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행위, 계약, 합동행위?

2010.02.16 11:49

범의거사 조회 수:13917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바야흐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6월의 무더운 주말에, 여러 가지로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신랑 김영훈군과 신부 전민향양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모두 부산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두 사람 모두 이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불타는 향학열에 부모님 곁을 떠나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갔고, 거기서 자취를 하면서 형설의 공을 쌓아, 마침내 신랑 김영훈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신부 전민향양은 숙명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참으로 의지가 굳센 젊은이들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신랑 김영훈군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40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서 예비법조인으로서의 교육을 훌륭히 마치고 현재는 강원도 양양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실로 보기 드문 영재입니다. 그리고 신부 민향양 또한 신랑 김영훈군이 사법연수원을 다니는 동안에 이에 뒤질세라 숙명여자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 진학하여 마침내 올 봄에 석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입니다.

  이처럼 굳이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두 사람은, 서울에서 힘든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들이 계신 고향인 이곳 부산을 늘 생각하며 틈나는 대로 내려왔고, 2년 전인 1999. 7. 15. 바로 이곳 해운대에서 운명처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서로 "그래, 바로 이 사람이다. 뭐하다 이제야 나타났노"라며 사랑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생연분이란 바로 이런 사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신부 전민향양은 신랑 김영훈군이 마음씨가 착하고 재치가 넘치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신랑 김영훈군은 신부 전민향양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 다 "신랑이 너무 잘 생겨서, 신부가 絶世佳人이어서"라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새삼 그런 말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한 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랑, 신부 모두 새 천년의 21세기를 살아가는 낭만이 넘쳐나는 젊은이들인지라, 이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던 장면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신랑 김영훈군이 사법연수원의 마지막 졸업시험을 치른 2000년의 해가 저물어가던 지난 연말, 살을 에는 듯한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기차를 탔습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강원도 강촌. 눈 덮인 산하, 고즈넉한 오솔길, 月白雪白天地白의 온 세상이 다 두 사람의 품안으로 들어오던 그 날, 두 사람은 깊은 산 속 찻집에서 꽁꽁 언 손을 마주잡고 장래를 약속했습니다. "내가 평생 당신의 손을 녹여주는 사람이 될께"라고 말입니다.
      
  신랑 김영훈군과 신부 전민향양이 저에게 이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저는 두 사람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서로의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증표로써 보여주어야만 주례를 맡겠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부 전민향양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난 겨울의 어느 날 신랑 김영훈군이 술에 만취되어 밤늦게 신부 전민향양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민향양이 이튿날 아침 일찍 해장국을 사가지고 김영훈군의 집에 찾아가 김영훈군이 일어날 때까지 손을 호호 불며 그 집 앞에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신부 전민향양에게서 현모양처의 전형을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랑 김영훈군은 어떨까요? 신랑 김영훈군은 법조인답게 신부 전민향양에 대한 사랑의 서약을 문서로 남겼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평생 신부 전민향양만을 지금처럼 사랑한다.
  2. 부모님들께 항상 감사하며, 효도한다.
  3.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4.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한다.
  5. 항상 진실하게 생활하며, 거짓말은 맹세코 하지 않는다.
  6. 매일 1시간 이상 운동한다.
  7. 평생 허리 33인치 이하, 몸무게 78킬로그램 이하를 유지한다.
  8. 술은 폭탄주 3잔 이상, 소주 반 병 이상, 맥주와 막걸리 1000cc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9. 담배는 하루 반 갑 이상 피우지 않으며, 집안에서는 절대 금연한다.
  10. 밤 12시 이후 귀가는 외박으로 간주하며, 연락 없이 외박하지 않는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신랑 김영훈군에게서 실로 한 가정을 책임질 훌륭한 가장의 풍모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을 보면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서로를 깊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기에, 그 사랑의 힘으로 매우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법연수원에서 신랑 김영훈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이제 두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고, 때로는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법입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식의 단독행위나, 마주 보고 달리는 계약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낳고 길러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번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생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일심동체의 공동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결혼생활을 논리적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 넷, 또는 열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조건 이해하십시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신랑 김영훈군과 신부 전민향양이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에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도 계속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이 두 젊은이가 올바른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끝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내빈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신랑, 신부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1. 6. 10.

                                 주례      閔 日 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