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미소(경주문화엑스포)

2010.02.16 11:19

범의거사 조회 수:10344


                              새 천년의 미소



   신라 천년의 古都, 경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京鄕 各地 , 아니 나아가 萬國의 사람을 끌어 모으는 힘을 지닌 신비의 곳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차 첫 발을 들여놓은 이래 몇 차례에 걸쳐 이 곳을 찾은 일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덧 큰 아들 庚浩가 중학생이 되었고, 그에게나 그 동생인 초등학교 5학년짜리 작은 놈 庚俊이에게 역사공부를 겸하여 경주를 다시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이미 코흘리개 시절부터 엄마 품에 안겨 두 세 번 간 적이 있다), 마침 그 곳에서 문화엑스포가 열린다 하여 한 달 전부터 기차표와 숙소를 예약하는 부산을 떨었다.  

   大望의 1998. 10. 17.  

   작년 봄 변산반도를 가느라 네 식구가 함께 기차여행을 한 이래 1년 반 만에 다시 함께 기차여행을 하게 되어 적지 않이 설레었는데, 정작 두 아들놈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르는 맛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그 표정을 이해할 만하다.
   거기에 대고 여행 중에서는 기차여행이 제일 편하고 멋있다고 나나 집사람이 아무리 외쳐본들 먹혀 들 리가 없다.  

   '그래 너희도 나이가 들어봐야 알지, 아직은 이르다.'

   충주에서 온 旅行道士 공재연 원장의 식구와 합류하여 서둘러 문화엑스포의 현장을 찾았다. 엑스포는 세계 각국을 돌며 4년마다 열리지만 문화엑스포는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이라는 선전과 매스컴의 부추김 때문에 연일 밀려드는 인파로 경주가 몸살을 앓는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지라,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그 동안 꽤나 걱정하였었다.  

   그런데 엘리뇨로 인하여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때 아닌 이질이 유행하는 통에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이 대폭 줄었고, 게다가 태풍 '제브'가 남부지방을 지나갈 것이라는 일기예보까지 겹쳐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아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소가 다름 아닌 경주인지라 줄서는 고생을 적게 하려면 일찍 나서는 게 上策일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직 아침 9시도 안되었는데, 보문단지의 행사장 중앙에 자리한 '새 천년의 미소관' 앞에는 벌써 줄이 늘어서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안내인의 충고를 받아 들여 세계문명관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의 4대 고대문명의 유물을 전시하여 놓은 곳이란다.
   아이들한테 좋은 구경거리 겸 역사공부의 현장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밀려오는 실망감이라니.... 도대체 전시물의 대부분이 복제품(그나마 축소된 것으로 현지에서는 관광용품점에서나 파는 듯한 것) 아니면 사진이었다. 집에서 두 다리 뻗고 비디오나 백과사전을 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얼마 전 여의도 63 빌딩에서 개최된 중국문화대전을 두 번이나 갔다 와 중국의 유물이 눈에 익은 두 아들의 얼굴에는 나보다 더 큰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아빠 여기 왜 왔어?"

작은 놈이 한 질문이다.

   국가에서 개최하거나 지원하는 행사가 아니라 경주라는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연 동네잔치라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하지 못한 불찰을 어린 아들한테 무엇이라고 설명하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몇 년 전의 대전엑스포만 생각하고는 '엑스포'라는 말에 현혹되다니... 쯧, 나도 나이를 헛먹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 시간을 기다려 15분 관람한다는 '새 천년의 미소관'- 이곳은 꼭 보아야 한다는 신문, 방송의 세뇌공작에 이끌려 그 넓디넓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새 천년'의 의미를. 이제까지의 천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石器를 만들고 瓷器를 구워왔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앞으로 천년 동안 집이나 전자오락실에서 비디오나 보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비디오 몇 대 갖다 놓고 눈알이 팽팽 도는 화면을 보여 주면서 '새 천년의 미소' 云云 하는 문화엑스포 조직위원회 사람들의 대담한 배포가 차라리 존경스럽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의 유랑극단보다도 못한 싸구려 공연단을 불러다 세계 각국의 민속공연을 보여준다고 내세우는 민속공연장,
   우리 국민은 아직도 코쟁이 외국인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四足을 못쓴다고 깔보는 것인지 무명의 발레리나 한 명을 내세워 땡볕에서 억지 춤을 추게 하면서도 백조의 호수 云云하는 厚顔無恥의 야외무대,
   동남아의 몇몇 못사는 나라의 것을 제외하면 그 나라 사람이 아닌 한국인이 버젓이 음식을 팔면서도 세계의 고유 음식을 직접 맛볼 수 있다고 선전하는 세계음식관(지금은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불란서포도주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룡을 늘어놓은 채 세계공룡전이라고 떠벌리면서도, 처음 들어갈 때의 12,000원의 입장료가 모자라 3,500원의 별도 입장료를 받는 공룡전시관,
   역시 사진만 늘어놓고는 ‘세계의 不可思議’를 전시한다고 3,500원의 별도 입장료를 받는 정말로 不可思議한 전시관.....  
   欺罔의 현장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한 마디로 말이 '문화엑스포'이지, 과거 군사정권시절에 민심 회유책으로 열렸던 전국 규모의 장터인 '國風'에다 몇몇 못 사는 나라의 장꾼들을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추가하여 난전(亂廛)을 벌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한 달 전부터 벼르고, 하루 전에 와서 밤잠을 설치고 아이들을 독려하여 나선 결과가 이 모양일 줄이야.

   억지춘향격으로 그나마 유일한 위안거리를 찾는다면, 1시간 줄을 서서 산 경주 '황남빵'이 食道樂家를 실망시키지 않은 것과, 庚俊이가 각설이타령에 각설이로 출연하여 왕초거지와 능청스레 보조를 맞추어 주위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것이다(부상으로 나무젓가락과 1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庚俊이가 비록 모조품일망정 무구정광대다라니경(현존 세계 最古의 목판본)과 직지심체요절(현존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의 탁본을 하나씩 얻어 친구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긴 것을 소득으로 추가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보다 더 의미가 큰 것은, 따라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뜻 깊었던 것은 밤 11시에 기차에서 내려 서울역 앞 광장의 포장마차에 들어가 네 식구가 함께 가락국수와 어묵고치를 먹은 것이다.
   한 밤중에 온 가족이 의기투합하여 포장마차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수국물만큼이나 따뜻하고 훈훈한 정이 가슴 속에 깃드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1998.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