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별, 산속의 달(영남일주)
2010.02.16 11:11
바다의 별, 산속의 달
(영남일주. 嶺南一走)
아름다운 세상님,
크리스마스 연휴를 잘 보내셨는지요? 서울은 무척 추웠다고 들었습니다만, 한낮 동장군 따위를 겁낼 어른이 아니시기에 안부 여짜옵기가 오히려 민망스럽습니다.
소생은 충주→문경→점촌→상주→김천→대구→부산(해운대)으로 이어지는 7시간의 하행길과 부산(해운대)→울산→감포→포항→청송→의성→예천→점촌→문경→충주로 이어지는 10시간의 상행길을 쏘다니면서, 바다의 별도 보고 산 속의 달도 보았답니다.
그 안에 살면서 달과 별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마음도 보려 했지만 왜소한 미물의 눈에는 들어오는 게 없더군요.
초라한 舊屋들이 고층의 호텔과 백화점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해운대는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난맥상을 한 마디로 대변하여 주더이다.
집을 짓고 길을 내는 게 正道인가요, 아니면 길을 내고 집을 짓는 게 逆道인가요? 여름이면 하루에도 100만 명의 피서객이 몰려든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더군요.
툭하면 해외출장입네 하면서 국고를 축내면서도, 부산의 도시계획 입안자들은 깐느나, 니스 하다못해 와이키키도 안 가 보았는지... 이방인이 공연히 열이 났습니다.
송정 쪽으로 가는 해변가의 '달맞이언덕'에 자리 잡은 고급 빌라촌은 호화의 극치였지만, 이 또한 무계획 그 자체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판자촌처럼 보이게 해 놓았으니 말입니다.
행정관료들의 그 막강하다는 힘이 도대체 어디로 가 숨었는지 원....
내가 市長을 해도 이렇게는 안 만들었을 거라는 朴박사님의 語錄을 뒤로 남기고 북상길로 접어들었답니다.
감포에 다다르니 집채만하게 몰려 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앞바다 바위 가운데에 누워 계신 문무왕의 늠름한 기상을 보여 주는 듯하였지만, 갈수록 오만해지는 倭人들에 대한 반감이 그 포말에 투영되어 그렇게 여겨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포에서 문경까지 경상북도의 동남쪽 끝에서 시작하여 북서쪽 끝으로 TK의 심장부를 관통(지방도는 생략하고 국도번호로만 치면 14번→7번→28번→5번→25번→3번)하면서, 산이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많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 곳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른바 'TK정서'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상념에 잠겨 보았지만, 답은 하나,
"차나 마셔라"
아둔한 凡夫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있을 리가 없지요.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2박3일의 여정 끝에 오밤중에 집에 도착하여, 해운대의 겨울바다를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 어리석은 아비의 질문에
"역시 집이 좋아"
하고 답하는 똑똑한 아들놈을 멀끔히 바라보다 잠이 들었답니다. 벌써 세대차인가요?
PC 통신 시대에 연하장을 쓰는 바보는 없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995. 12. 26.
중원거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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