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길 따라 산길 걸으며(황병산, 삼양대관령목장)

2010.02.16 11:38

범의거사 조회 수:10649



                      목장길 따라 산길 걸으며

 


   황병산(해발 1,407m),

   새 천 년 들어 첫 산행이자 사법연수원 교수로서의 마지막 산행의 목적지이다. 오대산 노인봉(해발 1,338m)의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곳인데도 웬만한 산악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의 산이다. 삼양대관령우유로 유명한 삼양축산의 대관령목장(이하에서는 '삼양목장'이라고 한다)이 자리한 산이라고 설명을 해야 겨우 고개를 끄덕일 정도이다.
   그만큼 특징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산을 오르려면 노인봉을 거쳐 오든가 아니면 삼양목장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찾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의 無名의 산을 마지막 산행지로 택한 이유는, 바로 그 삼양목장을 오래 전부터 구경하고픈 마음이 있었는데다 완만한 산행길이 무릎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01.jpg

   사법연수원 교수들에게 있어 2월은 새 교재의 집필만 끝나면 1년 중 가장 여유가 있는 때이다. 그래서 硏山會에서는 2월에 雪山 등반을 하는 것이 관례이다. 설날 연휴가 끝난 2월 8일 오후 2시에 용평행 버스에 몸을 실은 硏山會員은 모두 7명.  
   硏山會 전임 총무로서 단골멤버인 나와 二村선생(이형하교수), 현재 총무인 德隱도사(박병대교수), 작년부터 산행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首位공자(한위수교수), 용평에서 야간스키를 탈 예정이란 말에 선뜻 참가한 담은대군(이진성교수), 여기에 뜻밖에 靑雲齋선생(김제식교수)와 無位대사(이영세교수)가 가세했다.  

   처음 희망자를 조사할 때는 20여 명에 이르더니,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 둘 빠져나가다 마지막으로 출발 당일에 3명이 포기함으로써 원정대의 규모가 매우 단촐해졌다. 여기에는 갑자기 한파가 몰려와 대관령 일대의 기온이 영하 15도 정도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한 몫 했다.  

   올 겨울에 보광피닉스, 성우, 사조마을 등지로 다섯 번에 걸쳐 스키장에 다니는 동안 정작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용평은 빼놓았는데, 마지막 스키를 결국 용평에서 즐기게 되었다. 다만, 야간에는 오렌지(초급자용), 블루(중급자용), 레드(상급자용)의 3개 코스만 열어 용평 스키장의 白眉라는 레인보우코스는 구경할 수가 없는 게 아쉬웠다.

   용평스키장의 밤 날씨는 정말 추웠다. 슬로프 근처에 설치된 온도계를 보니 영하 13도를 오르내린다. 거기다 바람까지 부니 장난이 아니다. 스키를 타다 휴대전화를 걸려고 장갑을 벗은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손가락이 시리다 못해 끊어지는 줄 알았다. 결국 예정보다 일찍 9시 30분쯤 콘도의 숙소로 들어가야 했다. 아, 내일은 더 춥다는데 어쩌나...!

   2월 9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들을 입는데, 하나같이 얼굴에 비장함이 감돈다. 어제 추위를 맛본 탓이다. 입을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껴입는다. 동상 걸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이 오고간다. 산을 오르다 보면 오히려 땀이 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보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삼양목장 측에서 보내준 지프차를 타고 목장으로 이동했다. 영동고속도로로 대관령을 지날 때마다 '저 목장은 어디에서 진입하나' 하고 궁금해했는데, 알고 보니 횡계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바로 진입로가 나온다. 그런데 목장이 시작되는 입구임을 알리는 간판을 지나서도 인적이 끊긴 산길을 차가 한참 달린다. 그도 그럴 것이 목장의 넓이가 무려 600만평이란다.

   정상적이라면 4,000여 마리의 소를 기를 수 있는데(실제로 초기에는 그랬다고 한다) 지금은 2,000여 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압력으로 축산물 시장을 개방하였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냉동된 수입고기보다는 냉장된 한우고기가 질과 맛의 면에서 분명 월등하게 좋지만, 가격 차이가 워낙 큰 게 문제이다. 그나저나 그 2,000 마리도 다 없애고 문 닫는 것은 아니겠지....  

   그 많은 소를 어떻게 키우고 관리하냐고 물었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 축사마다 몇 십 마리씩 동거(?)를 하는데, 동거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네끼리 우두머리를 뽑으며, 그 우두머리의 지시를 받는다고 한다.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우두머리 소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관리인들은 우두머리 소만 신경 쓰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광활한 초원지대에서의 방목이 가능하다나. 낮에는 풀을 뜯어먹으며 놀다가 저녁이 되면 우두머리가 앞장을 서서 한 줄로 자기 집을 정확히 찾아들어 간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두머리만 꼬시면 서울까지 몇 십 마리를 거저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황병산의 해발 900m 쯤 되는 곳에 위치한 목장관리사무소 앞에서 차를 내리니, 으악! 온도계가 정말로 영하 15도 주위에서 맴돈다. 牧場長은 정상은 아마 영하 20도쯤 될 것이라고 은근히 겁을 준다. 왕복 3-4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코스를 택하라는 충고를 곁들여서 말이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걱정하는 눈치이다.  

   아무튼 한양 땅에서 천리 길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일단 출발을 했다. 그 때가 오전 9시. 지프차는 왼쪽으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목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고원지대를 완만하게 도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일행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저 멀리 황병산의 눈 덮인 정상이 보인다.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이번 산행의 코스를 잡은 德隱道士가 애당초 계획한 바다. 나도 당연히 그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미 추위에 겁이 난 대다수가 고원지대의 목장길을 원한다. 거기에 德隱道士가 그 쪽 길이 백두대간 종주길에 속하며 경치도 더 낫다고 덧붙이자 결론이 쉽게 났다. 아쉽지만 어찌하랴. 중론에 따를 수밖에.  

   산행 시작 30여분이 지나면서 햇살이 비치자 추위가 서서히 물러가나 싶더니 이내 등허리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계속 발길을 옮겨 30여분이 더 지날 무렵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02.jpg

   등 뒤로는 고원지대가 펼쳐지는데, 발 앞은 천길 낭떠러지다.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완만한 태백산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저 멀리 주문진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는 망망대해의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북에서 남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줄기에 올라선 것이다. 그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길, 곧 목장길은 해발 1,000m가 넘건만 오르막내리막이 거의 언덕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평탄하다.

   왼쪽으로는 동해가, 오른 쪽으로는 흰 눈에 덮인 삼양목장의 거대한 고원지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길에서 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설악산의 대청봉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발왕산이 보이는데, 바로 그 발왕산에 있는 용평스키장의 레인보우코스가 손에 잡힐 듯하다. 여름에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의 목장 풍경이 더욱 볼 만하다고 德隱道士가 일러준다. 언제고 한 번 여름에 오리라라고 다짐해본다.   

   밋밋하기만 하던 산길이 갑자기 푹 꺼지기 시작한다. 길에 눈이 덮인 것으로 생각하고 발을 디디면 길이 아니고 길옆의 도랑이기 일쑤이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빠지더니 차차 정강이, 무릎까지 쑥 들어간다. 고원지대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 그 눈을 그 중 낮은 곳으로 쓸어다 놓았는데, 그곳이 길이려니 하고 발을 디디다 보면 복병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오히려 재미있다. 일부러 빠져보기도 하고 일행을 밀어 넣기도 한다. 이제는 더워서 옷들을 풀어헤치기 바쁘다. 영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포근하다. 얼마 전만해도 영하 15도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오전 11시. 삼양목장에서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섰다. 강릉이 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이제 코스를 다시 선택하여야 할 순간이 되었다. 온 길로 되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南行을 계속하여 대관령정상의 휴게소 쪽으로 갈 것이냐. 靑雲齋선생의 "등산이 뭐 이리 시시해" 하는 말 한 마디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後者를 택했다.
   목장 측에서 나온 안내인 말로는 2시간 정도면 대관령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前者는 아무래도 너무 맹숭맹숭하다. 대관령에 도착해서는 강릉으로 빠져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싱싱한 회로 배를 불리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회는 고사하고 이것이 고난의 시작이 될 줄이야. 그 때만 해도 짐작도 못할 일이었다.  

   대관령을 향해 30분쯤 더 걷다가 삼양목장에서 준비해 준 압구정김밥(강릉이 내려다보이는 황병산에서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김밥을 먹다니...!)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물을 끓여 농심 사발면을 곁들이니 맛이 더욱 기막히다. 눈 위에 앉아도 추운 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일기예보가 틀린 것 같다.  

   아무리 완만 길이라고 하지만 몇 시간째 걸으니 차차 힘들어진다. 여기에 더하여 발이 푹푹 빠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자, '등산이 왜 이리 시시하냐'던 靑雲齋선생이 이제는 말이 없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체감온도마저 급격히 내려간다. 완만한 가운데서도 고개라 할 만한 오르막을 다 오르자 커다란 이정표가 나그네들을 맞는다. 해발 1,200m의 仙者嶺임을 알리고 있다.
   이정표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고 생각해본다. 神仙이나 넘는 고개란 말인가? 하기야 그 옛날에는 일반인들이 이 높은 곳을 찾았을 리가 없으니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럼 나도 神仙인가? '仙'자를 들여다보면 산(山) 옆에 사람(人)이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신선이라 해서 틀릴 것도 없다.  

   이제껏 맨 앞에서 일행을 잘 인도하던 안내인이 갑자기 되돌아온다. 등산로에는 눈이 허리까지 빠지기 때문에 길을 둘러가야 한단다. 무언가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런, 이제부터는 정상적인 길에서도 아예 기본적으로 무릎까지 눈 속에 빠진다. 이젠 재미있다는 생각보다는 힘들다는 생각이 앞선다.  

   오른쪽으로는 여전히 목장의 고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왼쪽의 동해바다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몇 굽이를 오르락내리락 하였을까, 지친 몸을 눈 위에 누이고 잠시 쉬는데, 우리가 가는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어, 저 길은 뭐지? 그 방향으로 계속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 길의 연장선상을 눈(眼)으로 추적하여 보니 그 끝에 송전탑이 보인다. 으악, 저 탑이 있는 곳이 바로 대관령 휴게소!?

   그러나 이제 새삼 그 쪽 길로 가기에는 이미 우리의 위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보이던 삼양목장의 전경도 안 보인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어쩐다지?  
   안내인이 자기를 따라오면 된다면서 눈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이고 맙소사, 이제는 눈이 허리까지 올라온다. 발길을 돌릴 수도 없고 믿느니 안내인뿐인지라 부지런히 그 뒤를 따른다. 한참을 눈 속에서 헤매다 어느 오르막의 정상에 섰다. 으흐흑, 더욱 뚜렷이 보이는 대관령의 송전탑! 그러나 지금 이곳과 그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으니...  
   엎친 데 덮친다더니 안내인이 뒤늦게 실토한다. 사실 자기는 삼양목장 전망대에서 대관령으로 가는 길을 전에 가본 적이 없단다.  
   "허허, 헬기 타고 집에 가게 생겼네 그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아니 바람은 갑자기 왜 이리 쌩쌩 분단 말인가. 이제는 길이고 뭐고 없다. 일단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는 거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든 어두워지기 전에 이 위기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나무숲 사이로 눈을 헤치며, 때로는 엉덩이썰매를 타며 무작정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데, 느닷없이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안도가 된다. 철조망의 존재는 곧 사람의 존재로 연결되니까 말이다.  

   자유의 땅을 찾아 베를린 장벽을 넘듯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그 철조망을 타넘고 나자 얼마 안 있어 또 철조망이 나타난다. 나도 모르게 "정말 미치겠군!"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앗 그 순간 눈이 크게 떠진다.
  "살았다!"
   그 철조망 아래로 집, 아니 축사로 보이는 건물들이 보인다. 삼양목장의 인근에 위치한 한일목장의 건물인 것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는 삼양목장 지프차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생을 두고 볼 눈을 오늘 한꺼번에 다 보았다는 말을 뒤로 남긴 채 서울행을 재촉하였다.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입술이 다 텄다. 지리산 천왕봉이나 설악산 대청봉을 갔다 와도 괜찮던 입술이.....  
   서울행 차 안에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 자연의 섭리를 어긴 業報이다. 백두대간의 황병산에 와서 굳이 '압구정' 김밥을 먹고, '삼양' 목장에서 하필이면 '농심' 라면을 먹었으니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황병산 山神靈을 노하게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2000.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