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을 따라 걷는 길(오대산 상원사, 월정사)

2010.02.16 11:37

범의거사 조회 수:10281



                 발자국을 따라 걷는 길


   눈이 내린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이 그칠 줄을 모르고 종일토록 내리고 있다. 그 눈이 내리는 길을 걷는다. 앞, 뒤, 옆, 위, 아래, 사방천지가 다 눈으로 덮여 있다. 그 하얀 눈으로 인해 눈이 부시다.  
   오대산의 깊은 산 속,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난 길을 혼자 걷는다. 아니 혼자는 아니다. 바람에 날려 와 볼에 부딪치는 눈이 있으니 말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으로 덮인 산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비록 군사용으로 뚫은 신작로라고는 하나, 오가는 이가 없으니 오솔길과 다를 바 없다. 그 산길을 눈을 맞으며 혼자 걷는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찍으면 마치 求道者처럼 보이려나....

   사법연수원 제30기 7반 연수생들과 횡성의 성우리조트에서 1박2일 동안 스키를 탄 후 인근의 오대산 월정사를 찾은 것이 12월 22일 밤이다. 01.jpg

 동행했던 연수생 세 명은 하룻밤을 자고 떠나고, 본래 예정대로 나 홀로 남았다.  

   새벽 4시의 예불로 시작되는 하루의 일과는 坐禪, 산책, 독서가 전부이다. 혼자이기에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명상에 잠길 수 있어 좋다. 冬安居 기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스님들은 일절 간섭을 안 한다.  

   법당과 요사채의 내 방(내가 잠시 거처하는 방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을 오가며 坐禪을 하다가, 문득 참선이라 해서 꼭 坐禪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寂然不動의 참선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行禪을 해 보자. 마침 함박눈이 계속 내리니 운치도 있지 않은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대략 9Km의 거리이다. 왕복 18Km를 다 걷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상원사까지 갈 때는 버스를 탔다. 진부에서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까지 오가는 버스가 1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다닌다.

   寂滅寶宮을 통해 비로봉(오대산의 정상으로 해발 1,563m)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중턱에 자리한 상원사는 통일신라시대인 서기 725년에 만들어진 현존 最古의 銅鐘(국보 제36호)과 조선시대 세조임금과의 일화를 전하는 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이 있어 많이 알려진 절이다. 02.jpg

 

   어린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하여 임금이 된 세조는 그 업보 때문인지 피부병에 시달렸다. 그가 佛力으로 병을 고쳐보려는 생각에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로 가던 도중, 더위에 지쳐 계곡에서 혼자 목욕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童子僧을 발견하고는 등을 밀게 한 후, 그 童子僧에게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童子僧이  

   "대왕께서도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세조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이미 童子僧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고, 피부병이 감쪽같이 나았다고 한다. 왕실에서 세조의 기억대로 조성한(서기 1466년) 木造像이 바로 문수동자상이다.  

   그로부터 5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세조도 없고 문수동자도 없는 절을 겨울나그네가 찾았다. 그 옛날의 세조임금은 육신의 병이라도 고치려 했다지만, 지금의 길손은 무슨 연유로 천리 길 한양 땅에서 예까지 왔단 말인가.  

   참으로 많은 눈이 내린다. 1987년 독일에서 법관연수를 하던 시절 알프스에 갔다가 순식간에 무릎까지 빠지게 쌓이는 눈을 만난 이후 처음이다. 나무도 하얗고, 산도 하얗고, 눈(眼)에 보이는 것은 온통 흰색이다. 그 흰색을 보는 나그네의 마음만이 그렇지 못할 따름이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리는 눈발 사이로 연수원 훈장 3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동서남북도 제대로 모른 채 의욕만 넘쳤던 천방지축의 첫해, 前年의 경험을 살려 잘 해보아야겠다고 다짐하였건만 정작 시행착오가 더 많았던 둘째 해, 그리고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 속에 자리하여 매사가 아쉬움의 연속이었던 올해, 결국 어느 한 해도 만족스럽지 못한 3년이었다.  

   연수원을 졸업하고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28기 제자들에 대한 고마움, 훌륭한 법관의 길을 가게끔 멋진 작품을 하나 남기겠다고 아끼고 아꼈던 29기 제자가 끝내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였을 때 느껴야 했던 안타까움과 허탈감, 마무리를 지어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데서 오는 30기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 등 만감이 교차한다. 그네들의 얼굴이 손에 잡힐 듯 겹쳐진다.03.jpg

 

   한 시간 전에 버스가 지나며 남겼던 바퀴자국이 그 사이 내린 눈으로 희미해져간다.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다가 멈추어 선다. 初老의 한 남정네가 문수동자처럼 후덕해 보이는 얼굴을 차창 밖으로 내밀고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태워다 주겠다는 것이다. 눈 덮인 산길을 혼자 걷는 것이 딱해 보였을까, 아니면 위험해 보였을까. 눈이 좋고 산이 좋아 걷는 것이라고 대답하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간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하는 표정은 아니었을까. 아무려면 어떠랴.  

   얼굴에 부딪치는 눈발이 더 강해진다. 안경을 벗었다. 아니 벗어야했다. 그 순간 -6.5디옵터의 방랑객 눈(眼)에 비친 세상은 희디흰 백지장 그 자체이다. 눈(雪)도, 나무도, 길도, 산도, 하늘도, 모두 하나의 흰 종이이다.  
   그렇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곧 세상이요, 세상이 곧 눈송이이다. 一微塵中含十方이요 一卽一切多卽一(작은 티끌 가운데에 세상이 품어져 있고, 하나가 곧 전부이며 전부가 곧 하나이다)이라 하지 않던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 모든 것이 하나인데, 고마움이나 안타까움이나 허탈감이나 미안함이 서로 다를 게 무엇이냐. 다르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다를 뿐이다. 喜怒哀樂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마음만이 있을 뿐 아닌가. 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자. 그 마음을 저 눈 속에 버리자. 번뇌의 불을 저 눈으로 끄는 것이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인지 응당 한 번은 지나갔어야 할 버스가 감감 무소식이다. 이제는 바퀴자국을 아예 찾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다른 새로운 자국이 점점이 생겨나고 있다. 겨울 나그네가 버리는 無量煩惱의 발자국이.... 발자국이 나그네를 따라가는가, 나그네가 발자국을 따라가는가.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1999.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