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박일환, 김능환, 안대희, 전수안)
2012.07.11 17:50
2012. 7. 10.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안대희 네 분의 대법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하셨다. 대법원청사 2층 중앙홀에서 열린 퇴임사에서 네 분은 그 동안 몸 담아 온 법원을 떠나시면서 나름의 소회를 퇴임사에서 밝히셨다. 그 중 특히 김능환 대법관님의 퇴임사가 주목을 받았다.
아래는 이에 관한 신문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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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2. 7. 11.자)
“헌재 때문에… 대법 판결까지 불복 만연”
청문 지연 국회에도 쓴소리
10일 퇴임한 김능환 대법관이 퇴임사를 통해 헌법재판소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퇴임 대법관이 ‘작심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 전 대법관은 10일 오전 11시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재가 가지는 법률의 위헌여부 심사권과 법원이 가지는 법률해석권한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더 유익하고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과 헌재를 통합하자는 취지다.
그는 “대법원이 최종적 판단을 해서 재판이 확정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거나 승복하지 않은 채 다른 불복의 길을 찾으려는 심사가 만연해 있다”며 “최근 사회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어느 저명한 분(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지칭)조차 ‘대법원이 아니라 헌재까지 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법관은 헌재가 한 법률에 대해 여러 번 합헌 선언을 해놓고 나중에 갑자기 위헌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끊임없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아 재판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어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선언하지 않고 어느 법률을 이렇게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한다”는 비판도 했다. 이는 최근 헌재가 GS칼텍스에 대한 700억 원대 과세처분이 정당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을 위헌 결정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헌재가 지난해 말 인터넷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을 규제한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것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정위헌이란 ‘이 법률을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형식의 일부 위헌결정으로 일부 법관은 이를 법원의 법률해석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1988년 민주화의 결실로 출범한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한 공로가 있다”며 “합헌과 위헌이 뒤바뀌는 헌재의 결정은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전 대법관은 국회를 향해서도 “퇴임일자가 이미 6년 전에 정해졌는데 오늘에야 인사청문절차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퇴임하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사회지도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행태도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함께 퇴임한 전수안 전 대법관은 “흉악범이라도 국가가 살인형을 집행할 명분이 없고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형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밝혔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법관은 법이론뿐 아니라 인문사회적 지식과 대중문화를 이해해 진정한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업무에 매진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선배에게는 편안함을, 동료에게는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을 법관의 표상으로 제시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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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2.07.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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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2.07.11 18:12
퇴 임 사
오늘 이 귀한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해 주신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법원행정처장님, 여러 대법관님, 그리고 법관 및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판사로서, 또 대법관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저를 도와주신 여러 판사님, 재판연구관님, 그리고 비서관님, 실무관님, 김정은씨, 이주화씨를 비롯한 직원 여러분에게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저는 행운이었고, 또한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아울러, 그저 저를 믿고 응원해 준 제 아내 김문경씨와 두 아들, 형제자매와 가족, 친구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합니다. 이제 저는 법복을 벗으면서,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저의 생각 한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저의 퇴임 일자는 이미 6년 전에 정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후임 대법관 임명을 위한 절차가 마무리되기는커녕 오늘에서야 인사청문 절차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퇴임하게 된 것을 무엇보다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후임 대법관이 임명되기를 희망하며, 대법관 인사청문제도의 개선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누구나 사법신뢰의 위기, 법치주의의 위기를 말합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를 뜻하고, 사법은 법을 발견하고 선언하는 것을 본질로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무엇이 법인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면 그에 따라 법적 분쟁이 종결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여러 번에 걸쳐 합헌이라고 선언하였던 법률을 헌법이 바뀐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위헌이라고 합니다. 또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에서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위반되지 않는지를 선언하여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않고 법률의 해석론을 전개하여 어느 법률을 이렇게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법원은 그런 법률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하지도 못하면서, 이상한 논리로, 끊임없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 재판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려고 합니다.
이럴진대 무엇이 법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헌법이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된들 그것으로 법적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당에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는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최근에 사회지도자랄 수 있는 어느 저명한 분조차 자신이 당사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법원에서 심리되고 있는 특정사건에 관하여,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대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하여 재판이 확정되더라도, 그에 만족하거나 승복하지 않은 채 다른 불복의 길을 찾으려는 심사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법의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분쟁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걸까요? 그로 말미암아 증가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만 하는 걸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차라리 헌법재판소가 가지는 여러 권한 중 법률의 위헌 여부의 심사권과 법원의 법률해석권한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시켜서 관장하게 하는 편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더 유익하고,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 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음으로는 사회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행태도 지양되어야만 합니다.
재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재판은 과거의 사실관계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권리의무가 어떤 것인지를 선언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법률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정한 주의, 주장이나 이념 같은 것은 법관의 관심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법관의 관심대상은 우리 헌법이 선언하는 가치와 질서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어떻게 고양시키고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습니다만, 법관은 모든 재판에 있어 항상 배심원단과 같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고 상정한 가운데 절차를 진행하고 종국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재판절차의 공정성과 결론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며, 사법에 있어서 주권재민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며, 국민으로부터 재판의 신뢰, 사법의 신뢰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법의 밝은 미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실력과 인품은 물론, 모든 면에서 출중하신 대법원장님과 여러 대법관님, 그리고 정의감과 열정에 불타는 법관 여러분과 직원 여러분이 법원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의 건승을 축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7. 10.
대 법 관 김 능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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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2.07.11 18:13
퇴 임 사
1. 있을 때 못다한 일을, 떠날 때 말로써 갚을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떠날 때는 말없이’ 가 제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도 소수의견이라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견에 따라 마지못해, 그래서 짧게, 그러나 제 마음을 담아, 퇴임인사를 드립니다.
2. 법관은 누구나 판결로 기억됩니다.
저도 그러기를 소망합니다.
몇몇 판결에서의 독수리 5형제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수많은 판결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34년간 잘한 것 못한 것 모두 제 책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평가와 비판은 제 몫이지만, 상처받은 분께는 용서를 구합니다.
역부족, 衆寡不敵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최근의 어느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직접 살인형을 집행할 명분은 없다는 것, 아버지가, 그 아들이, 그 아들의 형과 동생과 다시 그 아들이 자신의 믿는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 1년 6월의 형을 사는 사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見解들이 多數意見이 되는 대법원을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으면서, 떠납니다.
3. 재판은, 판결문에 서명한 법관들끼리 한 것이 아닙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여러 모습으로 고생하신 직원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함께 참여하고 助力한 재판으로 더불어 남을 것입니다.
경비관리대의 실무관과 청원경찰, 새벽어스름에 사무실과 잔디밭을 살펴주던 파견근로자 여러분, 이른 아침 여러분과의 만남은 제 힘과 용기의 원천이었습니다.
재판연구관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인연을 맺고 함께 한 시간이 헛되거나 그냥 사라질 리 없습니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자존감과 자긍심으로 기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4. 끝으로, 여성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체 법관의 비율과 상관없이 양성평등하게 性比의 균형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대법원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이자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5. 저는 이제 법원을 떠나,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훈련소 면회 한번 못 가준 아들들에게는 때늦은 것이지만, 아직 기다려주는 남편이 있어 그리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일도 뜻 깊겠으나,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깨치고 싶은 꿈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던 老작가(박경리)의 심경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먼길”로 시작한 저의 대법관으로서의 임기를, 이제 그의 시 “내가 한 일”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만 싶습니다.
강물을 안으로 집어넣고
바람을 견디며
그저 두 발로 앞을 향해 걸어간 일
내가 한 일 중에
그것을 좀 쳐준다면 모를까마는”
여러분과 그 가정이 늘 平和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7. 10.
대 법 관 전 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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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2.07.11 18:14
퇴 임 사
이제 6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작별인사를 드릴 시간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동료 대법관님, 그리고 사랑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배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6년 전 영광스런 부름을 받고 대법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나라 발전의 기본이고, 이를 위해서는 법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검사로서 쌓아온 경륜과 가치관으로 법원의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제가 검찰에 오래 봉직하였지만, 검사든 판사든 법률가로서 공정과 형평의 잣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데 차이가 없다고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대법관으로서 대법원의 이방인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을 형성하는 주체이고, 여러분들과 같은 식구라는 의식으로 저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밀려오는 사건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법인지를 선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때로는 능력이 부치는 것이 아닌지 회의할 때도 많았습니다.
산더미 같은 기록과 연구보고서 속에서 때로는 고심의 밤을 보내고, 대법관들과 열정적인 토의를 하면서, 판결문 문구까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추억들이고 영광스런 소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법원 가족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대법관으로서 누렸던 명성과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사랑과 헌신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짧지 않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세상은 변하고 또 변했습니다. 바야흐로 가치관이 혼재된 사회가 되었고, 정의를 어느 하나의 잣대로 재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세상에서, 국민들은 법관이 마땅히 분쟁의 최후의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법관의 가장 큰 덕목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어 작은 목소리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법관의 삶, 그에 대한 평가는 단 하나의 사건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재판 한건 한건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 법관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법관은 한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하여야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한없이 높은 도덕성과 인격을 유지하여야만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은 고매한 인격을 갖춘 법관으로부터 자상하고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재판을 받고 싶어합니다. 법관은 법이론뿐만 아니라 폭넓은 인문사회적 지식, 그리고 대중문화까지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과 법정에서 뒤돌아 인생을 음미할 만한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현실감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관들이 밤늦게까지 그리고 휴일에도 업무에 매진하여야 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지켜보았습니다. 대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점이 제도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바른 재판을 위해서도 법관들의 이와 같은 과중한 업무가 경감되어, 생활세계의 생생한 직관 속에서 사건 하나하나에 대하여 충분한 논증을 할 수 있는 물적․제도적 토대가 갖추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제 하직을 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법원과 검찰 가족들,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실력과 제가 이룩한 성과에 비하여 과장된 평가를 받아 왔고, 제 마음 한 켠에는 항상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에 스스로를 한 없이 채찍질하였으나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을 깨달으며 어느덧 대법관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부디 국민과 역사 앞에 커다란 흠결이 없는 대법관 생활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간 저를 사랑하고 보살펴 주신 여러분들께 한없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로부터 받은 커다란 사랑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나누어 드리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법원가족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7. 10.
대 법 관 안 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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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 임 사
저는 이제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하여 주신 대법원장님, 동료 대법관 여러분, 그리고 지금까지 저를 위하여 헌신하여 주신 연구관과 행정처 직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퇴임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법원에서 보낸 33여년의 세월은 긴 여정이었습니다. 초임 법관 시절 모든 업무를 손으로 처리하는 때였습니다.
이제는 시설이나 업무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지만 앞으로 더 나은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공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였습니다. 때마침 논어를 읽다가 이천 년 전의 대화가 흥미로워 이 자리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공자께서 제자에게 포부를 말하여 보라고 하자 먼저 자로가 “수레와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고 벗들과 그러한 재물을 쓰다가 헤어져 버려도 아깝지 않은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자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브랜드 옷을 입고 싶고 친구와 어울려 놀고 싶어 합니다.
이때 안회가 “내 좋은 점을 자랑말고 공로를 늘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응수합니다. 정말로 명언이지만 실천하기 너무 어려운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법관의 처신에는 이 말이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공자의 포부를 묻습니다. 공자께서 “선배에게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법관으로 사건을 심리할 때 선배법조인이 믿음직하게 생각하고 동료들이 의견을 존중해주고 후배들이 따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법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처리하는 기관이어서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여도 근본은 변함이 없어 우리는 고전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지만 남은 여러분께서는 보다 나은 법원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 7. 10.
대 법 관 박 일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