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그친 뒤에

2025.10.25 20:00

우민거사 조회 수:94

 

   이틀 전이 상강(霜降)이었다. 말 그대로라면 서리가 내려야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수은주가 여전히 높은 데다 연일 비가 내려 정녕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게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마침내 그 비가 그치고 나니 하늘이 청명하게 열리고 금풍(金風)이 삽삽하여 비로소 시절이 가을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사위를 둘러보면 아래 어느 시인이 노래한 그대로이다.

 

   暑氣時將薄(서기시장박)

   蟲聲夜轉稠(충성야전조)

   江湖經一雨(강호경일우)

   日月換新秋(일월환신추)

 

      무더위가 바야흐로 약해지고

      벌레 울음 밤이 되자 더 잦아지네

      강과 호수에 한바탕 비가 지나니

      계절이 산뜻한 초가을로 바뀌누나

 

 

   위 시를 읊은 선객(仙客) 제기(齊己. 862∼937)는 선선해진 가을의 흥취에 젖어 숭산(嵩山)에서 노닐고 싶어 했지만(欲承凉冷興 西向碧嵩遊. 욕승양랭흥 서향벽숭유), 그곳까지 갈 수 없는 촌부는 같은 기분으로 지난 주말에 지리산을 거닐었다.

 

   지리산의 산중 해발 850m에 자리한 청학동 삼성궁은 한양에서 온 가을 나그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하여 한풀선사가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三聖)을 모시는 배달성전으로 조성한 이곳은 지리산의 돌과 흙과 나무로만 만든 돌탑, 돌담, 석상, 한옥 그리고 연못 등이 아우러져 마치 산수화 속을 거니는 듯했다. 게다가 한풀선사의 나이가 본인 주장으로 918세라고 하여 객의 눈을 크게 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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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과 한풀선사]

 

 

 

     지리산을 찾은 김에 천왕봉(해발 1,915m)까지 오르면 좋지만, 시간과 빗방울이 떨어지는 궂은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청학동에서 가까운 삼신봉(三神峰. 해발 1,284m)을 오르는 데 그쳤다. 

    삼신봉은 조선시대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을 만큼 비경(祕境)의 신령스러운 봉우리라는데, 짙게 깔린 구름과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에 비경은커녕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쉬움만 남기고 내려와야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삼신봉 정상 바로 밑의 갈림길에 세워져 있는 삼신봉 이정표(이 이정표에 삼신봉 1,284m라고 씌어 있다)를 보고 그곳이 정상인 줄 알고 “삼신봉이 유명하다더니 정상에 표지석 하나 없네”하고 투덜대면서 서둘러 하산했다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산행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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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 이정표]

 

삼성궁7.jpg[삼신봉 정상 : 자료사진] 

 

 

    손안의 새 한 마리가 덤불 속의 두 마리보다 낫다고 했던가, 촌부에게는 멀리 있는 숭산이나 지리산의 볼 수 없는 비경보다는 늦가을의 우거(寓居)와 금당천 풍경이 훨씬 아름답고 정겹게 다가온다. 

    원각사에서 무료급식을 마치고 서둘러 내려온 우거에는 가을꽃들이 만발했다. 뒤뜰에 서서 국화꽃을 꺾어 들고 그 향기에 젖어 드는 맛을 대처인(大處人)들이 어찌 알며, 파란 하늘 밑 개울가의 억새가 바람에 춤을 추는 모습에 넋을 잃는 정취를 그들이 어찌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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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국화꽃과 억새의 정취를 전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을 박멸 대상으로만 여겨 눈만 뜨면 으르렁대고 막말 행진을 펼치는 자칭 선량(選良)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하라사막보다 더 메마른 그들의 심성에 한 줄기 낭만과 여유를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비 갠 뒤에 맑게 부는 바람(=광풍 光風)과 밝게 떠오르는 달(=제월 霽月)을 닮은 심성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에 선량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절망하는 일이 없으련만. 정녕 연목구어(緣木求魚)이런가.

 

 05. Larghetto.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