번째 트레킹에 나섰다. 테를지 국립공원에 개설된 올레길의 3코스를 걷는 것이다. 이제껏 해외 트레킹을 많이 다녀 봤지만, 현지 도착 당일부터 나서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몽골이 생각 밖으로 가깝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버스로 30분 이동하여 트레킹 시작점(해발 1,510m)에 도착했다. 3시 40분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가이드 말이 3시간 30분 정도 걸을 예정이란다.
너무 늦게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밤 9시는 되어야 어두워지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하긴 이곳의 위도가 북위 48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때로는 해를 등지고, 때로는 옆에 두고, 때로는 정면으로 바라보며, 산을 넘고(해발 1,761m), 자작나무와 낙엽송 숲길을 지나고, 야생화를 벗 삼아 습지를 건너고, 툴강의 물가를 따라가며 걷는 이 길은 이름이 한국어 ‘올레길’이다. 제주도 올레길을 수입한 것이다(그래서 이정표에 ‘Mongol Olle Trail’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길이 정겨우면서도 부럽다. 하늘은 또 왜 그리도 푸르른지.
[올레길 표지판]
[툴강. 이 강은 울란바토르도 관통한다]
몽골은 국토 면적이 156만㎢(한반도의 7배)인데 인구는 고작 인구 350만 명이다. 그것도 150만 명은 울란바토르에 산다. 그러니 대부분의 초원이 그냥 자연 상태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개간할 사람도, 개간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덕분에 촌부 같은 사람이 때 묻지 않은 자연의 길을 하염없이 걸을 수 있다. 그러기에 그 초원에서 만나는 소와 말이 반갑고, 반대로 그곳에서 노닐던 개는 외지에서 온 방문객이 반가워 내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그리고 숙소인 게르의 문 앞에 소나 말이나 개가 어슬렁거려도 이상할 게 없다.
[초원에서 만난 소]
[트레킹 도중에 만나 계속 따라온 개]
[게르 문 앞의 소]
몽골 인구가 이처럼 350만 명인데 그들이 키우는 소, 말, 양, 염소, 야크, 낙타 등을 다 합치면 7,000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면 떼를 지어 움직이는 소나 양들로 인해 길이 막혀 그들이 비켜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쯤 되면 이 땅의 주인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헷갈린다.
올레길 트레킹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유목민의 전통적인 게르를 방문했다. 이 게르를 보니 촌부가 묵는 게르가 얼마나 현대화되고 화려한지 알겠다.
이곳에서 유목민들의 전통음식인 마유주(馬乳酒. 말젖으로 만든 술), 수태차(홍차의 찻잎과 우유, 소금을 함께 넣어 끓인 차), 빵(과자)을 맛보고 전통악기 마두금(馬頭琴. 말머리 장식이 있는 현악기)도 볼 수 있었다.
[유목민 게르의 내부와 마두금]
12km를 걸은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 7시 10분이지만 가이드 말대로 아직 날이 훤하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30분 걸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야채 샐러드와 브로콜리 수프, 그리고 소고기찜이다. 역시 고기를 빼놓는 식사는 생각할 수 없다.
게르 주위에 어둠이 깔리고 초승달이 빛난다. 밤 10시에 게르 캠프 전체에 소등이 실시되자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아쉽게도 은하수는 볼 수 없다. 그럴 정도로 날씨가 화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개를 젖히고 그 별들을 바라보다 몸을 싸고도는 한기에 게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몽골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게르 캠프의 밤]
2024. 8. 11.
새벽 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서울은 5시 30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더구나 밖이 이미 훤하니 말해 무엇하랴. 무심코 게르 밖으로 나서자 한기가 급습한다. 아뿔싸 영상 11도이다. 서둘러 옷을 겹쳐 입고 게르 주변 산책에 나섰다.
태양이 빛나는 초원 위로 소와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거닌다. 가까이 다가가자 멀리 가버린다. 판소리 단가 강상풍월의 한 대목을 흉내내 본다.
“우마(牛馬)야 가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한양을 떠나옴에 너를 찾아서 예 왔노라”
[게르 캠프의 아침]
산책을 끝내고 게르 캠프의 중앙에 있는 식당에서 8시에 아침 식사를 했다. 메뉴는 다행스럽게도 양식 간편식이다. 빵, 달걀 프라이, 감자튀김, 소시지에, 특이하게 달걀 수프가 추가된다. 일단 고기를 안 먹어도 되는 게 좋다.
식사 후 잠시 쉬었다가 오전 10시 30분에 게르 캠프 뒤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엉거츠산 트레킹(총 거리 8km)에 나섰다. ‘엉거츠’는 비행기라는 뜻이다.
엉거츠산은 게르 캠프에서 바라보면 온통 바위산으로 보이는데, 뒤로 돌아가면 숲이 우거져 있다. 몽골에는 이처럼 한 면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나 초원인 반면 다른 한 면은 숲이 우거져 있는 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엉거츠산의 전면과 숲]
산밑에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후 하차하여 오전 11시에 트레킹을 시작했다(해발 1,480m). 처음에는 이미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1시간 정도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르느라 다소 힘들었다. 그러나 힘들여 올라갈수록, 그래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져 발아래로 너무나 멋진 전경이 펼쳐져 힘든 것을 잊게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눈에 익은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돌로미테의 그것이 떠올랐다. 그랬다. 엉거츠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로 돌로미테의 축소판이었다. 너른 초원과 그 초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찌 그리도 비슷한지... 단지 그 초원 위에 있는 집들이 흰색의 게르라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엉거츠산에 오르면서 바라본 풍경]
정상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하려면 너무 늦기 때문에 해발 1,980m 지점의 전망 좋은 절벽 위에서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 백반으로 식사를 했다(오후 1시). 인천공항에서 구입해 온 맛김치와 고추장이 위력을 발휘했다.
식사를 마치고 숨을 돌린 후 오후 2시 45분에 정상(해발 2,085m)에 도착했다. 정상에 굿당처럼 차려놓은 조성물이 다소 눈에 거슬렸지만, 주위가 야생화의 천국이라 괘념할 일이 아니다.
야생화 들판 위에 한가로이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7년 전 여름에 몽블랑 트레킹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비슷한 고도의 쉐즈리 호수(Lac des Chesery) 주변에 있는 야생화 들판에 누워 ‘여기가 지상낙원’이라고 외쳤는데, 그 낙원이 그 사이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엉거츠산 정상의 조형물]
[야생화 천국에 누워. 아래는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 때 모습]
정상에 올랐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다. 오후 3시에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이 하산길은 앞서 올라온 길과는 달리 시종일관 초원지대인데 경사가 매우 급하다. 그만큼 무릎에 부담이 가지만, 대신에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경치가 아름다워 무릎이 아픈 것을 잊게 한다.
[엉거츠산 하산길의 풍경]
가이드가 워낙 빨리 걷는 통에 발에 불이 나도록 쫓아가다 보니 1시간 10분 만에 다 내려왔다. 하산지점(해발 1,550m)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인근의 거북바위로 갔다.
거북이처럼 생긴 이 거대한 바위는 테를지 국립공원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조물주가 일부러 마음먹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이를 보려고 찾아오는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주변에 마을도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거북바위의 얼굴을 보면서 거북이가 아닌 사자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한양 나그네의 착각일까.
[거북바위]
거북바위를 끝으로 테를지 국립공원과 작별하고 울란바토르로 향했다(오후 4시 50분). 전날 공항에서 온 길로 한동안 되돌아가다가 도중에 방향을 바꿔 시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울란바토르 시내의 교통체증이 대단하다. 한창 시간대의 서울 거리를 뺨친다.
하염없이 내다보는 차창에 낯익은 간판이 수시로 눈에 들어온다. 편의점 CU와 GS25 간판이다. 이마트도 있다. 특히 CU가 많은데, 대로변으로 국한해서 본다면 서울보다 더 많은 듯하다(몽골 전체에 CU의 점포가 400개나 된다). 그 안에서 파는 물건이 한국에서 파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하는데(심지어 삼각김밥도 판다) 실제로 들어가 볼 기회는 없었다.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 울란바토르를 ‘몽탄 신도시’라고 부른다고 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저녁 6시 30분 시내의 한식당 '기와집'에 도착했다. 불고기와 김치전이 입맛을 돋운다. 전 세계를 쏘다닌들 촌부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라마다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30분이다. 이 호텔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주 고객인 듯 5층에 ‘한상(HANSANG)’이라는 상호의 대형 한식당이 있고, 출입문 앞에 정차되어 있는 관광버스에는 “대진고속관광”이라고 씌어 있다. 아마도 한국의 대진고속관광에서 운영하던 중고 버스를 수입해 그대로 사용하는 듯하다.
[라마다 호텔]
2024. 8. 12.
당초의 일정은 이날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흡수골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항공편 사정으로 순서를 바꿔 울란바토르 관광을 먼저 했다(본래는 흡수골에서 돌아와 귀국하기 전날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기온은 18도. 찜통인 서울보다는 낮지만, 전날 테를지 국립공원의 아침에 비하면 더운 편이다. 낮에도 확실히 더위를 느꼈다. 이곳은 인구가 150만 명인 대도시이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하러 호텔의 5층 한식당 ‘한상’에 갔더니 개장도 하기 전부터 한국인 관광객들(투숙객으로 보인다)이 입구에 몰려 있다가 개장과 동시에 쏟아져 들어간다. 뷔페식의 넓은 식당이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처럼 되어 버렸다. 아무튼 이국땅에 와서도 먹는 데 극성이다. 그나저나 4성급 호텔에 한식당이 있을 정도이니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알 만하다.
[한식당 '한상']
시내 관광을 하러 오전 9시에 호텔을 나섰다. 울란바토르에서 제일 먼저 간 곳은 라마교(=티벳 불교)의 간단(Gandan) 사원이다. 몽골 라마교의 총본산이자 몽골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온전한 기쁨을 주는 위대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몽골인들은 6-70%가 라마교를 믿는다. 그러다 보니 도시의 중심에 커다란 라마교 사원이 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간단 사원]
절에 도착했을 때 한 법당에서 법회를 하고 있었다. 우리와는 달리 법당 중앙의 좌우 측면에 스님들이 마주 앉아 불경을 독송하고, 그 뒤로 신도들이 서 있다. 그리고 법당 중앙의 정면에 불상이 놓여 있다. 스님들의 몽골어 독송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냥 중앙의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나왔다. 라마승들은 결혼을 하고 절에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사원 내부의 법회 모습]
간단 사원은 규모가 워낙 커서 법당이 여럿 있다. 그중 한 법당에는 복판에 높이가 26m나 되는 불상을 조성해 놓았다. 불상의 무게는 무려 90톤이다. 본래 은으로 조성했던 것인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가 가져가 총알을 만드는 데 써버렸고, 그 후 다시 복원하면서 청동으로 만들고 금도금을 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하도 커서 부처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제쳐야 겨우 볼 수 있다. 불상 밑에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마니차를 돌리며 불상을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높이 26m, 무게 90톤의 불상]
마지막으로 법당 한 곳을 더 들어갔다. 이 법당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지었는데, 간단사원에서 제일 큰 법당이다. 법당이 워낙 커서 입구에서 보면 멀리 안쪽의 벽 앞에 조성해 놓은 불상의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이다. 그 앞으로 신도들이 줄을 서서 기도하며 지나간다. 마침 그곳에서 마주친 라마스님 한 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현대식 법당과 스님]
간단사원을 둘러보고 나와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울란바토르의 중심에 있는 중앙광장인 수흐바타르 광장(Sukhbaatar Square)이다. 아직 오전 10시 30분이건만 드넓은 광장의 더운 기운이 확 다가온다.
광장의 북쪽에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의사당 건물 정면 중앙에 몽골의 상징이자 숭배의 대상인 칭기즈칸을 기리는 거대한 좌상이 있고, 그의 왼쪽에는 아들 오고타이 칸, 오른쪽에 손자 쿠빌라이 칸의 좌상이 있다.
[수흐바타르 광장의 국회의사당]
[칭기즈칸의 좌상]
안내하던 가이드가 국회의사당을 가리키며 몽골의 나쁜 놈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하는 말이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단순한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하기에는 여운이 남는다.
광장의 중앙에는 광장 이름의 주인공인 수흐바타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수흐바타르(1893-1923)는 몽골의 정치인, 군인, 혁명가였다. 20세기에는 몽골 인민공화국의 국부로 대우받았고, 지금도 몽골에서는 독립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몽골의 수도 이름인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인데, 이는 수흐바타르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수흐바타르 기마상]
수흐바타르 광장의 유래를 보면 재미있다.
중국(청나라)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이끌던 수흐바타르가 1921년 중국군을 몰아내고 이 도시로 개선할 때 말이 지금의 동상 자리에 오줌을 쌌고 이걸 길조로 여긴 몽골인들은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아 놓았다.
그 후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이 말뚝이 발굴되어 그 자리에 수흐바타르 동상을 세웠고, 동상을 중심으로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광장의 북쪽에 국회의사당을 지었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울란바토르 최고의 랜드마크로서 각종 국가행사와 문화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크고 작은 시위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시내의 주요 볼거리가 이 광장에서 도보 15분 내에 있기 때문에 울란바토르 여행의 시작점이 된다. 당연히 외국 관광객이 많고, 현지인들에게도 이곳은 만남의 광장으로 통한다.
촌부 일행이 찾은 이날도 각종 모임을 하는 시민들, 결혼식을 올리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990년에는 이 광장에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시위가 벌어졌고, 1992년 몽골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민주국가가 되면서 몽골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더욱 뜻깊은 장소가 되었다.
광장 주위에는 시청 건물, 오페라하우스, 전화국, 증권거래소, 역사박물관, 은행 등 각종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이곳이 몽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하는 중심지임을 실감나게 한다.
수흐바타르 광장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간 곳은 ‘THE BULL’ 이라는 상호의 샤부샤부 집이다. 샤부샤부가 본래 몽골에서 유래한 음식이라는 이야기마저 전해져 오는지라 기대를 갖고 갔다. 마침 이 음식의 역사를 다룬 글을 후에 접하게 되어 아래에 그대로 옮긴다(이우석의 푸드로지. "푸짐하게 먹는 샤부사부". 문화일보 2024. 10. 10.자).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란 이름은 일본어로 ‘찰방찰방’ ‘슬쩍슬쩍’ 정도의 상황을 가리키는 의태어다. 중국에선 솬솬궈(涮涮鍋)라 쓰는데 솬은 씻거나 헹구다는 뜻의 쇄(涮)자를 쓴다. 영어로는 발음 그대로 샤부샤부(shabu shabu)라 표기한다.
이름 뜻처럼 고기나 채소를 얇게 저며 육수에 헹구듯 데쳐서 먹는 요리다. 1952년 일본 오사카 식당 ‘스에히로’(スエヒロ)에서 이름을 처음 붙여 팔았다고 전해진다. 이름은 식당에서 지었지만 요리법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직접 군대를 이끌던 쿠빌라이는 시장기를 느껴 평소 즐겨 먹었던 칭둔양러우를 먹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시간이 없었던 나머지 주방장이 얇게 썬 양고기를 재빨리 데쳐 먹는 요리를 개발했다. 쿠빌라이는 새로운 음식에 매우 만족했고 이후 전쟁이 끝난 후 궁에서 ‘그때 그 요리’를 다시 해오라고 명했다. 이렇게 생겨난 요리가 바로 ‘데쳐 먹는 양고기’라는 뜻의 ‘솬양러우’다.
애초 궁중요리였지만 이후 청나라 때 둥라이순(東來順)이라는 식당 주인이 요리법을 빼돌려 일반인들도 맛볼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북방에선 솬양러우를 즐겨 먹고 있다. 솬양러우는 방식이 비슷한 쓰촨(四川)식 훠궈(火鍋)와는 달리 담백한 육수 맛이 특징이며 주로 양고기를 넣어서 먹는다.
아무튼 솬양러우는 일본에 전해지며 쇠고기와 채소 등으로 재료가 바뀌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1947년 잡지 등에 규니쿠노미즈타키(牛肉の水炊き)란 이름으로 솬양러우와 비슷한 요리가 소개됐는데 ‘소고기 전골’이란 뜻이다. 이것이 점차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샤부샤부 메뉴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현대 일본에선 특별한 날의 가정식이나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샤부샤부의 기본 원리는 식탁에서 국물을 끓이면서 채소와 고기를 데쳐 먹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소고기 아니면 해산물을 넣는 샤브샤브를 흔히 볼 수 있지만, 내륙국가인 몽골은 해산물은 먼 나라 이야기고, 소고기, 양고기, 말고기를 넣고 만든다.
말고기 샤브샤브는 처음 먹었는데(말고기는 샤브샤브뿐만 아니라 고기 자체를 처음 먹었다),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말고기라고 해서 그런 줄 알지 그냥 조리해서 주면 소고기로 착각할 정도이다. 외관은 물론 내부도 정갈하게 꾸민 이 식당이 울란바토르에서 유명한 샤브샤브 집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The BULL'의 샤브샤브]
식사를 마치고 자이승(Zaisan) 전망대로 향했다. 구릉 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몽골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구 소련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구 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이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보수공사 중이라 전망대에 오르지 못하고, 그 앞에 있는 자이승 힐 센터(Zaisan Hill Center. 쇼핑몰로 이곳 7층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이 연결된다)에서 창을 통해 조망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자이승 힐 센터(Zaisan Hill Center) 앞마당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몽골 탱크가 전시되어 있다.
[자이승 전망대 기념탑][자료사진]
[자이승 힐 센터]
북위 47도 55분, 해발 1,350m의 고지대에 있는 울란바토르의 8월 중순(8월 평균 최고기온은 23도이다)답지 않게 이날 오후 2시의 기온이 27도나 되어 꽤 더웠다. 푸른 하늘에 작열하는 태양이 먼 데서 온 객을 환영하는 것이려나. 꿈보다 해몽이 좋다.
더위 속에 이어진 발걸음이 이태준 선생(1883-1921)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세브란스 의대를 나온 선생은 몽골에 근대 병원을 개설하고 국왕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항일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구 소련군에 체포되어 순국했다.
2021년 7월 몽골 정부가 기증한 2,200평의 부지 위에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표지 비석, 기념관, 가묘(假墓. 진짜 묘는 불명이다)가 설치되어 있다. 울란바토르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런데 이날은 보수공사 중이라 전체를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에서 나와 더위도 식힐 겸 멀지 않은 곳의 카페를 들렀다. 몽골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구릉지대 초원에 고급스럽게 만든 카페이다. 독립공간의 게르를 여러 동 설치하여 그 안에서 차를 마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전경이 좋아 바깥 테라스에서 즐기는 편이 낫다.
유심히 보면 이 일대의 건물들이 하나 같이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멋스러운 모습이다. 아마도 서울의 강남처럼 울란바토르의 신흥 부촌인 듯하다.
[구릉지대의 카페와 울란바토르 전경]
다음 행선지는 마사지하는 곳. 툴강변의 외관상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에 차린 마사지업소가 특이하다. 그렇다고 비밀스러운 곳은 아니어서 “HUNNU MASSAGE” 라는 간판을 입구의 벽에 정식으로 부착했다.
몽골은 마사지와 친한 곳이 아닌데, 관광객이 많이 오면서 동남아식의 마사지업소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도중에 잠이 드는 바람에 잘하는지 여부는 판단키 어렵다.
[툴강변의 마사지 업소]
이날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몽골 민속공연 관람이다. 숙소인 라마다 호텔에서 걸어갈 정도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연장에서 저녁 6시부터 1시간 동안 보았다. 마두금의 연주 소리와 전통음악인 흐미(세계문화유산이다)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노래와 음악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곡예사의 현란한 몸놀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껏 보았던 서커스단의 그 어떤 곡예사보다도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였다. 사람의 몸을 그렇게까지 단련시킬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공연장에 딸린 작은 기념품 매장에서 벼르던 몽골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몽골 돈 5만 투그릭=한화 약 2만 원).
[민속공연]
관광을 다 마치고 “세종”이라는 상호를 쓰는 한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속담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이날만큼은 그 반대이다.
메뉴는 소꼬리찜 정식. 맛이 괜찮았지만, 고기를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맛이 돌지 않았다.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2024. 8. 13.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났다.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800km 떨어진 흡수골로 이동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을 가려면 먼저 비행기로 무릉공항까지 간 후 그곳에서 다시 자동차로 3 시간 가야 한다.
6시에 호텔을 떠나 울란바토르 공항으로 가는 데 1시간 걸렸다. 9시 비행기라 시간 여유가 있어 여행사에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공항에서 도시락을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인천공항 같으면야 공항에 식당이 즐비하니 그럴 일이 없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은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다. 트레킹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의 아침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9시 정시에 이륙하여 50분 걸려 도착한 무릉공항(Murun Airport)은 해발 1,290m의 초원 위에 활주로 말고는 달랑 집을 한 채 지어 놓은 게 전부인 그야말로 시골 공항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영상 17도의 시원한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앞 뜰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다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한 대 전시되어 있는 게 눈길을 끈다.
[무릉공항과 전투기]
무릉공항에서 목적지인 흡수골까지는 전술한 대로 자동차(우리 일행은 SUV 3대에 나누어 탔다)로 3시간 걸린다. 끝없는 초원길인데 그중 두 시간은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당연히 멀미를 각오해야 한다.
도중에 길가의 'Hatgal Complex'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메뉴는 역시 고기요리로 양념구이)를 하고(12시 40분), 30여분 가니까 흡수골의 호수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Hatgal Complex'의 고기 양념구이]
몽골정부에서는 흡수골을 청정지역으로 보존하기 위해 199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흡수골의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오후 1시 40분에 호숫가의 한 곳에서 하차하여 인근 구릉지대를 1시간 정도 가볍게 걸었다. 트레킹이라기보다는 산책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시작과 동시에 하늘이 흐려오더니 비가 내렸다. 가이드 말이 흡수골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어 비옷이나 우산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초원 위로, 또는 우거진 숲속으로 나 있는 이 산책로가 가관이다. 비가 와서 축축한 것은 그렇다 쳐도 곳곳이 소똥이나 말똥 천지다. 몽골 하면 먼저 떠오르는 저 푸른 초원이 정작 소똥과 말똥의 지뢰밭일 줄이야. 비에 젖어 가뜩이나 미끄러운 판에 그 똥들을 이리저리 피해 걸으려니 고역이다.
급기야 일행 중 여자 한 분이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고, 그 바람에 그분은 이후의 일정 내내 게르에만 머물러야 했다. 이쯤 되면 초원의 낭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비 오는 산책길]
여기서 가이드가 이번 몽골 트레킹에서 길이 남을 멋진 어록을 남겼다.
“이곳은 곳곳에 똥이 널려 있다. 그런데 그 똥은 피하는 것보다 밟는 게 낫다. 똥을 밟아 더러워진 신은 씻으면 되지만, 피하다 미끄러지면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다.”
산책을 끝내고 다시 차에 올라 오후 6시에 최종 목적지인 토일록트(Toilogt) 캠프에 도착했다. 흡수골의 호숫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게르 캠프다.
비가 야속하게 계속 내린다. 그것도 제법 강한 빗줄기로. 캠프의 여직원들이 우리 일행 각자에게 배정된 게르로 짐을 옮겨주었다.
이곳에서는 나이 어린 여직원들이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밤에는 게르가 추워서 장작 난로를 지펴야 하는데 역시 이들의 몫이다, 초저녁에 한 번, 밤 9시경 한 번, 그리고 자정이 가까운 무렵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빗속에 게르를 돌며 그 일을 하는 여직원들이 측은해 보였다. 몽골 고용 현장의 적나라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토일록트 캠프의 이모저모]
오후 7시에 캠프 중앙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파스타. 재미있는 것은 파스타에 면보다 고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역시 고기 천국의 나라이다.
영상 13도의 쌀쌀한 날씨에 하염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꿈나라로 향했다. 별구경은 비가 그칠 다음날로 미루고, 장작 난로가 뿜어내는 열기 덕분에 추위를 모르고 깊이 잠들었다.
[면보다 고기가 많은 파스타]
2024. 8. 14.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여전히 가는 비가 조금씩 내린다. 그래도 영상 13도의 날씨가 상쾌하다. 오전 8시에 뷔페식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호숫가를 거닐었다. 말이 호수지 멀리 수평선이 보이고 물가에는 파도가 치는 바다나 다름없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물론 이곳에서는 비가 그쳤다고 그친 게 아니다.
[흡수골 호숫가]
10시에 차를 타고 1시간 걸려 하샤산 트레킹(총 거리 13km) 시작 지점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이 하도 울퉁불퉁하여 멀미가 날 정도로 차가 춤을 추는데, 도중에 양떼나 소떼, 심지어 야크떼까지 이동하며 길을 막는 진풍경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가히 동물의 천국이다. 이 순간만큼은 이들이 이 땅의 주인 아닐까.
[길을 막고 이동하는 야크떼]
오전 11시 15분 마침내 하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출발지 고도 해발 1,700m). 정상(해발 2,450m)까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 나 있어 걷기에 편하다. 정상까지 일부 숲속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초원지대라 임도(林道)를 낼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용도로 이런 길을 개설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샤산 등산 시작 지점]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난 이 길의 백미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흡수골 호수가 잘 보인다는 것이다. 내륙국인 몽골에서 이 호수는 ‘어머니의 바다’로 불린다. 남북으로 길이가 136km, 면적이 2,760㎢(제주도의 1.5배)에 달하여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호수이다. 최고 수심은 262m이다.
빙하가 녹은 물이 아니라 지하에서 용출되는 물이 호수를 이루고, 북쪽으로 러시아의 바이칼호로 흘러간다. 8월 하순이면 가을로 접어들고 겨울에는 얼음이 어는데, 그 두께가 무려 5m 이상 되어 그 위로 차가 다니고, 얼음축제, 눈축제가 열린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시야가 트여 눈에 들어오는 호수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이 등산로는 야생화의 천국이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한국의 산은 나무에 리본을 매달아 등산로임을 표시하는데, 이곳은 나무에 초록색 칠을 하여 등산로임을 알려준다.
[야생화와 함께 하는 등산로]
[나무에 초록색을 칠한 등산로 표시]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중턱에서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오후 1시). 쌀밥에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벼 먹었다. 그 기막힌 맛은 이런 곳에서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캠프에서 보온병에 넣어온 더운물에 타서 마시는 홍차 또한 일미(一味)이다, 도시락 속에 있던 닭고기는 미안하지만 손도 안 댔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여기서 일행이 나뉘었다. 일행 중 4명은 1시간 30분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정상 정복을 포기하고 바로 하산하였다.
정상의 해발고도가 2,450m인지라 고산증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때로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오락가락하는 비가 산객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 않아 좋은 대신 다소 쌀쌀한 날씨 또한 부담이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게 마련인 게 세상사 아니던가.
[비가 오락가락하는 등산길]
잠깐 날이 개어 정상 부근에 있는 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일군의 말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와 앞길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참으로 천변만화한 날씨다. 잠깐 날이 갰을 때의 경치는 캐나다의 로키산맥을 연상케 하였는데 아쉽다.
[정상 부근 초원지대의 말들]
해발 2,450m의 정상에는 누군가가 돌탑을 쌓아 놓았다. 우리나라 산의 정상에 오르면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 돌탑이다.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한 몽골인들이 생각도 비슷하게 하는 것일까.
본래 이 정상에서 보는 흡수골 호수가 장관이라는데 가는 비를 뿌리는 짙은 구름으로 인하여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게 하늘의 뜻인 걸 어쩌랴.
[하샤산 정상의 돌탑]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을 흉내 내어 시조 한 수를 읊어 본다.
가는 비 내리는 산마루에 구름이 머흐레라
장대한 호수는 어느 곳에 숨었는고
돌탑에 홀로 서서 볼 곳 몰라 하노라
주위가 보이지 않고 춥기도 하니 정상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서둘러 하산했다. 7부 능선쯤 내려가니 해가 난다. 이왕이면 진즉에 날 것이지. 다 내려와 시계를 보니 4시 10분이다. 산행에 대략 다섯 시간 걸린 셈이다.
캠프로 돌아와 저녁 식사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본래는 그 시간에 호수에서 관광보트를 타고 유람할 계획이었는데, 비바람이 분 탓인지 파도가 심하게 쳐 단념했다.
휴식을 겸해서 그냥 호숫가를 거니는데 날이 개니까 호숫물이 그렇게 푸를 수가 없다. 푸른 하늘, 푸른 호수, 푸른 초원이 삼위일체가 되어 연출하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이다. 흡수골의 진면목(眞面目)이 바로 이런 것 아닐는지.
[푸른 하늘, 푸른 호수, 푸른 초원]
오후 7시에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몽골의 전통음식인 ‘허르헉’이다. 유목민들이 명절이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먹던 것이다.
쉽게 말해 양고기찜(또는 염소고기찜)이다. 양을 잡아 고기 부위의 지방을 빼고 먹기 좋게 썬 후 커다란 솥에 소금 및 달궈진 돌과 함께 넣어 익힌다. 경우에 따라 순대나 당근, 감자, 양파 등 채소를 넣기도 한다.
촌부는 5년 전에 키르키스스탄에 가서 천산산맥 트레킹을 할 때 양고기를 질리도록 먹은 후로는 양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몽골의 전통 요리를 맛본다는 호기심에 먹어보았다. 의외로 부드럽고 냄새가 거의 없으며 맛도 괜찮았다. 술안주로도 적격일 둣하다.
[허르헉]
식후에 몽골에서의 마지막 밤을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보냈다.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에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들이 총총하다.
불이 다 사그러지는 아쉬움 속에 게르로 들어가 잠을 청할 때는 시계가 어느새 밤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캠프파이어와 북두칠성]
2024. 8. 15.
귀국하는 날이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게르 밖으로 나서자 오싹 소름이 끼친다. 영상 9도의 날씨가 더운 곳으로 떠나가는 객을 전송하려나 보다.
동녘 하늘이 서서히 붉어오기 시작하는 새벽 5시 30분 차에 올랐다.
[흡수골 호수의 여명]
이후의 일정은 이곳에 왔을 때의 역순이다.
먼저 SUV를 타고 무릉공항으로 가서(오전 8시 10분 도착),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오전 9시 30분 출발) 울란바토르 공항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면(오후 1시 출발) 2시간 30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그로써 5박6일 일정의 몽골 트레킹이 막을 내린다.
흡수골을 가고 오는 차창에 어린 광활한 초원지대와 그곳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소, 말, 양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끝)
달고랍 (達古拉) (마두금 독주곡) _ Da-gu-la (A S....mp3
[마두금 독주곡. 달고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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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은 양이나 소
말과 야크가 주인 맞아여.
거기에 타르박(Tarvag)과 땅다람쥐랑 잎갈나무.자작나무등등도여.
근디 쌩 날강도 인간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으니 몽골초원에 상채기나 나는 거고여.
그런데 절케 쥔 어른들 행차에 가던 길 멈춘걸 보니 그나마 알량한 휴머니티나가 느껴지니 다행입니다.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가 아니라
우민의 초원위의 臥禪
몽블랑 작 과 흡수골 작 두작품 모두 걸작입니다.
김텃골 2024.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