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慾(대천과 정동진)

2010.02.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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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慾

 

   20세기의 마지막 장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지는 해와 뜨는 해를 보겠다고 오늘은 서쪽으로, 내일은 동쪽으로 잰 발걸음을 옮겼다.

   1998. 12. 31.  

   서해안의 落照를 감상하러 대천으로 향했다. 사법연수원은 연말이 사실상 방학기간 중이기 때문에 終務式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그래서 아침 일찍 떠나는 것도 가능한데,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느라 결국 오후 2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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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뚫려 해지기 전에 대천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천안을 지나면서 시내를 관통하느라 지체하는 통에 대천의 바닷가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일몰 후 30여 분이 지난 후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대천 어항으로 갔다. 자동차로 가면 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10여분 거리이다. 주위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도 어항은 시끌벅쩍하다. 바닷바람이 비릿한 생선 내음을 코끝에 전해 온다.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아저씨한테서 놀래미, 꽃게, 해삼 등을 3만원어치 사니, 그것에다 멍게, 조개 등을 덤으로 얹어 주며 생선회와 매운탕을 해 먹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해 준다. 참 친절하다며 작은 아들놈이 더 좋아한다.  

  가져간 생선들로 회를 떠 주고 매운탕을 끓여 주는 대가는 7,000원. 나와 집사람은 생선회로, 입이 까다로운 작은 아들놈은 꽃게탕으로, 미식가인 큰 아들놈은 생선회와 꽃게탕으로 모두 포식을 했다. 37,000원에 네 식구의 배가 뒷동산만해진 것이다.  
   하필이면 12월 31일이 생일이어서 어영부영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많은 집사람이 이번엔 모처럼 생일상을 잘 받았다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내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보내자고 작정하여 본다.

   1999. 1. 1.

   새 해 아침이다. 바닷가로 나섰다가 물이 깨끗한 데 놀랐다. 서해안 하면 의례히 흙탕물을 떠올리는 잘못된 선입견은 어디에서 유래했던 것일까. 海松과 고운 모래가 어우러진 해수욕장은 동해안에 비하여 손색이 없고, 겨울인데도 제법 사람들이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을씨년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겨울바다가 더 낭만을 느끼게 한다.  

   잔잔히 밀려오는 정겨운 파도를 뒤로 하고, 갈매못 순교지가 있는 오천항을 거쳐 광천으로 향했다.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토굴로 들어서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토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리저리 갈라져 마치 개미굴을 연상케 하는데, 새우젓을 종류별로 담가 놓은 드럼통이 개미 식량처럼 곳곳에 놓여 있다. 오월에 담그면 오젓, 유월에 담그면 육젓이라고 한다.  
   무어가 다르냐고 물어보았더니 달마다 잡히는 새우의 종류가 다르단다. 유월에 잡히는 것이 가장 실하고 맛이 있어 육젓을 최고로 친단다. "전쟁이 나면 여기 와서 숨으면 되겠네." 하는 말썽이의 말이 걸작이다.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토굴에서 이제 겨우 11살의 어린 나이에 전쟁의 피난처를 떠올리는 분단조국의 현실이 서글프다.  

   이왕 나선 길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하(왕새우)를 먹어보자고 안면도로 향했다. 도중에 서산방조제를 지났다. 02.jpg

   潮水 간만의 차이가 9m, 流速이 초당 8.2m인 천수만에 뚝을 쌓느라 '정주영공법'이라는 신공법이 등장하였다고 안내판이 가르쳐 준다. 22만톤짜리 폐유조선에 물을 가득 채워 그것으로 마지막 물막이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뚝을 쌓고 바다를 메운 간척지가 실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현재 이 곳에서 50만명의 1년치 식량에 해당하는 쌀이 나온다고 한다. '정주영'-그는 분명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불굴의 인물이다.  

   안면도의 백사장해수욕장은 행락인파로 人山人海이다. 이쯤 되면 이미 어촌의 순박한 맛은 찾기 힘들다. 겨우 발을 들여놓은 음식점은 불결과 불친절이 아우러져, 갈 길이 먼 겨울나그네로 하여금 서둘러 떠나게 만든다. 그저 바닷가에서 왕새우를 소금에 구워먹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했다.  
   대천의 어항은 다시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데 비하여, 같은 장사를 하면서도 이 곳은 다시는 안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조금만 유명해지면 곧바로 불친절로 이어지는 행태가 언제나 고쳐지려는지...  

   안면도에서 해미읍으로 길을 잡았다. 전라남도의 낙안읍과 더불어 현재 유일하게 城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03.jpg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선시대 성종임금 시절에 쌓았다는 圓形石城이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산악지대가 아닌 평야에 성을 쌓은 것이 특이하다. 이 곳에 설치하였던 兵營이 湖西左營이란다. 城안에 民家는 없으나, 東軒은 옛날 그대로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역사교육의 현장인 이런 완벽한 모습의 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것은 고사하고, 인구가 몇 만 명도 안 되는 조그만 읍내에 들어와서도 성을 찾기 위하여 이리저리 헤매야 하는 것이 길손을 우울하게 만든다. 읍내 어느 한 곳에 이정표가 없어 성을 지척에 두고도 그 앞에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이것이 21세기를 코 앞에 둔 문화국가 관광한국의 현주소이다.  

   그에 비하여 조선말기에 박해받던 천주교신자들이 城의 西門 밖에서 처형된 곳이라 하여 순교탑을 세우고 그들의 삶을 기리는 여숫골은 이정표가 있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 여숫골을 기점으로 하여 해미읍성을 찾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해미읍성은 천주교신자를 박해한 곳으로만 의미가 있으니 천주교신자만 둘러보라는 것인가? 종교단체에서 관리하는 성 밖의 시설은 잘 가꾸어진데다 관광안내문까지 만들어 쉽게 접근할 수 있건만, 국가유적지는 그 흔한 안내문 하나 없이 날로 퇴락하여 가고 있으니.....  

   작년(그래야 하루 전인 어제이다)에 못 본 日沒을 오늘이라도 보고 가자고 해미를 떠나 만리포로 갔다. 서해안에서 落照를 꼭 보고 가자는 심산이었다.
   해수욕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국립공원이라며 입장료를 받는다.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대천해수욕장에 비하여 만리포해수욕장이 돈을 받을 만큼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는 일견하여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내라니 낼 수밖에.  
   만리포 밑에는 연포가 있고, 위에는 천리포가 있다. 배를 타고 나가면 십리포도 있으니, 백리포도 있을 법하다.  

   그나저나 한 밤중의 귀경을 각오하고 일부러 달려 왔건만, 저 멀리 바다 수평선을 덮고 있는 구름은 무어람. 참으로 야속하기만 하다. 작년(어제)에 이어 올해(오늘)도 실패. 嗚呼痛哉라! 서해안의 落照를 보기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좋은 교훈을 얻었다. 금년에는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집사람의 촌평이다.


   1999. 1. 2.  

  서해안의 日沒 구경이 실패한 아쉬움을 동해안의 日出 구경으로 보상받으려고 正東津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밤 11시 55분 청량리역을 떠난 기차는 밤새 혼자 달려 6시간 50여 분만에 正東津에다 서울 사람들을 토해 놓는다. 04.jpg

 

     正東津은 서울에서 正東쪽에 있는 바닷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1월 1일에는 새 해 첫 해돋이를 보러 10만여 명이 몰렸다는 곳이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탓인지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인파가 해변가를 가득 메운다. 해 뜨는 시각은 7시 30분쯤이란다.  
   그런데 기차에서 내려 바닷가로 나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이라니. 서해바다를 뒤덮고 있던 구름이 그 사이 이리로 옮겨왔단 말인가!  

   하찮은 인간이 욕심을 낸다고 자연이 그에 따라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여야 했다.
   그래 욕심을 내지 말자. 無慾, 이것이야말로 올 한 해의 話頭이다. (1999.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