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2, 鳥主의 위대한 탄생(조주봉)

2010.02.16 11:19

범의거사 조회 수:11672

 

 

          2,092, 鳥主의 위대한 탄생

 

 

우리나라에서 해발 2,092m 되는 산을 올라 본 일이 있는가?

 

종래 우리나라의 국토를 남한으로만 한정하여 말할 경우에는 1,950미터의 한라산이 국내에서 제일 높다는 것이 通說이었는데, 지난 1995. 12. 10.을 기하여 2,092미터가 최고봉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였고, 그것이 곧 通說로 될 거라고 한다.

 

    이름하여 "鳥主峰"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군 및 경상북도 문경시

 

겨울이 되는 初入에는 예외 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腰痛의 통과의례로 지난 일주일을 꼼짝 못한 게 억울해서 일요일(1995.12.10.)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月嶽山30 번이나 오른 의사선생님, 月嶽山을 한 번 오르려면 30 번은 굴러야 하는 생명보험회사 충주책임자, 그리고 필자, 이렇게 셋이서 해발 1,017미터의 鳥嶺山을 향하여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때는 정확히 1995. 12. 10. 10:02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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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만에 정상에 다다라 氣功체조로 새재뫼의 를 들이마시고 나니 비 오듯 쏟아지던 땀은 어느 새 구멍으로 사라지고, 싸나이들의 浩然之氣만이 하늘을 덮을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령3관문 쪽으로 가는 4시간 30분 코스의 하산길을 접어들기 겨우 10, 깎아지른 절벽길이 눈에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싸나이가 어찌 물러설 수 있느냐는 의사선생님과 생명보험회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는 충주책임자의 새중간에서 고민하다가, 어린 백성인 필자는 결국 불쌍한 부양가족을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는 쪽에 표를 던지고 말았다. , 그런데 이것이 고난의 씨앗이 될 줄이야.

 

뛰듯, 달리듯 下山하여 이화령에 도착하니 고작 1240. 지금 이 시간에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싸나이 의사선생님의 기개에 눌려 개끌리듯 그곳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주흘산(主屹山)으로 가야 했다. 해발 1,075 미터나 되는 高山峻嶺인데도....

 

이제는 이 용감한 싸나이 김석칠 비뇨기과원장은 母校(경복고등학교) 6년 선배님이시고, 생명보험회사의 충주책임자는 바로 고교 49회 동기인 이병찬 동문(삼성생명보험주식회사 충주영업국장)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여야 할 순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용감한 싸나이 6년 선배님께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는 점도 아울러.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의 정기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鳥嶺山에서의 下剋上 쿠데타를 응징하려는 의사선생님의 손아귀에 이끌려 또다시 1,000 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는 모습, 그것은 차라리....(한 폭의 동양화?).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집을 나설 때 우유 한 잔 마신 것밖에 없어유!"

 

했다가,

 

"나는 아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나왔어"

 

하는 답을 듣고는 모든 것을 체념하여야 했다.

 

하늘이 노래질 무렵이 되어서야 싸나이 선배님으로부터 건네져 오는 곶감이 어찌 그리도 맛있는지.

필자보다 20Kg이나 더 나가기에 먹는 것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이병찬 국장이 허기진 배를 부여잡은 채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고 하는 비장한 모습이야말로 生死의 갈림길에서 배회하는 求道者의 자세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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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약수터의 백번 지당하신 글귀,

 

'주흘산 백번 오르니 그 아니 기쁠쏜가'

 

가 흐릿하게 보임은 이 무슨 業報란 말인가? 병아리 오줌처럼 나오는 약수를 겨우 받아 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고 나서 통에 남은 물을 보는 순간, 우리는 먼 옛날로 돌아가 원효대사가 되어야 했다.

무수히 떠다니는 부유물, 그것도 모자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것까지 있었으니....

 

일망무제로 탁 트인 해발 1,075 미터의 정상은 피땀으로 얼룩진 또 다른 壯觀이었다.

훗날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은 이렇게 용감하였노라고 보여 주기 위하여 기념사진을 멋지게 박은 후(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 안동에서 온 등산객들을 유혹하여야 했다. 대원들은 젊은 남녀들이었는데 隊長이 중년의 여자여서 우리의 자랑스런 싸나이 선배님이 쉽게 성사시킬 수 있었다. 前歷이 의심스럽다), 허영호도 1,000 미터가 넘는 산을 하루에 두 개는 올라가지 않았을 거라고 으스대며 아래뫼길을 재촉하였다.

 

"2,092, 鳥主의 위대한 탄생"

 

이라는 새로운 話頭를 만들어 곱씹으며. (1995.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