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포천 국망봉)

2022.05.11 11:57

우민거사 조회 수:956

                       

                       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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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남한)에는 국망봉(國望峯)이 셋 있다. 그 가운데 제일 높은 것이 소백산의 한 봉우리인 국망봉이고(해발 1,421m), 그다음이 포천의 국망봉(1,168m)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동에 비교적 낮은 국망봉이 있다(해발 481m).

     한편 비슷한 이름으로 충주에 국망산(國望山. 해발 770m)이 있고, 북한에도 자강도와 양강도의 경계에 국망봉이 있다.

     북한에 있는 국망봉은 모르겠으나, 남한에 있는 국망봉들과 국망산은 말 그대로 ‘나라(=도읍)를 바라보는 산’이다. 따라서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전설 따라 삼천리’이다. .   

 

     우선 제일 남쪽에 있는 안동의 국망봉을 보자. 

     이 산은 퇴계 이황(李滉)이 올라가 도읍인 한양을 한눈에 바라보고 축지법으로 왕래하면서 국사(國事)를 의논한 산이라고 한다. 이황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해 있을 때, 간신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명종 임금을 국망봉에서 바라보고는 축지법을 써 한양으로 달려가 임금을 구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 산에 단을 쌓고 매년 10월 24일에 북쪽을 바라보고 절하기를 30년 동안 했으며, 돌아가신 단종을 애도한 곳이라고도 하다. 

 

      다음으로 소백산의 국망봉을 보자. 

      신라의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를 회복하려다 실패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금강산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이 산에 올라 멀리 옛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요컨대 이 산은 망(亡)해 버린 나라(國)의 도읍을 망(望)한 봉우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포천의 국망봉은 어떤가. 

      이 산에는 궁예(弓裔)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후삼국시대 태봉을 세운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한 뒤 날로 폭정이 심해지자 아내 강씨가 선정을 베풀 것을 간언하였다. 그러나 궁예는 오히려 강씨를 이 산 근처의 강씨봉마을로 귀양 보냈고, 그녀가 이 산에 올라 늘 철원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나 강씨를 찾아갔으나 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이에 궁예는 지난 일을 후회하며 이 산에 올라가 철원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국망봉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한편 충주의 국망산(國望山)은 위 산들에 비하여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을 때 명성황후가 금방산(禽傍山) 기슭의 가신리로 피난하였는데,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이 산에 올라가 한양 쪽을 바라보며 좋은 소식이 오기만 학수고대했다. 그 이후 금방산을 국망산(國望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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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한창인 2022. 4. 30. 포천의 국망봉을 찾았다. 히말라야산악회의 봄 정기산행의 일환이다. 

     이 국망봉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고, 정상의 해발고도가 1,168m이다.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52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한북정맥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그래봤자 1,100m급의 산이니, 촌부는 서울에서 출발 당시 큰 어려움 없이 갔다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술하듯이 그게 아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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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봉의 위치]

 

      아침 7시 강남역에서 출발하여 성수대교를 건너는데, 발사 준비를 마친 미사일을 연상케 하는 롯데월드타워와 그 주위의 풍광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전날 비가 온 덕분에 하늘이 깨끗해진 것이다.

      황사가 자주 나타나는 봄철에는 3-4일에 한 번씩 비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0국망봉2.jpg[성수대교에서 본 롯데월드타워]

    

      강변북로에서 구리-포천 고속도로로 접어들면 포천까지 금방 간다. 이 고속도로를 그동안 몇 번 이용하여 본 경험으로는 아직 교통량이 많지 않아 말 그대로 ‘고속도로’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비교적 거리가 짧아서일까, 남구리IC에서 신북IC까지 가는 동안에 휴게소가 없다. 유념할 일이다.

 

      고속도로의 종점인 신북IC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면 이내 길 오른쪽에 음식점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포천 방면의 골프장이나 산정호수 등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 또는 촌부 일행처럼 등산객들을 상대로 하는 탓인지 아침 이른 시각에도 영업을 하고, 실제로 손님들로 북적인다. 촌부는 그중 청국장과 순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집에 들렀는데, 추천할 만하다.

 

      포천시 이동에서 장암리로 들어가면 독수리가 날아가는 듯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이 산이 바로 국망봉이다.

       크리스탈생수 공장을 옆으로 하고 국망봉 기슭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북쪽에서 남쪽으로 달리는 한북정맥의 가운데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이날 산행의 최종 목적지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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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국망봉3-1.jpg[국망봉의 모습과 등산안내도]

 

      국망봉 등산코스는 세 개 있는데, 그중 1,2코스는 사설 자연휴양림을 지나야 해서 입장료(1인당 2,000원 + 차량 한 대 주차비 5,000원)를 내야 한다. 촌부 일행은 세 코스 중 최단거리인 2코스로 올라가 1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아침 9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그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자 눈앞에 커다란 저수지(장암저수지)가 나타났다. 이곳이 등산로 1,2코스가 갈리는 지점이다. 

      저수지의 물이 맑디맑은 호수와 그 주위의 산들이 연출하는 풍광이 일품이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답게 구석구석 비경이 감춰져 있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JTBC의 “갬성캠핑”에 방영된 곳이라는 안내판이 시선을 끈다.  

 

0국망봉5.jpg[장암저수지]

 

      등산로 2코스는 장암저수지의 둑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둑의 끝부분에서 아래로 잠깐 내려갔다가 숲속의 계곡 옆으로 난 길로 다시 올라간다. 그렇게 10여 분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그 임도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난 철계단에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대략 440m 정도 된다. 이정표가 정상까지 2.8km임을 알려준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40분. 정상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0국망봉6.jpg[철계단 옆의 이정표]

 

       이곳부터 정상까지 난 등산로는 한 군데만 빼고는 오르막 일색이다. 해발 1,168m의 높은 산에 해발 440m 지점에서 정상까지 난 등산로가 2.8km에 불과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촌부의 그동안의 등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는 곧 산행이 쉽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반들이 명색이 히말라야산악회의 베테랑 산꾼들이건만, 계속되는 오르막에 출발 30여 분만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무슨 산이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단 말인가.

      등산객이 거의 없는 산행 중에 그나마 처음 만난 두 등산객(종종 온다는 것으로 보아 인근에 사는 모양이다)이 한마디 한다. 

 

“이 산은 다 좋은데, 올 때마다 이 험한 오르막에 기가 질려요.”     

 

0국망봉7.jpg[히말라야산악회의 도반들]

 

      서울은 진달래가 진 지 이미 오래건만, 이 산은 아무래도 경기도의 북부지역에 있는데다 해발고도가 높다 보니 길가에 아직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다. 그에 더하여 목하 개화(開花) 중인 이름 모를 꽃들도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등을 타고 흐르는 땀에 등산자켓을 벗었다 입었다 해야 했다. 봄철 산행의 한 단면이다. 

 

0국망봉8.jpg[진달래]

 

     산행 시작 후 1시간 30분이 지날 무렵 대피소가 하나 나타났다. 출발지로부터 2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언젠가 겨울에 이 산을 등반하던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다 동사(凍死)한 적이 있었고, 그 후 긴급피난시설로 세워진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특별한 시설은 없어, 강한 비바람과 눈보라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 이상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0국망봉9.jpg[대피소]

 

      이 대피소를 지나면 잠시 후 2코스에서 유일한 내리막길이 잠깐 나온다. 그렇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가 정상까지 600m 남았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그 600m가 말 그대로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매표소에서 관리인이 건네준 지도에 이 부분이 ‘급경사 험로’라고 표시되어 있으랴. 

 

      거기에 맞추려는 걸까. 이제는 꽃은 더이상 볼 수 없고, 나무들도 겨울잠에서 겨우 깨어날 준비를 하며 작고 여린 잎사귀를 수줍게 내보이고 있다.      

  

0국망봉10.jpg[정상까지 600m 남은 지점의 이정표]

 

      이 마지막 600m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숨이 턱턱 막히고 한 발짝 발걸음마다 천근만근이다. 어떤 때는 누가 뒤에서 배낭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듯이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이제껏 웃음꽃을 피우며 대화를 즐기던 산행 도반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침묵이 흐른다. 대신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딱 한 마디 할 만하다.

 

“이 무슨 사서 고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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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국망봉11.jpg[마지막 600m의 험한 급경사로]

 

      12시 정각 마침내 해발 1,168m의 정상에 도착했다. 한북정맥에서 제일 높은 산답게 사방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훤하게 보인다. 힘들여 올랐기 때문일까,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율곡이 금강산 비로봉(해발 1,638m)에 올라 지었다는 시(登毘盧峯. 등비로봉)가 절로 떠오른다.

 

      曳杖陟崔嵬(예장척최외)하니

      長風四面來(장풍사면래)

      靑天頭上帽(청천두상모)

      碧海掌中杯(벽해장중배).

 

      지팡이 짚고 가파른 봉우리 오르니

      시원한 바람 사방에서 불어오네

      파란 하늘은 머리 위의 모자요

      푸른 바다는 손안의 술잔일세

 

      비록 비로봉보다 470m가 낮은 산에 오르긴 했지만, 470년 전의 이율곡이 느꼈을 기분이나 지금의 촌부가 느끼는 기분이 다를 게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날씨다. 비로봉에 오른 이율곡이 멀리 동해(=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손안의 술잔이라고 표현했듯이, 국망봉에 오른 촌부는 철원을 국망(國望)’하고 '손안의 도읍(掌中都)'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비가 올 듯 말 듯 하늘이 흐린 탓에 보이질 않아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저쪽이 철원 방향 아닐까 지레짐작으로 사진에 담아보지만 누가 알랴.

 

        날씨가 쾌청하면 북한산의 백운대도 보인다는데,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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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국망봉13.jpg[국망봉 정상과 주위 풍광]

 

      날씨가 다소 쌀쌀하긴 했지만, 정상 일대가 평평한지라 이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다. 김밥, 빵, 과일, 정상주(맥주, 막걸리, 꼬냑), 커피, 홍차가 어우러진 식단이 푸짐하다. 지난 1월 이천의 설봉산에서 맛보았던 기막힌 계란말이(최동진님 준비)가 재차 등장해 여전한 인기를 구가했다.

     일류 고급 레스토랑이 별거랴, 즐겁고 맛있게 먹을 음식이 있으면 그곳이 바로 식도락의 천국 아니겠는가. 

 

      배불리 잘 먹었으니 이제 슬슬 내려가 볼거나.

      하산길은 1코스를 선택하였다. 2코스로 정상을 오를 때의 그 힘든 행군과는 달리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헬기장이 있을 정도이다. 덕분에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도 훨씬 덜하다. 

 

0국망봉14.jpg[1코스의 평탄한 하산길]

 

       각종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한 이 길에는 특히 야생 두릅이 곳곳에 널려 있어 산나그네를 환호하게 한다. 등산로 바로 옆의 것들은 오가는 등산객들이 이미 거의 다 따갔지만, 한 걸음만 안으로 들어서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산이 높아 아직은 철이 이른 것인가, 겨우 새순이 나오기 시작한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에 더하여 물고기의 머리를 닮은 바위와 그 아래쪽의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빼어난 풍광을 덤으로 보고 즐길 수 있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不亦樂乎).     

 

0국망봉15.jpg[야생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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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국망봉17.jpg[물고기 머리를 닮은 바위와 주위 풍광]

 

      그러나 이런 유유자적(悠悠自適)의 하산길은 여기까지였다. 

       정상에서 1.8km 내려와 신로령을 0.5km 남겨둔 곳에 도착한 때가 오후 2시.  1코스의 정식 하산길은 계속 신로령까지 간 후 그곳에서 계곡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보니 비가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 옛 속담에 ‘급하면 돌아가라’ 했거늘, 급한 마음에 이곳에서 곧바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 결과 다시 시작된 고난의 행군! 자초했으니 누구를 탓하랴.

 

        정상을 오를 때의 급경사에 버금가는 이 내리막길은 그야말로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거의 안 다녀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는 급경사 험로를 내려가려니, 아이고 내 무릎!    

        오죽하면 이 길에 세워놓았을까 싶은 경고판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진즉에 그친 것까지 한스럽다.

 

0국망봉18.jpg[위험구간임을 알리는 경고판]

 

        마침내 신로령으로 돌아서 내려오는 정식 등산로를 만났고, 이때부터는 길이 한결 수월했지만, 이미 파김치가 된 촌부의 몸은 그저 빨리 내려가 쉬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기에 계곡의 암반 위를 흐르는 산삼 썩은 물을 보고도 발을 담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살다 보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때도 있다고 자위하면서. 

 

         그렇게 해서 처음에 차를 주차했던 장암저수지 호숫가에 도착하니 출발한 때로부터 6시간 30분이 지났다. 도대체 해발 1,168m 산을 올라갔다 온 건가, 아니면 1,700m급의 산을 올라갔던 건가. 정신마저 혼미하다.  

          이후 일동의 제일유황온천으로 이동하여 고난의 행군으로 지친 다리를 달래는 것으로 일정을 마감했다. (끝)      

     06. Allegro vivace.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