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플레이(O’Play) ‘파우스트’
2025.04.15 21:53
2025. 4. 11.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 오페라단의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인 ‘파우스트’를 관람했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가 쓴 동명(同名)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여 프랑스의 샤를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가 작곡한 이 오페라는 1859년 파리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 여러 곳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졌다. 서울시 오페라단도 2015년에 처음 공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서울시 오페라단이 이번에 무대에 올린 파우스트는 오페라에 연극을 결합한 오플레이(O’Play) 형식을 갖추었다. 그래서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서 연극배우 정동환이 노년의 파우스트를 연기한다. 오페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촌부로서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정통 오페라와 연극을 넘나드는 연출이 오페라와 연극 두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바야흐로 장르 간 융합의 시대이다. 거기에 현대적인 영상과 조명,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무대미술이 깊은 상징성을 더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웅대한 스케일의 무대가 관객을 압도했다.
괴테의 문학과 샤를 구노의 음악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한 이 오페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내면의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하였다.
인간은 늘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성의 소리인 연극과 감정의 소리인 음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파우스트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는지.
‘노래하는 파우스트’와 ‘말하는 파우스트’가 감정과 이성을 각각 대변하며 인간 내면의 갈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욕망, 그리고 구원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작곡가 샤를 구노는 아름답고 섬세한 선율, 풍부한 감정 표현, 그리고 극적인 전개를 통해 깊이 있게 풀어냈고, 그럼으로써, 이 오페라가 단순한 공연을 넘어 삶을 성찰하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이 오페라는 삶의 본질과 선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주인공 파우스트는 고매한 인격과 지식, 높은 지위, 명예를 모두 지닌 인물이지만, 삶의 공허함을 느끼고 악마와 거래하여 젊음을 되찾는다. 그의 끊임없는 갈망과 종국적인 후회가 구노의 음악을 통해 극적으로 전달되어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은 단지 젊음과 쾌락을 쫓는 게 전부인가, 아니면 깊은 고뇌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인가’
공연장을 나서는 촌부의 결코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화두(話頭) 하나가 붙잡는다.
늙은 파우스트의 절규처럼, 평생을 쌓고 닦아온 인격, 학식, 지위, 명예가 다 과연 부질없고 허망한 것일까. 오직 젊음과 그 젊음이 뒷받침하는 쾌락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일까.
금강경(金剛經)은 말한다. 세상만사는 모든 게 꿈이, 환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라고(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그렇다. 젊음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몽환포영(夢幻泡影)이 아닐까.
멋진 공연을 관람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신 안호상 세종문회회관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사족 하나)
정동환은 프랑스어 노래를 부르는 대신 한국어 대사로 노년 파우스트의 고뇌를 연기했다. 희곡의 원작자 괴테가 던진 철학적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반면에 오페라 가수들은 모두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그 뜻을 알기 위해 자막에 의존해야 했다.
아무리 샤를 구노가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가수들이 한국에서 공연하는 마당이라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을까. 무대를 보랴, 앞 사람 의자에 설치된 자막을 보랴, 눈이 바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수들은 어차피 프랑스어 노래를 익히느라 애를 썼을 텐데, 그 노고를 번역된 한국어 노래를 익히는 데 들였더라면 관객들이 편하게 무대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족 둘)
오페라의 마지막에 파우스트와 마르그리트가 마침내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 것은 극의 전개상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갑자기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라고 외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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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텃골
2025.04.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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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25.04.15 23:05
또 혀겄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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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아
2025.04.15 22:42
대법관님 글 너무 좋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글이네요.
칼럼에라도 기고 하는 것은 어떨지요?
소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입니다… -
우민거사
2025.04.15 23:07
에이, 촌부의 제멋대로 쓴 글일 뿐이야.
대중 앞에 공개하기엔 부끄럽지~
정부장은 선입견을 가지고 보니까 좋게 보이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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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25.04.17 08:59
문예비평가 나셨습니다.
못하는 게 뭐여유~~~?ㅋㅋ -
우민거사
2025.04.17 10:40
할 줄 아는 게 읍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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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보러 갈까 하다가
보게 되면 시간상 일박을 해야 돼서 군침만 삼키다가 못갔는데여.
더구나 정동환 배우와의 친분 때문에
인사로 라도가서 봐야 했는데..
담에 정동환님 만나면 할말도 없게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