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담고 설거지하고(퍼온 글)
2012.06.24 18:10
대법관은 나물담고… 판사는 설거지하고
이혜운 기자
입력 : 2012.05.28 03:31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법조인 불자 모임 '서초 반야회' 소외계층 위해 배식 봉사
"佛子로 살면서 봉사활동 못했던게 부끄러워
배고픈 사람 마음 이해하려 봉사하는 날엔 식사 한끼 걸러"
석가탄신일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원각사에선 점심을 먹기 위해 배식 번호표를 든 노인들이 신발을 벗고 법당 안으로 하나 둘씩 들어섰고, 이들을 위해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초록색 치마를 두른 민일영 대법관과 여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나물을 덜어 그릇 안에 담고, 이광훈 변호사는 따뜻한 밥을 펐다. 이혜영 안양등기소장은 고추장을 떴고, 이종언 서울중앙법원 부장판사는 후식인 떡을 날랐다. 도훈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와 이재교 변호사, 전선자 서울중앙지방법원 과장은 설거지하기 바빴다.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각사 안 법당에서 배고픈 노인들에게 나물 비빔밥을
배식하고 있는 민일영(왼쪽) 대법관과 여상훈(오른쪽)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들이 속한 법조인 불교모임 ‘서초반야회’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에서
‘밥퍼’봉사활동을 실시한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이들은 법조인 불자(佛子) 모임인 '서초 반야회' 소속 회원 8명으로, 이날은 후배들인 사법연수원 불교회 모임 '다르마 법우회' 회원 10명과 함께 배고픈 노인들을 위한 '밥퍼' 봉사를 하기 위해 나섰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그들에게 익숙한 검은색 법복(法服) 대신 푸른 앞치마를 두른 채 이곳에 나타나 '밥퍼' 봉사에 열심이다.
오후 2시 마지막 배식자까지 180여명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일어서자, 상을 접고 바닥을 닦았다. 그러자 '식당'이었던 공간은 순식간에 다시 '법당'이 됐다. 오전 10시부터 나와 나물을 다듬었다는 도 판사는 "취나물 같은 건 억센 줄기를 제거하는 등 잔 작업이 많다"고 말했다.
'서초 반야회'는 1995년 서울대 법불회 출신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50명 정도. 부처님의 정법을 바탕으로 사회법을 판단하고 적용해 평등과 자비 사상을 실천하자는 것이 목표다. 반야(般若)란, 불교 근본 교리 중 하나인 '지혜'라는 뜻이다.
원래 서초 반야회의 주요 활동은 법회와 경전 공부였다. 매달 한 번씩 우면산 대성사 법당에서 정기 법회를 가졌고, 매월 둘째 주 화요일이면 청사 내에서 경전 공부를 했다.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2년 전. 당시 회장이었던 박홍우 현 의정부지법 법원장은 "경전을 외우고 법회를 갖는 것보다 소외 계층을 위해 직접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회원 중 한 명의 부인이 이미 원각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그분이 다리를 놓아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배식 봉사활동이 시작됐다.
여 부장판사는 "지인(知人) 결혼식이나 법원 행사도 제쳐놓고 봉사하는 날은 반드시 이곳에 온다"며 "이날은 배고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바라밀의 날'로 지정해 한 끼 식사를 하지 않고 1000원씩 보시(布施)하는 수행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 대법관은 "밥을 따로 달라고 해 검은 봉지에 담아가 저녁을 해결하는 분들, 밥 한 그릇 먹기 위해 청량리에서 여기까지 오는 분 등 하루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며 "이런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부터 노인들을 위해 매일 급식소를 운영하는 보리 주지스님은 "20년 넘게 대민 봉사를 하면서 이렇게 법조계에서 직접 봉사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처음 본다"며 "살아있는 사람 한 분 한 분이 부처라고 생각한다. 식사를 드시는 분들도, 배식하는 법조인 분들도 모두 부처"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8/20120528000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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