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강(汝矣江)에 배를 대다
2025.12.06 22:03
내일이 대설(大雪)이다.
대설인 내일은 정작 날씨가 맑을 것이라고 일기예보가 전하는데, 그제 밤에 올해 들어 처음 내린 눈이 폭설이어서 서울 시내 곳곳의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전 지구상에 기상이변이 일상화된 작금(昨今)이라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사를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범부(凡夫)의 삶이 좀 더 편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1년 전인 2024. 12. 3.에 벌어진 터무니없는 계엄령 선포야말로 예측 불능의 날벼락이었다. 국회의 해제 결의에 의해 바로 해제되긴 했지만, 그 계엄으로 인한 후유증이 1년 내내 지속되고 있어 실로 안타깝다.
대한민국은 6개월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점쟁이가 있다면 세계 최고의 점쟁이로 칭송받을 것이라는 말이 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씁쓸하다.
한때 유행했던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역동적”이라는,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역동적”이 아니라 “예측불허의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게 현실적인 진단이 아닐는지.
어느 중앙 일간지에 실린 아래와 같은 사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일 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과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두 법안은 단순한 정치 쟁점을 넘어 사법부의 독림과 존재이유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중략)....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가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2025. 12. 6.자 중앙SUNDAY의 사설).
6개월 후는 고사하고, 한 달도 채 안 남은 을사년(乙巳年)이 가고 새해 병오년(丙午年)의 해가 밝으면 과연 우리나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걱정을 넘어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오늘날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게 된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고 핵심 역할을 한 게 바로 1년 전의 그 계엄령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그런 일을 저질러 역사의 중죄인이 된 마당에 온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하지는 못할 망정, 아직도 여전히 “계몽령” 타령을 하면서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뜨는 것이 제1야당의 대표이다. 1년 전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를 옹호하는 그의 태도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고 있는 것일까.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정책, 물가, 환율, 사법개혁,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특검의 무리한 수사 등을 둘러싸고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제1야당의 지지율이 그대로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심지어 여당의 1/2 수준이 되기도) 이유를 알 만도 한데, 그는 애써 눈 감고 있는 것일까.
달이 휘영청 밝은데(그제가 음력 시월 보름이었다) 먼 옛날에 살았던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이나 불러내 그의 시 한 수를 흉내내 볼거나.
煙籠寒水月籠沙(연농한수월농사)
夜泊汝水近酒家(야박여수근주가)
野將不知混世難(야장부지혼세난)
隔江猶唱吾等歌(격강유창오등가)
물안개 자욱한 차가운 강, 달빛 뒤덮인 백사장.
한밤중 여의강변에 배를 대니 주막이 가까이에 있구나.
야당 대표는 나라의 혼란스런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는 듯,
강 건너편에서 여전히 ‘우리는’을 부르고 있네.
위 시가 표절한 두목의 시 “泊秦淮”(박진회. 진회강에 배를 대다)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煙籠寒水月籠沙(연농한수월농사)
夜泊秦淮近酒家(야박진회근주가)
商女不知亡國恨(상녀부지망국한)
隔江猶唱後庭花(격강유창후정화)
물안개 자욱한 차가운 강, 달빛 뒤덮인 백사장.
한밤중 진회 강변에 배를 대니 주막이 가까이에 있구나.
가기(歌妓)는 망국의 한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듯,
강 건너편에서 여전히 후정화(後庭花)를 부르고 있네.
후정화(後庭花)는 고대 중국의 남북조시대 남조 진(陳)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후주(陳后主)가 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려 짓고 즐겨 불렀다는 노래이다. 진후주는 나라가 수나라에 멸망되기 직전까지도 향락에 탐닉했기 때문에, 이 노래에는 줄곧 ‘망국의 노래’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한편 ‘우리는’은 알려진 대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애창곡이다.
무릇 견제세력으로서의 정상적인 야당이 있어야 여당이 긴장을 하고 정치가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다. 야당이 지리멸렬하면 견제 세력이 없으니 여당이 야당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고, 그 결과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대로 그냥 입맛에 맞게 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위에서 인용한 신문 사설처럼 “어렵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라고 사회 각 층에서 아무리 경고를 해도, 현재 권력에 도취되어 있는 그들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그게 훗날 어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예 관심 밖이다.
때문에 한낱 민초(民草)에 불과한 범부들조차도 정상적인 제1야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명색이 제1야당의 당대표라는 사람이 아직도 ‘오등가(吾等歌)’에 얽매여 있어서야 되겠는가.
모순 투성이의 사람들과 집단이 만들어내는 희망과 고문이 뒤엉킨 상황을 묘사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너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혼란스런 장면들이 던지는 메세지가 겹쳐진다. 이 시대의 진짜 영웅은 누구인가. 진정 사심없이 오로지 국태민안을 위해 매진하는 위정자가 있기는 한 건가.
댓글 2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
여의강(汝矣江)에 배를 대다
[2] | 우민거사 | 2025.12.06 | 40 |
| 367 |
슬픔은 노래가 되고
[6] | 우민거사 | 2025.11.26 | 122 |
| 366 |
소설(小雪)과 억새
[6] | 우민거사 | 2025.11.22 | 127 |
| 365 |
2025년 ALB Korea Law Awards 축사
| 우민거사 | 2025.11.08 | 118 |
| 364 |
가을비 그친 뒤에
[4] | 우민거사 | 2025.10.25 | 143 |
| 363 |
양식(糧食) 곳간과 양식(良識) 곳간
[6] | 우민거사 | 2025.09.28 | 132 |
| 362 |
백중(百中), 백로(白露), 백로(白鷺)
[6] | 우민거사 | 2025.09.07 | 183 |
| 361 |
본모습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6] | 우민거사 | 2025.07.19 | 220 |
| 360 |
뽑고 나서 돌아보면
[4] | 우민거사 | 2025.06.21 | 187 |
| 359 |
백로에게 무슨 죄가 있나
[8] | 우민거사 | 2025.05.24 | 535 |










이젠 그 마저 맞는 분별인지 모르겠어여.
그저 안타까운 건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기회 있을 때 정리했어야 했는데
왜 미적 거리다가 이꼴이 됐는지.,
죄인은 감옥에 가야 되는 게 맞는 게 아닌지여?
왜 죄를 지은 죄인이 밖에서 설치도록 놔둬 결국은 재범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거덜내게 만들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