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알프스 융프라우. 마터호른, 몽블랑)
2017.08.07 16:00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작년 2월 집사람과 밀포드 트레킹을 다녀온 무렵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분이 다가오는 여름에 부부동반으로 몽블랑 일주 트레킹(투르 드 몽블랑. Tour du Mont Blanc. 이하 줄여서 TMB라고 한다)을 갈 계획이라며 동참 여부를 물어 왔었다. 나도 동참하고 싶었지만, 집사람이 자신이 없다고 하여 포기하고 대신 실크로드를 다녀왔다(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그 후 그 분으로부터 TMB를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나도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래서 소오름산우회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몇 사람이 적극 찬성하였고, 세부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TMB 대신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을 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왕 알프스를 가는 마당이라면 몽블랑만 가지 말고 그 기회에 융프라우와 마터호른도 가자는 것이었다.
TMB 대신 후자를 택한 것이 꿩 대신 닭일는지 꿩 대신 봉황일는지는 실제로 가 보아야 알 것이기에, 굳이 전자에 연연할 것 없이 길을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혜초여행사가 주관하는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에 참가하여 2017. 6. 29. 길을 나섰다. 소오름산우회의 예산대사(홍경식), 일청선생(구욱서), 원봉선사(노환균)가 동행하였고, 예산대사의 제안을 받은 대한항공의 지창훈 전 사장(이하 ‘지선배’로 약칭)이 취리히에서 합류하였다. 그 밖에 대전, 부산 등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합하니 총 17명이 되었다.
알프스산맥은 총연장 1,200km로 해발 4,000m가 넘는 산만도 58개 있다. 그 높고 긴 알프스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 산악인들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의 발길까지 잡아끄는 산이 세 개 있다. 융프라우(Jung Frau), 마터호른(Matterhorn), 몽블랑(Mont Blanc)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흔히 알프스의 3대 미봉(美峰)이라고 불리는 이 세 산을 다 오르면 알프스 전체를 다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범부는 독일에서 연수하던 시절인 1987-1988년에 단순 관광객으로 이 세 산을 찾은 적이 있다. 거의 30년이 지난 일이라 아련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그 때 산들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실로 오랜만에 다시 알프스를 찾으려니 저절로 가슴이 설렜다.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전체 일정 개념도]
Ⅰ. 융프라우
2017. 6. 29. 오후 3시 반에 KAL 직항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본래 2시 반 출발 예정이었는데, 중국이 영공 통과 허가에 시간을 끌어 1시간 늦어졌다)하여 11시간의 비행 끝에 현지 시각 오후 8시 반에 취리히(Zürich) 공항에 도착하였다. 스위스가 여름에는 썸머타임제를 실시하는 까닭에 그 시각에도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있었다. 스위스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공항 입국장을 나서자 방송국 카메라가 우리 일행을 향해 돌아간다. 스위스의 SRF(Schweizer Radio und Fernsehen. 우리나라의 KBS에 해당하는 방송이다) 방송국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알프스 트레킹에 사흘간 동행하며 취재를 한다고 한다. 취재기자는 모나 페치(Mona Vetsch)라는 여성으로 스위스에서는 꽤나 유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흘 동안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SRF에서는 공중에서도 촬영하기 위해 드론까지 준비했다.
[취리히 공항의 SRF 방송팀]
방송팀에는 한국계인 박후남(Dr. Hoo Nam Seelmann)씨도 있었다. 통역을 맡았다. 스위스에 온 지 40년 된 이 분은 작가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다. 남편은 바젤대학의 형법 교수 젤만(Seelmann)이다.
세상 인연이 참으로 기이하다. 지난 봄에 스위스의 한 작가가 한국의 사찰음식을 알아보기 위하여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 때 이천 감은사의 우관스님을 연결해 달라는 부탁을 전현정 변호사를 통해 받고 범부가 연결해 준 일이 있는데, 당시 스위스 측의 연락을 맡은 사람이 박후남씨였다.
나로서는 박후남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중간에 전현정 변호사를 통해 연락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였을 뿐 그 후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취리히 공항에서 전혀 다른 일로 박후남씨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취리히에서 그린델발트(Grindelwald)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 분이 박후남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데, 누구지?’ 하고 기억을 더듬다 지난 일이 떠올라 그 때 그 분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는 것이다. 나도 놀라고 그 분도 놀라고... 우연 치고는 참으로 엄청난 우연에 서로 마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고, 또 사흘간 함께 산행을 하게 되다니...
그린델밭트의 호텔(Eiger Selfness Hotel)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워낙 늦은 시각이고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기내식으로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짐을 풀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널찍한 크기의 방과 푹신한 침대가 만족스럽다. 그린델발트가 알프스의 산간지역(해발 1,034m)에 위치한 까닭에 기온이 쌀쌀해(14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자야 했다.
[융프라우 지역 트레킹 개념도]
2017. 6. 30.(아이거 트레킹)
시차 적응이 안 되다 보니 새벽 4시 45분에 눈이 떠졌다. 전날 밤에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창문을 열자 바로 앞에 구름이 중턱에 걸린 거대한 산들(아이거(Eiger. 해발 3,970m>, 핀스터아르호른<Finsteraarhorn. 해발 4,274m>, 쉬렉호른<Schreckhorn. 해발 4,078m)이 마주하고 있다. 알프스에 왔음을 실감나게 한다.
5시 40분 그 중 핀스터아르호른의 정상부근이 떠오르는 해의 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7시 30분으로 예정된 아침 식사 전에 산보를 할 요량이다. 옷을 두둑하게 입고 나갔건만 다소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쌀쌀하다.
[핀스터아르호른의 일출. 오른쪽 검은 산은 아이거]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 거리는 한산하다. 아이거 등반의 거점도시이기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이킹족들이, 겨울에는 스키족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기차역도 있고, 호텔과 식당, 등산용품점을 비롯한 각종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긴 하지만, 그린델발트는 기본적으로 아이거(Eiger) 북벽 밑에 있는 알프스 산간의 작은 도시(상주인구가 4,000명 정도이다)인지라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도시라기보다는 알프스의 전통적인 목조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룬 아담하고 평화스런 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둔자(鈍者)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30년 전의 체르마트가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작은 마을에 “키르호퍼”라는 한글간판을 단 상점(시계, 보석 등 취급)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린델발트의 거리 모습]
아침식사 후 기차를 타고 대략 한 시간 걸려 클라이네 샤이데크(Kleine Scheidegg. 해발 2,061m)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차창에 어리는 목가적인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유행가 노랫말이 눈앞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
[초원 위의 집들이 연출하는 목가적인 풍경]
산을 오르는 열차를 따라 서서히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아이거(Eiger)를 비롯하여 설봉들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클라이네 샤이데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융프라우요호로 가는 톱니바퀴 산악열차를 갈아탄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매우 청명하여 아이거(Eiger. 해발 3,970m), 묀히(Mőnch. 해발 4,107m), 융르파우요호(Jungfraujoch. 해발 3,454m), 융프라우(Jungfrau. 해발 4,158m)가 전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후술(後述)하는 것처럼 융프라우요호의 날씨가 궂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때 이들 봉우리의 멋진 자태를 좀 더 눈 속 깊이 담아두었을 텐데,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능력을 어찌하랴.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좌로부터 지선배, 원봉, 예산, 모나, 촌부, 박후남, 일청]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호(Jungfraujoch)로 올라갔다(독일어 Joch는 본래 소의 목에 얹는 멍에를 뜻하는데, 산악용어로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산등성이를 일컫는다. 우리나라 산악용어 중 안부와 비슷한 개념이다. 융프라우요호는 묀희와 융프라우의 사이에 있다). 1896년부터 선로 공사를 시작하여 1912년 개통된 이 산악열차는 가파른 산악지대를 올라가기 위해 레일 가운데 톱니가 깔려 있다.
19세기 말에 해발 3,454m까지 케이블카도 아니고 기차를 운행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총연장 9.3km의 기찻길을 개설한 스위스인들의 도전정신이 새삼 놀랍다. 더구나 철도 부설을 위해 아이거와 묀히의 북벽에 터널을 뚫었다니 입이 벌어진다.
터널 안에는 역이 두 개 있다. 그 첫째인 아이거반트 역(Eigerwand. 해발 2,865m)에는 바깥으로 아이거 북벽의 산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만들어 놓았다(그린델발트가 보일 정도이다). 관광 스위스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 주는 대목이다.
[융프라우의 철도노선]
[아이거반트 역의 전망대]
터널 안의 둘째 역인 아이스메르 역(Eismeer. 해발 3,160m)에도 전망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이 산악열차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공사를 시작한 젤러(A, Guyer Zeller. 그는 공사를 마무리 못하고 1899년 사망했다)의 두상(頭像) 조각이 놓여 있다.
[젤러의 두상]
융프라우요호 역에 도착하니 벽에 씌어 있는 "Top of Europe"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모나에게 해발 3,454m가 어떻게 유럽의 꼭대기냐고 물으니까, 유럽의 기차역 중에서는 제일 높다고 한다.
역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핑크스 전망대(3,571m)로 올라가 테라스로 나가니 세찬 바람에 눈보라가 날린다. 몹시 춥다. 호텔에 거위털 패딩과 겨울장갑을 두고 온 것을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라 잠깐 동안은 가까이에 있는 융프라우 정상이 보였지만, 이내 몰려드는 구름에 가려 버렸다. 그 정상 아래의 알프스에서 가장 긴 빙하인 알레취 빙하(Aletschgletscher)는 다행히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전망대 안에 있는 얼음동굴에는 얼음궁전을 만들어 각종 얼음조각을 전시해 놓았다. 바닥, 벽, 천장이 모두 얼음인지라 사람들이 얼음 속에 들어가 있는 셈인데, 바깥보다 오히려 춥지 않았다.
만년설을 밟으려고 전망대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청명하면 좋으련만 몰려드는 구름 사이로 묀히의 정상이 보이다 말다 한다. 아이거와 융프라우 정상은 아예 구름 속이다.
[스핑크스 전망대 밖의 눈밭에서]
전망대 안의 기념품 상점에서 털모자를 하나 사서 쓰고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주식은 구운 닭고기였는데 맛이 별로였다.
점심식사 후 전망대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아이거글레처 역(Eigergletscher. 해발 2,320m)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하여 아이거 북벽 밑으로 알피글렌 역(Alpiglen. 해발 1,616m)까지 걸어 내려간다. 총 연장 6km 정도로 대략 3시간 걸린다. SRF 방송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했다.
아이거(해발 3,970m)의 북벽(Eiger Nordwand) 바로 밑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려니 깎아지른 아이거 북벽(암벽의 높이만 1,800m이다)의 전모를 오히려 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초원과 그 위에 수 없이 핀 야생화들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융프라우요호의 눈보라와 추위는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되고, 빙하 녹은 물이 아이거 북벽을 장식하는 거대한 폭포가 한양 길손의 발목을 부여잡는다.
[아이거 북벽 밑으로 난 길]
[초원지대와 야생화]
[빙하가 녹아 만든 폭포]
‘융프라우(Jung Frau)’의 뜻은 ‘젊은 여자’이다. 아름다운 산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산 옆에 있는 ‘아이거(Eiger)’의 뜻은 ‘괴물’이다. 예측할 수 없게 변하는 날씨, 거센 눈보라, 눈사태, 낙석 등으로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산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옛날 사람들은 괴물이 산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거의 북벽에는 수많은 등반가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1938. 7. 24. 독일인 헤크마이어(Anderl Heckmair), 푀르크(Luwig Vőrg), 오스트리아인 하러(Heinrich Harrer), 카스파레크(Fritz Kasparek)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 루트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이 벽 밑에 세워져 있다.
[헤크마이어 등이 초등에 성공한 등산루트 안내판]
한편, 이에 앞선 1936년에 역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4인 합동 등반대가 등정에 도전하였다가 실패(4인 모두 사망)한 처절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노스 페이스’(독일어 원제목은 Nordwand)가 2008년 독일에서 만들어졌고, 2010년 국내에서도 상영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볼 만하다.
아이거 북벽은 그 등정과정에서 이제까지 60여 명의 등반가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지금도 등반가들의 로망이 되어 있는 곳이다.
[영화 노스페이스의 포스터]
아이거의 북벽에는 스위스의 등반가 율리 슈텍(Ueli Steck)의 사진도 트레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다.
18세 때 처음으로 아이거 북벽에 오른 그는 2008년 아이거 북벽을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 2시간 47분이라는 놀라운 시간대에 올랐고, 2015년에는 2시간 22분으로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1년에는 아이거북벽에 ‘Young Spider'라는 고난도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나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난 4월 30일 새로운 등산루트를 개발하려고 에베레스트에 갔다가 안타깝게도 추락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 40세. 산악인다운 최후였는지도 모른다.
[율리 슈텍의 사진과 그에 관한 이야기]
얼마를 걸었을까, 멀리 산 아래로 그린델발트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초원과 목조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기보다는 예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다리가 아파 올 때 쯤 알피글렌(Alpiglen. 해발 1,615m) 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린델발트까지는 기차를 타고 돌아간다. 역에 도착하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 수고했으니 호텔로 돌아가 푹 쉬라는 하늘의 뜻인가.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비가 계속 오면 어쩌나...
오후 5시 40분 호텔에 도착하였다. 샤워를 한 후 호텔 안의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는 스위스의 고유음식인 퐁듀(fondue)이다. 커다란 그릇에 치즈를 넣고 끓인 다음 빵이나 감자 등을 담갔다 꺼내 먹는 음식이다.
내 입에는 너무 짜서 맛이 별로였다. 전통음식이라니 한 번 맛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지 두 번 먹으라면 사양할 판이다. 반면에 인천공항에서 사 가지고 간 진공포장 김치를 자리에 합석한 모나에게 맛보게 했더니 처음 먹어 본다면서도 의외로 잘 먹는다. 취재원에 대한 예의인지 판단이 잘 안 섰다.
우리는 스위스에 관해, 모나는 한국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산악국가로 교통이 불편한 스위스에서 시계 산업이 발달한 이유를 묻자, 스위스에서 처음부터 시계 산업을 일으킨 게 아니고 본래 프랑스의 시계기술자들(그들은 대개 칼뱅파 신교도인 위그노였다)이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구교도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넘어와 시계 산업을 발달시킨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스위스에서 시계 산업이 발달한 곳은 제네바 등 불어권 지역이라고 한다.
담소를 나누다 보니 식사시간이 길어져 9시 30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융프라우를 기념하는 모자를 하나 살까 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상점들의 문이 닫힌 지 이미 오래였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스위스이다.
나중에 체르마트에서도 그랬는데, 저녁 7시 30분만 되면 거리에서 문을 연 상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곳에서 관광객의 편의를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니 아쉬울 게 없는지도 모른다. 지난 1월에 갔던 이탈리아처럼.
2017. 7. 1.(정통 알프스 트레킹)
대략 7시간 걸려 15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시차가 여전히 문제이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억지로 잠을 청해 겨우 다시 잠들었다가 5시 55분 휴대폰의 자명종 소리에 깼다.
아침식사 후 8시에 호텔 근처 대형 슈퍼마켓 MIGROS에서 점심식사용 먹거리를 준비했다. 여행사 측에서 비용을 일괄해서 지불할 테니 각자 자기가 먹을 것을 사라고 했다. 빵을 사든, 고기를 사든, 술을 사든 자유이다. 나는 샌드위치, 과일, 생수 등을 구입했다.
인솔자로 동행한 혜초여행사 이진영 상무(이하 ‘이상무’로 약칭)의 설명이 재미있다. 전에는 1인당 30프랑을 나눠 주고 각자 먹을 것을 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그 액수가 많니 적니 말이 나와 각자 알아서 먹을 만큼 사고 일괄해서 계산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면 내 돈 안 낸다고 마구 살 것 같지만, 각자 배낭에 넣어 점심식사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니까 각자 자기가 먹으리만치 산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행사에서 지불하는 총액이 1인당 30프랑씩 나누어 줄 때보다 적게 든다고 한다.
그린델발트 마을 끝에 있는 곤돌라 탑승장으로 이동하여 피르스트(First. 해발 2,168m) 가는 곤돌라에 탑승했다. 산 위로 20분 정도 올라가는데, 출발할 때만 해도 안 그러던 날씨가 변덕을 부려 출발 후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안개가 짙어지더니 주위 경치가 전혀 안 보였다. 심지어 앞에 올라가는 곤돌라마저 안 보일 정도였다.
[그린델발트의 곤돌라 탑승장]
[안개 속의 곤돌라]
피르스트에 도착하여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후 9시 30분에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하늘이 잔뜩 흐렸다. 기온도 낮아 쌀쌀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피르스트에서 최종 도착지인 쉬니케플라테까지 가는 동안에 맞은편으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계속 바라보며 가기 때문에 경치가 그만이라는데... 그래서 이 코스의 이름조차도 “정통 알프스 트레킹”이라고 하는데...
구름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가운데 바하알프제(Bachalpsee. 해발 2,271m)까지 한 시간 정도 걸었다. 다소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길옆의 푸른 초원에는 전날처럼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였다. 구름이 잠시 걷힐 때면 높은 설산, 깊은 계곡, 푸른 초원이 비경을 연출하였다.
[바하알프제 가는 길]
촌부가 독일에서 연수를 한 지 30년의 세월이 흘러 많이 잊어버려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독일어로 대화가 가능했기에 바하알프제까지 걷는 동안 모나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차제에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2차 대전 당시 비록 스위스가 중립국이었다고는 하나 히틀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침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스위스인 모나의 대답은 의외로 솔직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전에는 스위스의 군사전력이 강해서 히틀러가 침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전쟁비용으로 사용할 돈을 세탁하고 약탈한 금을 보관할 곳으로 스위스의 은행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박후남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스위스 은행의 유명한 비밀주의가 바로 히틀러의 침공을 막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바하알프제는 두 개의 호수이다. 호수가 꽤 커서 날씨만 청명하면 주위의 풍광이 호수에 비치련만, 점점 더 짙어져 가는 구름과 바람에 을씨년스럽게 출렁이는 물결이 멀리 극동에서 온 나그네의 바램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쉬움에 잠시 머물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풍광을 둘러본 후 갈 길을 재촉했다.
[바하알프제. 박후남씨(중)와 모나(하)]
이곳에서부터 파울호른(Faulhorn. 해발 2,681m)까지는 오르막이다. 무언가 금방 올 것 같은 잔뜩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 이미 해발고도가 높은 곳인데다 걸으면서 점점 더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더 내려가더니 급기야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눈깨비로 변한다. 전날과 달리 배낭에 챙겨온 거위털 패딩과 장갑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이날 트레킹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인 파울호른의 산장에 도착한 것은 12시 무렵이다. 알프스에 있는 산장치고는 허름하긴 했으나 진눈깨비와 추위에 떨다 산장 안으로 들어서니 난방시설이 가동되지 않음에도 안온하기 그지없다. 알프스를 정복한다고 큰소리쳐도 자연 앞에선 나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인간임을 절감한다.
출발할 때 사 가지고 온 먹거리와 산장에서 구입한 따끈한 수프로 점심식사를 했다. 컵라면을 가져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늦은 아쉬움일 뿐이다.
[파울호른 산장]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다시 출발하려는데 진눈깨비가 아예 비로 변했다. 집사람이 예전에 영국 여행을 하면서 사다 준 비옷을 챙겨오길 잘했다. 이후 목적지인 쉬니게플라테(Schynige Platte. 해발 2,068m)에 도착할 때까지 4시간 동안 비가 내리다 개다를 반복했다. 그에 맞추어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해야 했다.
비가 개도 구름은 여전하여 이 트레킹 코스의 백미인 아이거 북벽, 묀히, 융프라우를 조망하는 것은 끝내 불가능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위 3대 봉우리만은 못해도 트레킹 코스 좌우의 경치는 여전히 볼만했다. 특히 구름이 걷힐 때마다 나타나는 기암괴석과 호수와 깊은 계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연상케 한다. 높은 암벽에 빙하가 쓸고 간 흔적으로 보이는 기기묘묘한 무늬들은 그 자체 장관이다. 돌길을 걷느라 아픈 무릎을 그런 풍광들이 보상해 준다. 끝 무렵에는 멀리 인터라켄도 내려다보인다.
[쉬니게 플라테 가는 길의 주위 풍광]
[SRF에서 촬영을 위해 띄운 드론]
날씨가 궂은 탓인지 우리 일행 말고는 트레킹족이 거의 안 보였다. 그래서 어쩌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고,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순간만큼은 지구촌 한 가족이다.
[지구촌 한 가족]
오후 4시 30분에 쉬니게플라테에 도착했다. 모두들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야구장에서 경기가 끝나면 감독과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지나가듯, 도착하는 대로 서서 전원이 차례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가니 이게 웬 일, 스위스 전통복장을 한 4명의 악사가 알펜호른(Alpenhorn)을 불면서 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악사들은 이곳 주민들로 보이는데, 아마도 SRF 방송국 측에서 사전 섭외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이들이 분 알펜호른은 워낙 커서 땅에 세워 놓고 불었는데, 나도 불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쉬니게플라테 역의 알펜호른 연주자들]
역에서 산악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하게도 서울고등법원의 이강원 부장판사 부부를 만났다. 유럽 자유여행 중이라고 한다. 마침 그린델발트에 있는 호텔에서 묵고 있어 함께 기차를 탔다.
[쉬니게플라테 역. 오른쪽이 이강원 부장판사 부부]
그린델발트로 가려면 도중에 빌더스빌(Wilderswil. 해발 584m)에서 갈아탄다. 쉬니게플라테에서 빌더스빌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데, 차창 밖을 내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철도선로가 급경사이다.
융프라우요호에 올라갈 때는 터널 속으로 가서 몰랐는데, 이곳 기차는 밖을 내다보면서 표고차 1,500m를 내려가기 때문에 산 아래 있는 인터라켄을 비롯하여 좌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 좋지만, 마치 무슨 곡예를 하는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이런 곳에 철도를 부설한 게 신기하면서도, 탈선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이겠구나 하는 공연한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다.
그린델발트에 돌아와 시내 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전날의 퐁듀에 비해 음식이 풍성하고 좋았고, 특히 따뜻한 수프가 마음에 들었다. 추위에 종일 떨었던 몸이 확 풀리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상점에서 모자를 하나 구입해 호텔로 들어가 흙 묻은 바지를 빨아 널고(욕실에 라디에이터가 있어 잘 마른다) 잠자리에 들었다. 실로 기나긴 하루였다.
2017. 7. 2.(뮈렌 트레킹)
융프라우 지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시차가 차츰 적응이 되는지 새벽 5시 30분에 잠이 깼다. 아침 식사 후 트레킹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배낭에 넣고 나머지는 캐리어 넣어 열차 짐 운송 시스템(Fast Baggage System)을 이용하여 체르마트로 보냈다.
아침 8시 10분, 뮈렌(Mürren. 해발 1,645m)을 향해 출발했다.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 해발 796m)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뮈렌까지 간다. 케이블카는 무려 100인승이다. 열차고 케이블카고 스위스에서는 외지인의 기를 죽이는 기술이 있는 듯하다.
그나저나 비가 계속 내리는 것이 문제이다. 상주인구가 5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산골마을인 뮈렌이 트레킹 코스의 하나로 된 것은 이곳에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다른 쪽 사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인데, 비를 몰고 온 구름에 가려 그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케이블카를 타고 구름 속으로 올라가 뮈렌 자체를 둘러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는데, 구름 속의 비 오는 작은 산간마을 자체가 비경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조차도 멋진 호텔이 많고 부(富)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야말로 스위스의 자랑거리이고, 동방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뮈렌의 거리 모습]
기념품을 살 만한 게 없을까 하고 들른 상점의 점원이 독일어를 하나도 못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모나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지금 스위스에는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이런 곳의 점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뮈렌에서 그뤼취알프(Grütschalp. 해발 1,489m)까지의 트레킹은 하이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산책 수준이다. 거리는 4.5km이고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구름에 가려 안 보인 까닭에 그냥 어제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를 푼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그뤼취알프에서는 다시 케이블카로 라우터브룬넨으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갔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기차를 타고 체르마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인터라켄(Interlaken. 해발 567m)은 융프라우 관광의 거점도시이다. 그래서 상주인구는 1만 명이 안 되는데도 일 년 내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국제도시가 되었다. 모나가 자기도 이곳에서는 외국인(Ausländer)이나 마찬가지라며 웃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남북통일이 되어 천혜의 관광명소 금강산을 자유롭게 오를 수 있게 될 때 이 도시처럼 격조 높은 거점도시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촌부의 부질없는 일장춘몽이려나...
국제도시답게 한식당(강촌)이 있어 꼬리곰탕과 빈대떡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SRF 방송팀과의 마지막 식사였다. 모나가 스위스에 대한 인상을 묻기에 풍광이 멋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산골마을까지도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풍요롭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대답했다.
그랬다. 적어도 동방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도시와 산골 사이에 빈부의 격차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게 정말 부러웠다. 그게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 아닐까.
체르마트 행 기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남아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녔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건만 노점상 하나 없는 깨끗한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5성급인 빅토리아 호텔의 커피샵에서 마신 다즐링 홍차의 맛이 일품이었다.
[인터라켄의 거리 모습]
인터라켄 서부역에서 SRF 방송팀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체르마트행 기차에 올랐다. 직통으로 가는 것은 아니고 도중에 두 번 갈아타야 한다.
인터라켄을 벗어나면서 비로소 날씨가 청명해졌다. 진즉 그럴 것이지.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기고 이후의 마터호른과 몽블랑 트레킹 때는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길 기원했다.
Ⅱ. 마터호른
인터라켄을 출발한 기차가 알프스의 깊은 산속으로 달리고 달려 체르마트(Zermatt. 해발 1,620m)에 도착했다. 우선 하늘부터 바라보니 너무나 푸르러 일단 날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30년 전의 조용한 산골마을 체르마트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 대신 번잡한 도시 형태를 갖춘 전혀 다른 체르마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청정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휘발유나 경유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못 다니게 하는 이 도시에는 차 대신 사람으로 들끓었다. 수없이 들어선 호텔과 관광상품점들은 어디나 관광객으로 붐볐다.
[체르마트의 거리 모습]
아침에 기차편으로 부친 짐을 역에서 찾아 호텔(Sonne Hotel Zermat)로 가 여장을 풀었다. 이후 사흘 밤을 잔 이 호텔의 방은 침실과 욕실 외에 응접실까지 갖춘 거의 스위트룸 수준이다. TV 외에 금고와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야외 테라스까지 있다. 트레킹으로 쌓인 피로를 풀기에 적격이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시내구경을 나섰는데, 아뿔싸! 상점들이 벌써 대부분 문을 닫았다. 저녁 7시 전후만 되면 식당이나 술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문을 닫기 시작한다고 한다. 밤 10시는 되어야 어두워지는 곳에서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린델발트에서처럼.
[Sonne 호텔]
[마터호른 지역 트레킹 개념도]
2017. 7. 3.(마터호른 글래시어 트레킹)
비로소 시차 적응이 되어 아침 5시 50분에 휴대폰 자명종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청명하다. 스위스에 와서 구름이 안 보이는 첫 아침이다.
이날은 해발 3,883m의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 전망대를 올라가기 때문에 융프라우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복바지를 입고, 거위털 패딩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호텔 식당으로 갔더니 그린델발트와는 달리 일본인이 많다. 이 호텔이 본래 일본인이 많이 투숙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체르마트가 기본적으로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저자거리에서도 일본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요새 전 세계를 누빈다는 중국인 관광객은 오히려 적었다. 이는 나중에 몽블랑 트레킹을 위해 간 샤모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처럼 트레킹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단순 관광객들이다.
그나저나 깃발을 들고 몰려다니는 이들의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조용하고 예의바르고 남을 배려한다”는 일본인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처음에는 호텔 로비에 이들이 나타나자 하도 시끄러워 중국인들이 온 줄 착각할 정도였다. 참다못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면 잠시 조용해지다 다시 원위치이다. 호텔 뷔페식당에서 이들이 먼저 먹고 가면 마치 메뚜기떼가 습격이라도 한 듯 음식그릇들이 텅 빈다. 들어가지 말라(KEEP OUT)는 팻말이 새워져 있는 잔디밭에 들어가 버젓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일본인이다.
지난 해 2월에 밀포드 트레킹을 할 때 정해진 기상시각(아침 6시 20분) 전까지는 남들은 소등하고 다 자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5시면 일어나 플래시를 비추고 돌아다니며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통에 잠을 못 자게 하였었다. 그 때만 해도 일부 몰지각한 일본인들이 왔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체르마트와 샤모니에서 보니 그게 아니었음을 알겠다. 위에서 말한 전통적인 교양 있는 일본인은 이젠 역사 속의 유물이 된 모양이다. 한 때 해외여행지에서 우리나라 사람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녔던 ‘어글리 코리안’을 ‘어글리 재퍼니즈’가 그대로 대체한 듯하다.
아침 9시, 체르마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데 오른 쪽으로 눈 덮인 마터호른(Matterhorn. 해발 4,478m)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멋지고 웅장한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세계 3대 미봉(美峰) 중 하나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나머지 둘은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과 마차푸차레). 융프라우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날씨가 워낙 좋아서 세 차례 트레킹하는 내내 마터호른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곤돌라에서 본 마터호른]
마터호른의 초등은 1865. 7. 14. 영국의 화가 출신 등산가인 윔퍼(Edward Whymper)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때까지 알프스의 4,000m가 넘는 봉우리는 마터호른만 빼고 모두 인간이 정복한 상태였다. 윔퍼가 마침내 마터호른을 등정함으로써(이 때 하산하면서 밧줄이 끊어져 4 명이 추락사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체르마트 시내에 있는 마터호른 박물관에는 이 때 끊어진 밧줄이 전시되어 있다) 알프스 등정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것은 아이러니이다. 알프스에서는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체르마트의 시내에 있는 몬테로사(Monte Rosa) 호텔의 외벽에는 윔퍼의 얼굴이 부조되어 있다. 윔퍼가 당시 이 호텔에 묵었던 까닭이다.
[몬테로사 호텔 외벽의 윔퍼 부조]
사실 마터호른이 속해 있는 산군에는 30여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고, 그 중 4,000m가 넘는 것도 열 개가 넘는다. 그 중 몬테로사(Monte Rosa. 해발 4,634m)는 몽블랑에 이어 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서 마터호른이 단연 제일로 인구에 회자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바로 이 산이 산군(山群)의 연봉에서 벗어나 '초원의 꼭대기'라는 뜻을 지닌 이름에 걸맞게 ‘나 홀로’ 뾰족하게 솟아 있기 때문이다. 마터호른의 주위에는 3,000m도 안 되는 낮은 봉우리만 있기에 마터호른의 고고함이 돋보이는 것이다. 고독해 보이기조차 한다. 사람으로 치면 고독한 미남이라고 할까.
마터호른의 그 고고함을 더욱 빛내 주는 것이 바로 이 산의 북벽(암벽 높이 1,100m)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알프스 3대 북벽의 하나인 마터호른 북벽이 정복된 것은 1931년의 일이다. 정복자는 독일인 슈미드 형제(Tony u. Franz Schumid)이다.
이 등정을 계기로 등로주의(登路主義. mummerism) 등반사조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등산방식은 가장 쉬운 코스를 통해서라도 정상만 오르면 된다는 것이었는데(등정주의<登頂主義>), 마터호른 북벽 등정을 시작으로 절벽에 등산루트를 개척하며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것에서 등산의 참뜻을 찾게 되었고, 1964년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14개가 모두 정복된 이후 현대 등반사조로 자리 잡았다.
푸리(Furi. 해발 1,867m)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트로케너 슈테그(Trockener Steg. 해발 2,939m)를 거쳐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클라인 마터호른<Klein Matterhorn>이라고도 한다)에 도착하니 해발 4,000m가 넘는 알프스 고봉들이 줄지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예상대로 추웠다. 당연히 패딩을 입어야 했다. 이곳의 해발고도가 3,883m이고, 해발 1,620m의 체르마트에서 곤돌라와 케이블카를 타고 곧바로 올라왔건만 고산병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히말라야를 세 번 가고 특히 에베레스트에서는 해발 4,500m까지 올라갔던 경험으로 이젠 이 정도 높이에는 몸이 적응된 모양이다.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서 본 알프스의 고봉들]
만년설로 덮인 이곳 정상에는 한여름임에도 스키장이 열려 있어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대부분 스위스 현지인들로 보였다). 3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스키를 탈 줄 몰라 구경만 했고, 그 후 스키를 배운 후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알프스에서 함께 스키를 타보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공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모두 공부가 끝나자 서른 살 전후가 된 두 아들은 범부의 꿈을 외면하고 있다. 정녕 한 여름밤의 꿈이런가. 집사람은 빨리 꿈 깨라고 한다.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정상의 스키장]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도로 트로케너 슈테그까지 하산하여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목적지 푸리까지는 11km이고 대략 6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는 출발하여 한 동안은 고도가 높아 초원지대가 없고 돌길을 걸어야 한다. 그 삭막함을 달래 주는 것이 마터호른과 그 주위의 설봉들이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마터호른의 모습이야말로 왜 세계 각지의 트레커들이 이곳을 찾는가를 알게 한다. 날개를 편 독수리처럼 보이는가 하면,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앞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그 마터호른의 코앞에서 먹는 점심식사가 꿀맛이다. 융프라우 트레킹 때처럼 아침에 MIGROS 슈퍼마켓에서 사가지고 온 샌드위치, 빵, 과일, 음료수, 맥주, 포도주 등을 펼쳐놓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가까이에서 본 마터호른(상)과 점심식사(하)]
출발해서 두 시간 넘게 내려갔지만 아직은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고원지대이다 보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찌는 더위는 아니다. 누군가가 서울에서 햇볕 구경을 제대로 못해 비타민 D가 부족하니 여기서라도 실컷 햇볕을 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과 이따금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그 구름과 바람을 타고 마터호른의 꼭대기에서 금방이라도 나옹선사(懶翁禪師)가 내려올 것만 같다. 선사의 시를 표절해 본다.
백운(白雲)은 날더러 말없이 살라 하고
청풍(淸風)은 날더러 티 없이 살라 하네.
욕심도 벗어놓고 아쉬움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걷는 도중 나타난 호수에 비친 마터호른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아 아쉬워하니까, 이상무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앞으로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호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날 트레킹 내내 그런 호수를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이 상무는 그 다음날과 다다음날의 트레킹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마터호른 북벽의 바닥지점에는 빙하가 녹은 물이 시내를 형성하여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물이 온통 회색빛으로 탄광촌의 냇물보다 더 혼탁하다. 석회석이 녹아들어 그런 것이다. 체르마트 시내의 개천이나 독일을 관통하는 라인강의 물색깔이 맑지 않고 뿌연 것이 바로 이 때문이고, 유럽에서 생수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터호른 북벽 밑의 회색빛 시내]
바야흐로 돌길이 끝나고 초원지대가 나타나자 멀리 산 아래로 체르마트가 보인다. 높은 산들로 빙 둘러싸인 깊은 계곡에 형성된 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정말 깊은 산속의 오지인데, 그런 곳을 개발하여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게 하느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까.
이곳에서는 표고차가 2,000m가 넘는 곳을 곤돌라로, 케이블카로 수없이 연결하여 세계인의 사계절 관광지로 만들었는데, 설악산의 오색에 케이블카, 그것도 고작 한 개의 노선을 설치하려는 계획이 환경보호 운운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표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스위스사람들은 우리보다 환경의식이 부족하여 알프스에 그렇게도 많은 산악열차, 곤돌라, 케이블카를 설치한 것일까. 그리고 그래서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 그것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 크게 훼손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이는 프랑스의 몽블랑도 마찬가지이다. 제발 눈을 좀 크게 뜨고 보자.
3시간 걸려 쉬바르쯔제(Schwarzsee. 해발 2,583m)에 도착했다. 이곳의 마터호른 북벽 밑에도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여전히 마터호른의 모습이 물에 비치지를 않는다. 왕실망!
그나저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앞서 간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인솔자의 일원인 김홍기씨에게 물어보니 이미 상당수가 곤돌라를 타고 하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푸리까지는 급경사로서 숲속을 지나기 때문에 경치는 볼 만한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촌자도 일청, 원봉 두 도반과 함께 푸리까지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푸리에 도착하여 탑승장 근처 레스토랑으로 갔다. 목도 축일 겸 돌길을 오래 걸은 다리를 쉬게 하기 위함이다. 마터호른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서 홍차(black tea)를 한 잔 마시는 멋도 괜찮다. 일청, 원봉 두 도반은 맥주 맛이 기가 막히다며 흡족해 한다.
두 도반은 더 있다가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겠다고 해서 촌부 혼자 일어났다. 체르마트까지 걸어가려는 것이다. 이곳에서부터는 급경사도 없고, 길도 포장되어 있어 충분히 걸을 만하다. 시간상으로는 50분 정도 걸린다.
산책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 노부부,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워 나온 젊은 부부,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청춘들... 도중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체르마트의 산장, 호텔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점부터는 각자 나름대로의 특색을 살려 지은 목조주택들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내려가다가 마터호른이 영락없이 스핑크스 형상으로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를 통해 익숙해진 마터호른의 모습, 이 날 내내 접했던 그 모습이 마터호른의 앞모습이라면, 이곳에서 보는 마타호른의 모습은 그 앞모습 뒤에 숨어 있던 몸체까지 드러난 새로운 모습이다. 그것은 앞모습과 몸체가 합쳐져 만들어낸 스핑크스의 형상이었다. 덕분에 이틀 후 새벽에 마터호른의 그 일출모습을 바로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스핑크스 형상의 마터호른]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5시다. 그런데 당연히 먼저 와 있을 줄 알았던 룸메이트 예산대사가 뒤늦게 나타났다. 도중에 카페에 들러 맥주 한 잔 하고 오는 길이란다.
17명이 하는 트레킹이지만 반드시 일사불란하게 함께 이동할 필요 없이 도중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이번 트레킹의 한 장점이다. 다들 여행이나 산행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 가능한 이야기이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일행과 함께 시내 구경을 나섰지만 옷을 얇게 입고 나간 까닭에 한기를 느껴 먼저 들어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2017. 7. 4.(오버로트호른, 수네가 트레킹)
이날은 마터호른과 떨어져 몬테로사에 가까이 있는 봉우리인 오버로트호른(Oberrothorn. 해발 3,415m)에 올라 마터호른을 조망하는 날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일이 묘하게 꼬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노화현상일까, 아침 8시 호텔을 나서는데 무언가 허전하다. 그런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로트호른 파라다이스 역을 향해 5분 정도 가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뿔싸! 등산화를 안 신고 나왔다. 허겁지겁 호텔로 돌아가 등산화를 신고 뛰어갔다. 다행히 기차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로트호른 파라다이스 역에서 후니쿨라(Funicula)를 타고 수네가 파라다이스(Sunnegga Paradise. 해발 2,288m)까지 올라갔다. 체르마트에서 표고차가 600m가 넘는 곳을 수직에 가까운 터널을 뚫고 설치한 후니쿨라를 타면 3분이면 올라간다. 알프스를 올라가는 방법에 관한 스위스인의 아이디어는 어디까지인가.
이곳에서 곤돌라로 갈아타고 5분이면 블라우헤르드(Blauherd. 해발 2,571m)에 도착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5분 걸려 로트호른(Rothorn. 해발 3,103m)까지 올라간다. 알프스에서는 이처럼 기차, 산악열차, 후니쿨라, 곤돌라, 스키리프트, 케이블카... 탈 것의 종류가 많고 자주 갈아타야 하니까 나중에는 무엇을 탔는지 헷갈린다.
[후니쿨라]
로트호른이 이미 3,000m가 넘는 곳이라 주위 풍광이 멋지지만, 바로 앞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바위산 오버로트호른(Oberrothorn. 해발 3,415m)이 올라오라고 유혹한다. 이상무가 왕복 3시간 걸리는데(왕복 4.5km), 힘든 사람은 로트호른에서 쉬고 희망자만 자기와 함께 오버로트호른에 갔다 오자고 한다. 그렇지만 멀리 한국에서 이곳까지 온 트레커들 중 로트호른에서 쉬겠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전원이 함께 출발했다.
[로트호른에서 본 오버로트호른]
고도가 높아 풀만 자라고 나무가 안 자라기에 땡볕을 걸어야 했다. 지그재그로 놓인 오르막길 옆에 뜨문뜨문 핀 야생화들이 반긴다. 그 중에서 에델바이스를 발견했다. 알프스에서만 자라는 식물이지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인해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젠 알프스에서 야생 에델바이스는 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에델바이스로 둘러싸인 가운데 피어 있는 물망초가 앙증맞다.
[야생 에델바이스와 물망초]
이 길에서는 야생화도 눈길을 끌지만 올라가는 오른 편으로 보이는 몬테로사(Monte Rosa. 해발 4,634m)와 그 밑으로 뻗어있는 빙하가 인상적이다. 몬테로사는 전술한 대로 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체르마트 주위의 산들 중에서 가장 높다. 그 옆으로는 울산바위처럼 생긴 봉우리도 보인다. 오버로트호른 정상에 올라가면 더 잘 보인다는 이상무의 말에 걸음을 재촉한다.
[몬테로사와 빙하]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환영인사를 한다. 체르마트 건너로 멀리 마터호른이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전날 본 모습과는 또 다르다.
이곳에서는 마터호른뿐만 아니라 4,000m가 넘는 38개의 봉우리들이 360도 돌아가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흰 구름이 간혹 떠돌기는 하지만 파란 색 그 자체인 하늘 아래 제 각기 위용을 자랑하는 설산들이 서로 자기를 보아 달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이상무 말대로 몬테로사가 지척에 보인다. 몬테로사를 굳이 번역한다면 ‘장미봉’인데, 만년 설산이니 흰색 장미일까? 오르기 힘든 곳을 우리 일행 전원이 함께 오른지라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후에도 한참을 머물다가 하산했다.
[오버로트호른에서 바라본 마터호른]
로트호른으로 돌아와 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스위스 요리를 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얼마 전에 이태리 식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오히려 그게 잘 되었다. 빵과 피자와 샐러드가 풍성하게 나왔다. 거기에 무알코올 맥주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배가 부른 탓인가 식사 후 배낭을 정리하면서 무심코 등산스틱을 접고 무릎보호대를 풀어 함께 배낭에 넣었다. 이날 일정을 다 마친 것으로 순간적인 착각을 한 것이다. 이상무가 본격적인 수네가 트레킹 출발을 알리는 순간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아침에는 등산화를 안 신고 나서더니 오후에는 스틱과 무릎보호대 없이 나설 참이었던 것이다. 어이없는 실수의 연속이다. 내가 정말 왜 이러지? 수네가(Sunnegga. 해발 2,288m))까지는 4km로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로트호른에서 마터호른이 몰속에 환히 비친다는 슈텔리제(Stellisee. 해발 2,537m)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호수가 꽤 크다. 물속의 마터호른을 보기 위해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터호른은 물속에 없었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치는 바람에 기대가 허물어졌다. 다음날 기회가 또 있다는 이상무의 말을 믿어야 하나. 그는 전날도 그런 말을 했는데...
그 호수에 비키니를 입고 들어가 수영을 하는 여자가 있다. 물이 그다지 차지 않은가 보다 하고 탁족을 할 겸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싶었다. 1분을 채 못 견디고 나왔다. 물이 그만큼 차다. 그러면 그렇지, 해발 2,537m나 되는 곳에 있는 호수인데... 그런데 그런 물에서 수영을 하는 여자는 철녀? 아니면 몸매를 뽐내려고 이를 악문 사람? 아무려면 어떠랴, 제 멋에 사는 세상인데.
[슈텔리제]
이후로 수네가까지 내리막길은 마터호른을 비롯한 주위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나무들도 나타나고 알프스에 사는 작은 동물들도 볼 수 있다. 경사가 급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평탄하다. 여전히 작열하는 태양과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설산을 배경으로 한 초원지대가 한 폭의 그림이다.
다리가 아파올 때 쯤 수네가에 도착했다. 레스토랑에서 마실 것을 사다가 야외 테라스의 파라솔 밑에 앉았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파라솔 밑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네가의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
수네가에서 후니쿨라를 타고 체르마트로 내려가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후 예산, 일청, 원봉, 그리고 지선배와 함께 체르마트, 아니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이미 눈에 익은 거리에서는 악사들이 에델바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그 맞은편 고풍스런 카페에 들어가 다즐링 홍차를 한잔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스위스 맥주를 즐기고. 깊어가는 밤을 감상하다 호텔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 7. 5.(리펠제 트레킹)
체르마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시차 부적응 때문이 아니라 마터호른의 일출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일찍 일어난 것이다. 시내 중심가의 마터호른 봉우리가 잘 보이는 교회 옆 개천가로 가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무리들은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본인들이다.
전전날 푸리에서 내려오면서 보아둔 마터호른의 몸체까지 보이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곳까지는 일본인들이 안 온다.
5시 30분 마침내 마터호른의 꼭대기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아래로 아래로 붉게 물들면서 점차 황금색으로 변한다. 그 황홀한 정경에 반해 30여 분 동안 수없이 휴대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히말라야에서도 일출을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제대로 관찰하기는 처음이다.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날씨가 도와주는 것을 보면 호수속의 마터호른도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마터호른의 일출 모습]
아침 식사 후 짐을 전부 꾸려 체르마트 중앙역으로 가 짐을 맡기고 근처의 고르너그라트 행 기차를 타는 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해발 3,089m)까지 올라갔다. 8시 40분에 도착한 고르너그라트 역은 융프라우요호에 이어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다.
전날 올라간 오버로트호른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몬테로사를 비롯하여 4,000m 급의 파노라마처럼 펼쳐 있는 봉우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 전망대 안에는 각종 기념품점, 식당, 카페 등 상점이 있는데, 광고판까지 걸어놓고 진라면을 팔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이곳은 산악열차가 다니는 덕분에 트레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개별적으로 그 열차표를 구입하면 왕복에 무려 12만원 한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지 전망대 옆에 작은 성당도 있다.
[고르너그라트에서 본 몬테로사]
[고르너그라트의 성당]
고르너그라트에서 주위 풍광을 감상하며 머물다가 9시 25분에 리펠알프(Riffelalp. 해발 2,211m)까지의 하산길 리펠제 트레킹을 시작했다. 거리는 약 6.3km.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출발해서 40여 분 지나 드디어 리펠제(Riffelsee. 해발 2,766m)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렇게 고대하던 호수속의 마터호른을 마침내 또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마터호른을 소개하는 각종 화보집에 실린 모습 그대로이다. 그냥 환상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지른다. 이런 모습을 보게 해 주다니,
“알프스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번 일정 중 그야말로 최고의 풍경이었다.
[리펠제에 비친 마터호른]
호수 속의 마터호른을 보고 나니 다른 경치들이 시들해졌다. 사람 마음이 그만큼 간사하다. 이후 리펠알프(Riffelalp. 해발 2,211m)까지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도중에 리펠베르그(Riffelberg. 해발 2,582m)에 도착하자 더 이상 걷지 않고 이곳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가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날 트레킹의 핵심 풍경은 이미 다 보았고 이후로는 비슷한 경치가 이어지는 까닭에 굳이 다리 아프게 더 걸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빨간색의 장난감처럼 귀엽고 예쁜 산악열차를 타고 체르마트로 향했다. 12시 쯤 체르마트에 도착했다.
[고르너그라트 왕복 산악열차]
체르마트의 중식당(花園)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이 역시 풍성하다. 식사 후 마티니(Martigny) 행 기차를 타기 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며 체르마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아마도 내 생전에 또 올 기회는 없을 듯해서이다. 이번에도 30년 만에 오지 않았던가. 만일 또 온다면 그 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역에 돌아와 아침에 맡겼던 짐을 찾아 마티니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듀, 체르마트~~!!
Ⅲ. 몽블랑
마티니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로 향했다.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산악지대를 버스가 계속 달린다. 마침내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위치한 발므고개(Col de Balme. 해발 2,191m)를 넘었다. 여기서부터 프랑스이고 그 중에서도 샤모니이다.
샤모니(해발 1,037m)는 몽블랑 산군(山群)과 맞은 편 산군 사이의 계곡에 남서쪽으로 길게 형성된 도시이다. 오후 5시에 샤모니 중심가의 시내로 접어드니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친다. 기온이 섭씨 30도란다. 해발 1,620m의 체르마트와 해발 1,037m의 샤모니의 차이이다. 이제껏 서늘한 지역에 있었기에 더 더운 것 같다.
샤모니 역시 체르마트와 마찬가지로 30년 전의 모습이 아니다. 상주인구는 1만 명 내외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규모가 엄청 커지고 번잡해졌다. 샤모니 역 바로 인근의 호텔(Mercure Hotel)은 같은 4성급인데도 스위스의 그것만 영 못해 좁고 불편하다. 특히 카드식 방 열쇠가 한 번 사용하면 작동을 안 해 출입할 때마다 카운터에 가서 A/S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목하 샤모니는 관광객들이 방을 못 구해 난리이다.
[샤모니의 거리 모습]
[Mercure 호텔]
짐을 풀고 곧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장소는 중심가에서 2km 정도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한식당(Alpenrose)이다. 이곳에 정착한 지 15년 된 교민이 운영하는 곳이다. 주로 한인들을 상대로 한 민박집을 겸하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김치찌개와 상추쌈으로 배불리 먹었다. 주인에게 다음날 날씨가 어떨 것 같으냐고 물으니 일기예보 상으로는 화창할 것이라고 한다.
[Alpenrose 한식당]
식사 후 시내로 돌아와 모자도 하나 구입할 겸 거리구경을 나섰다. 스위스에서처럼 이미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샤모니에는 먹자거리가 있고 그곳만큼은 예외인 듯, 사람들로 붐볐다. 이 거리의 식당들은 하나같이 프랑스 특유의 모습 그대로 식당 밖에 식탁을 내놓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손님들도 식당 안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거리에 기념품 가게가 하나 문을 열고 있어 그곳에서 샤모니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산 후(15유로) 호텔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몽블랑 지역 트레킹 개념도]
2017. 7. 6.(락블랑 트레킹)
케이블카로 앙덱스에 올라가 트레킹을 시작하여 락블랑을 거쳐 플레제르까지 트레킹하는 날이다. 총 거리 13km로 대략 6시간 정도 걸린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침 7시에 호텔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식당 웨이터 말이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먼저 식사를 하니 15분 후에 오란다. 빈 자리가 있건만 안 된다니 어쩌겠나.
프랑스 호텔의 직원들이 스위스 호텔의 직원만큼 친절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호텔 밖을 거닐다 시간 맞춰 들어가니 맙소사, 먹을 게 없다. 마치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 같다. 이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호텔의 아침 뷔페식사라는 게 거창하게 차려 놓고 먹는 것도 아니건만, 그나마 제대로 먹으려면 일본인들보다 먼저 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같은 시간에 가야 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시끄럽기는 또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그 바람에 다른 때와 달리 호텔 출발시간이 30분 늦어졌다. 슈퍼마켓에 들러 점심식사용 먹거리를 각자 사서 배낭에 넣은 후 인근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시내버스를 타고 샤모니 북쪽 외곽의 레 프라즈(Les Praz)라는 곳으로 갔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타 본 시내버스이다. 옛날 통학길의 시내버스처럼 사람이 엄청 많아 타고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라 플레제르(La Flegere. 해발 1,894m)에 올라가 다시 리프트로 갈아타고 앙덱스(Index. 해발 2,396m)까지 올라갔다. 시내버스처럼 케이블카도 만원이다.
[앙덱스]
앙덱스는 샤모니를 가운데 계곡에 두고 몽블랑의 맞은편 산군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몽블랑 정상(해발 4,807m)을 비롯하여 그 주위의 침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위의 봉우리들이 다 깎아지른 검은색의 침봉들이건만 가장 높은 몽블랑 정상은 흰색으로 둥그스름한 게 인상적이다. 가장 높기도 하거니와 침봉이 아니다보니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말 그대로 ‘하얀(Blanc) 산(Mont)’이다.
[앙덱스에서 본 몽블랑]
프랑스인 산악가이드(그는 전문 산악인 출신으로 몽블랑 정상을 여러 차례 오른 경력자라고 한다. 스위스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현지인 가이드 없이는 단체 트레킹이 불가능하다)의 안내로 앙덱스를 출발하여 목적지 락블랑(Lac Blanc. 해발 2,352m)으로 출발했다.
스위스의 아이거 북벽 밑을 걸을 때처럼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이어지는 산허리 7부 능선쯤에 나 있는 이 길은 그 자체는 대부분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흙길이나 돌길이어서 다소 황량하다. 녹다 남은 빙하 위를 걷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길의 백미는 그 자체가 아니라 맞은편의 몽블랑 산군이 연출하는 장관을 내내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몽블랑 정상뿐만 아니라 에귀디미디 전망대, 그랑조라스, 드류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음날 이용할 몽땅베르 가는 기찻길도 보인다. 몽블랑 산 안으로 들어가서 트레킹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몽블랑 산군을 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많은 패러글라이더가 창공을 날아다닌다. 그 경치에 반해서 돌길을 걷는 피로감을 잊고 걷는다.
[락블랑 가는 길에서 본 몽블랑 산군]
쾌청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인지는 모르나 스위스에서와는 달리 트레킹하는 서양인들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산악마라톤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태양이 작열하는데도 상의를 아예 홀랑 벗고 걷는 남자, 비키니 차림으로 걷는 여자도 있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강한 햇볕에 노출되는 것을 그다지 꺼리지 않는 것 같다.
[옷을 벗고 걷는 사람들]
락블랑은 커다란 호수가 위 아래로 두 개 있다. 몽블랑이 하얀 산이라는 뜻이듯이 락블랑은 ‘하얀(Blanc) 호수(Lac)’라는 뜻이다. 그 호수에 보는 방향에 따라 뒷편 산과 맞은 편 몽블랑 산군의 침봉들이 어른거린다. 바람에 물결이 쳐서 리펠제의 마터호른처럼 선명하지는 않다.
이 때는 뒷산의 눈이 녹았지만 눈이 쌓였을 때 호수에 그 모습이 비친다면 호수가 이름 그대로 ‘락 블랑’(하얀 호수)이 되리라. 호수가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락블랑의 위, 아래 호수]
호수의 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해발 2,352m에 있는 호수답게 물이 매우 차다. 원봉이 두 호수 사이의 징검다리를 기우뚱거리며 건너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프랑스인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다가가 일부러 함께 뒤뚱거리며 건너간다. 순간 포착으로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영락없는 ‘알프스의 강남스타일’이다.
[알프스의 강남스타일]
락블랑에는 호수 주위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우리는 락블랑보다 아래에 있는 쉐즈리 호수(Lac des Chesery)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마주친 스무 계단 철제 사다리를 힘들여 내려가면(사다리가 거의 수직으로 놓여 있다) 이내 나오는 쉐즈리 호수에는 물이 찬데도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락블랑을 지나면서부터는 초원이 제법 나타나고 이 호숫가는 주위에 야생화도 만발했다. 비록 땡볕 아래지만 호숫가에 둘러앉아 식도락을 즐기는 재미를 어찌 설명할까. 게다가 원봉이 배낭에 넣어 온 작은 수박을 호수에 담가 차게 했다가 갈라 먹는 맛이라니. 탄성이 절로 난다. 멀리 몽블랑이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듯하다. 고수레로 한 조각 던져달라는 것은 아닐까.
[쉐즈리 호숫가에서의 점심식사]
우리끼리 먹기가 뭣해 프랑스인 가이드에게 음식을 이것저것 권해 보았으나 정작 그는 자기가 준비해 온 음식 외에는 일체 사양한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려니 하였지만, 너무 개인적이고 매몰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 자기를 생각해서 준 건데...
일정에 여유가 있어 식후에 여유 있게 휴식을 취했다. 야생화의 들판에 누워 사진을 찍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야생화 들판에 누워]
락블랑에서 라 플레제르까지 가는 내리막길은 고도차이로 인해 경사가 다소 급한 곳이 많다. 그 내리막길 중간에 ‘Reserve Naturelle Aiguilles Rouges’라는 글귀가 새겨진 철판이 붙어 있는 커다란 돌탑과 이정표가 서 있다. 글귀는 ‘에귀 루지 자연보호구역’이라는 뜻이다. 에귀 루지는 '붉은 첨봉'이라는 뜻인데, 이제까지 지나온 산군을 가리킨다.
[돌탑과 이정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라 플레제르 방향으로 진행하면 앙덱스에서 락블랑까지 오던 길과는 달리 계속 초원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황량하지가 않다. 눈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돌담들도 종종 눈에 띈다. 맞은 편 몽블랑 산군의 멋진 봉우리들은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다.
[라 플레제르 가는 길의 초원지대와 돌담]
도중에 만년설 녹은 물이 가느다란 폭포를 이루고 그 폭포 밑으로 난 작은 도랑에 물이 흐르고 있어 신을 벗고 들어갔다. 그 차가움이라니... 그래도 그렇게 탁족을 하고 나니까 발의 피로가 싹 풀린다. 등산화가 갑자기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럴 때 불역쾌재(不亦快哉)!라고 했던가.
[몽블랑에서의 탁족]
라 플레제르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레 프라즈로 다시 내려가 시내버스를 타고 호텔로 귀환했다. 이날 저녁식사는 자유식이다. 이상무가 식대로 1인당 30유로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예산, 일청, 원봉, 지선배, 그리고 촌자)는 전날 촌자가 보아 두었던 먹자거리로 가서 한 식당의 바깥 식탁에 자리 잡았다. 피자, 홍합, 샐러드, 수프, 맥주 등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이상무와 김홍기씨가 와서 식사를 같이 했다. 자기들은 샤모니에 오면 식사하러 늘 들르는 곳인데, 우리는 어떻게 이 집을 알았냐며 놀란다.
식사 후 거리를 산책하다 호텔로 돌아와 통상의 일과대로 이날 하루의 일정을 메모식으로 정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샤모니의 먹자거리]
2017. 7. 7.(몽땅베르 트레킹)
산악열차로 몽땅베르로 가서 레귀디미디 전망대 아래의 플랑데레귀까지 5km를 걷는 날이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아침에 일본인들보다 먼저 호텔식당에 간 덕분에 이날은 먹거리가 재대로 구비되어 있었다. 프랑스까지 와서 이게 무슨 전쟁이람.
늘 하듯이 8시에 호텔을 나섰다. 이날도 근처 슈퍼마켓에서 점심 먹거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날이 트레킹으로는 사실상 마지막 날이라 일행 중 한 분이 커다란 수박을 한 덩어리 사서 배낭에 넣었다. 점심식사 때 산 중에서 수박파티를 할 요량이다. 대신 그 분의 먹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누어 졌다.
샤모니역에서 몽땅베르(Montenvers. 해발 1,913m)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기차에서 내리니 드류(Les Drus. 해발 3,754m)가 정면에서 제일 먼저 반긴다. 정말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절벽의 암벽 높이만 1,000m로 우리나라 전문산악인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번에는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유명한 그랑 조라스(Les Grandes Jorasses. 해발 4,208m)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산의 북벽은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하나이다(암벽 높이 1,200m). 1938년 이탈리아인 리카르도 카신과 지노 에스포지토가 초등에 성공했다. 우리의 산악가이드는 자기도 그곳에 올라갔었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그 밑으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빙하가 길게 뻗어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많은 곳이 녹아서 맨바닥 흙이 드러나 있다.
[드류, 그랑조라스, 메르 드 글라스 빙하 개념도]
[드류]
[그랑조라스]
역 근처에 수정동굴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본래 예전에는 이곳이 수정 산지였다고 한다(후술하는 것처럼 몽블랑 초등에 성공한 발마는 본래 몽블랑의 수정 채취업자였다). 동굴 안에는 전에 캤던 크고 작은 갖가지 수정 원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정 원석]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산악가이드가 전날 갔던 락블랑 쪽 산을 가리키며 길게 설명을 한다. 갈 길이 바쁜데 설명이 너무 길어져 얼른 출발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산에서는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하는 자부심 강한 이 가이드가 삐진 모양이다. 이 코스는 처음 출발하자마자 깔딱고개이고 날씨도 더운데, 잠시도 쉬지 않고 한 시간여를 내달았다. 아무리 전망 좋은 곳이 나와도 통과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어 일청선생, 이상무 등 몇 명과 뒤에 처졌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온 그랑 조라스의 사진도 찍고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100m 달리기 하러 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나저나 아무튼 프랑스에선 자존심 센 가이드의 심기를 거스를 일이 아니다.
[깔딱고개의 고갯마루. 뒤의 첨봉은 그랑샤모스(Aiguille des Grands Charmoz)]
깔딱고개의 정상에서 모두 함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했다. 이 때부터는 침봉들의 산허리를 걷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 평탄한 편이다. 초원지대인 이곳도 야생화 천국이다. 염소 떼도 노닌다. 오른쪽 아래로는 멀리 샤모니가 내려다보인다.
산허리를 걷다보니 침봉들은 오히려 제대로 볼 수 없고, 샤모니 건너편의 전날 걸은 산들이 잘 보이는데, 그 산들은 눈이 없는 황량한 바위산들이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전날 흰 눈이 덮인 몽블랑과 침봉들을 종일 바라보며 걸은 락블랑 트레킹 코스가 몽블랑 지역 트레킹의 백미(白眉)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대신 이 코스는 힘이 덜 들어 가볍게 트레킹 내지는 하이킹에 나선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그 중에는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연로한 노인들도 보였다.
[에귀디미디 가는 길]
12시 30분 쯤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 해발 3,842m) 아래 플랑데레귀(Plan de l'Aiguille. 해발 2,317m)에 도착했다. 고개를 위로 들면 바로 에귀디미디 전망대가 보인다.
이곳 풀밭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담갔다 꺼낸 수박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수박파티를 열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먹거리에 관한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다소 극성스런 한국인 트레커들이나 가능한 일이 아닐는지. 프랑스인 산악 가이드는 여전히 수박을 외면한다.
[에귀디미디]
[플랑데레귀에서의 수박파티]
점심식사 후 케이블카를 타고 에귀디미디 전망대로 올라갔다. 몽블랑 정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에귀디미디 정상을 향해 설산을 등반하고 있는 사람들이 케이블카에서 보인다. 촌부도 하고 싶지만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몽블랑 설산을 등반하는 사람들]
에귀디미디 정상은 고도가 높다보니 무척 춥다. 그런데, 점심식사하면서 올려다 볼 때는 분명 쾌청했는데, 그 사이 무슨 변고가 일어났는지 몽블랑 정상을 포함하여 전망대 일대를 구름이 잔뜩 감싸고 있다. 어제도 실컷 보았고 조금 전까지도 보았으니 이젠 그만 보라는 것이 몽블랑 산신령의 뜻인가 보다. 대자연 앞에는 미물에 불과한 것이 인간이니 어쩌랴.
[구름에 덮인 몸블랑 정상]
“이것 보려고 멀리 한국에서 왔어요~~!”
하고 외쳐 본들 한국말을 모르는 산신령이 들어줄 리가 없다. 그럴 거면 애당초 구름을 까는 심술을 안 부렸지. 융프라우의 산신령은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잠깐이나마 융프라우를 보여 주었는데, 몽블랑의 산신령은 아무리 기다려도 요지부동이다.
이렇게 되면 하산하는 수밖에 없다. 이곳의 명물이라는 투명유리 전망대는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해 마음을 접었다. 몽블랑 정상을 못 보는 바람에 다 시큰둥해진 것이다. 샤모니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서 올려다보니 에귀디미디 전망대가 구름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
샤모니로 내려와 등산용품점에 가서 블랙 다이아몬드 상표의 등산스틱을 하나 구입했다(130유로). 무게가 매우 가볍고, 접으면 배낭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접히며, 잡아당기기만 하면 펼쳐지는 것이다. 이상무가 사용하는 것으로 그가 적극 추천하였다.
에귀디미디에서 각자 편한 대로 하산했는데, 등산용품점에서 그를 만나다니 무슨 인연이람. 전날에는저녁식사를 한 식당에서 만나고 이날은 또 등산용품점에서 만나니, 우연인지 필연이지 헷갈린다.
저녁식사는 프랑스식 소고기 돌판구이였다.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프랑스식당에서 돌판구이를 먹는다는 게 놀라웠다. 상추쌈에 고추장 된장을 찍어 먹는 대신 나름대로 만든 소스를 찍어먹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한국식당에서 보고 배워간 것일까. 궁금했지만 숙제로 남겨 두었다.
2017. 7. 8.(패러글라이딩)
이번 알프스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트레킹은 전날로 끝났고 이날은 세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케이블카를 타고 브레방(Brevent. 해발 2,525m) 전망대에 올라가 자유롭게 몽블랑 산군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고(7명), 다른 한 팀은 브레방 팀과 플랑프라즈(Planpraz. 해발 2,000m)까지는 함께 올라간 다음 그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7명), 마지막 한 팀은 이번 트레킹에 이어서 다시 TMB를 하러 떠났다(3명). TMB 팀을 제외한 사람들은 각자 일정을 마친 후 오후 1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원봉과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락블랑 트레킹을 할 때부터 패러글라이딩으로 몽블랑의 창공을 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부러워했는데 이제 내가 그것을 하려는 것이다.
본래 이번 트레킹 일정에는 없었는데, 이상무가 원하는 사람에 한해 비용(110유로. VTR 촬영하면 30유로 추가)을 내면 알선해 주겠다고 하여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사실 무경험자로서는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하여 TMB를 떠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14명 중 7명만 지원했다.
나는 예의 호기심이 발동하였고, ‘이런 때 아니면 언제 해 보랴, 그것도 알프스에서’ 라는 생각에 거침없이 지원한 것이다.
아침 식사 후 호텔을 나와 브레방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하였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아직 케이블카 운행 전인데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벌써 장사진이다. 브레방이 그만큼 몽블랑 산군을 조망하기 좋은 까닭인 듯하다.
잠시 기다리자 패러글라이딩 파일로트들이 왔다. 창공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답게(여자 파일로트도 있다) 구릿빛 얼굴의 건장한 체격들이다. 그들과 케이블카를 타고 플랑프라즈로 올라갔다. 브레방 팀과는 여기서 헤어졌다(그들은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브레방으로 올라갔다).
[플랑프라즈]
[파일로트가 장비를 갖춰 준다]
비교적 일찍 올라왔는데 벌써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출발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낙하산에 의자를 줄로 연결하고(파일로트가 해 준다. 나는 앞에 앉고 파일로트는 뒤에 앉는다) 파일로트와 함께 발을 맞추어 절벽 위의 경사진 풀밭을 뛰어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견 쉬워 보인다.
그러나 발밑이 바로 절벽인데 뛰어간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멈칫할 수밖에 없다. 백척간두에 진일보는 부처님에나 해당하는 말 아니던가. 실제로 한 사람은 그렇게 뛰다가 파일로트와 걸음이 엉켜 바닥에 굴렀다.
내 파일로트가 안전하니 안심하고 뛰라고 계속 나를 격려한다. 자기만 믿으란다. 용기를 내어 절벽을 향해 힘껏 달렸다. 순간 멈칫하여 아찔하기도 했지만 이내 절벽 위 창공에 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호쾌재!
[절벽을 향해 달린다]
[샤모니 상공]
한양의 촌부가 2-3,000m의 알프스 하늘을 낙하산을 타고 떠다니다니 꿈만 같다. 하늘에서 맞는 바람이 너무 상쾌하다. 몽블랑의 하얀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있고, 샤모니 시내는 저기 발아래 있다. 파일로트가 양손의 운전 손잡이를 넘겨 줘 운전도 직접 해보았다. 오른 손 왼 손 잡아 다니는 쪽으로 낙하산의 방향이 바뀐다. 파일로트가 롤러코스타 운전을 할 때면 어지럽고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재미는 더 있다. 낙하산에 비디오카메라가 정착되어 있어 내 모습을 계속 촬영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나는 나대로 휴대폰을 꺼내 주위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30분 동안 타고 하늘을 떠다니다 샤모니의 잔디밭에 사뿐히 내렸다. 착지할 때 발목을 다치지 않게 등산화를 싣는 게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막상 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운동화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탈 수 없을 것 같아 호텔에 두고 나왔는데, 파일로트가 배낭을 메고 타기 때문에 그에게 맡기면 된다.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난 후 모자 없이 땡볕 아래를 걷는다는 것은 고통이다.
패러글라이딩을 마친 후 시간이 남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브레방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플랑프라즈에서 갈아탈 때 예산, 일청, 지선배를 만났다. 그들은 브레방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브레방에 도착하니 역시 몽블랑 정상이 잘 보인다. 몽블랑 정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브레방(상)과 그곳에서 본 몽블랑(하)]
지금부터 257년 전인 1760년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소쉬르(Horace Bénédict de Saussure)는 이곳에 올라 하얀 눈으로 덮인 몽블랑을 보고 감동을 받아 정상 등정을 꿈꾸었다. 그러나 몇 차례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에 그는 몽블랑을 최초로 등정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러 1786년 샤모니의 수정 채취업자였던 발마(Jacques Balmat)와 의사였던 파카르(Michel-Gabriel Paccard)가 마침내 초등에 성공했다. 당시 알프스의 작은 산골마을에 불과했던 샤모니가 이 등정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그 때까지 천둥 번개가 치고 눈사태가 일어나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던 알프스의 고봉들이 등정의 대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유럽의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몽블랑을 등정하였고, 그렇게 해서 알피니즘(alpinism)이 태동하였다. 그 후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1865년 윔퍼의 마터호른 등정을 마지막으로 알프스의 4,000m 급 고봉들이 모두 정복되기에 이른다.
몽블랑 초등 후 100여 년이 지나 샤모니 시내 파카르 거리에는 발마와 소쉬르의 동상이 세워졌고(소쉬르가 폼을 잡고 서 있는 옆에 발마가 마치 하인처럼 구부린 자세로 손짓으로 몽블랑을 가리키고 있다), 다시 100여 년이 지나 파카르의 동상이 그 뒤에 따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파카르가 중도 포기하고 발마 혼자 오른 것으로 알려져 발마와 소쉬르의 동상만 세웠다가 훗날 진실이 밝혀져 파카르의 동상이 추가된 것이다.
[발마(좌)와 소쉬르(우)의 동상]
몽블랑 정상을 이미 익히 보아 왔고, 마침 구름도 몰려오기 시작하기에 브레방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내려와 호텔로 가서 짐을 꾸렸다. 배낭에 넣을 필수품만 제외하고는 모두 캐리어에 넣었다. 이제 서울에 가서나 풀 것이기 때문이다.
오후 한 시에 점심식사를 위해 일식당(Satsuki)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는데, 잠시 후 왁자지껄하면서 일단의 무리가 들어선다. 역시 일본인들이다. 일본인 식당 주인한테 자기네 음식을 주문하는데도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홈그라운드라고 생각하고 더 그러는 건가. 조용한 데서 편안하게 하기를 바랐던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마저 방해를 한 일본인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랐다. 제네바(Genève)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기차를 타고 취리히로. 취리히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제네바는 영상 32도로 무척 더웠다. 여러 날 동안 산속이나 산골마을에 있다가 대도시로 나오니 왠지 어색하다. 제네바 역에서 기차시간이 남아 근처의 레만호(le lac Léman)를 찾았다.
레만호의 상징인 거대한 분수가 하늘 높이 물기둥을 뿜어 올리고 있다. 오리 한 마리가 자맥질을 하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그런데 레만호 주위의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통제를 하고 거리를 메운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간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레만호반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보고 가겠지만 갈 길이 먼 걸 어쩌랴.
[레만호]
취리히 행 기차는 만원이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기차 안에서 우리 일행 중 대전에서 온 부부가 시렁에 올려놓은 배낭을 도둑맞았다. 한 중동사람이 바닥에 돈을 흘린 것을 주워주고 나니까 배낭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배낭 속에 여권과 돈지갑, 그리고 그 동안 찍은 사진이 담겨 있는 DSLR 카메라를 넣어 두었다는데, 몽땅 잃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권이 없으면 귀국길이 막히는지라, 이들 부부는 이상무와 함께 기차에서 내려 베른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가 여권을 발급받아 쮜리히로 왔다.
이상무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대목인데 그 과정이 007작전을 방불케 하였다고 한다. 다른 칸에서도 비슷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전문적인 도둑들의 소행이다.
이번에도 인천에서 취리히로 떠나는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하였고, 그 바람에 취리히에서도 출발시각이 늦어졌다. 그리고 그 덕분에 베른에서 여권을 만들어 오는 사람들도 함께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게 세상일이 아닐까. 인천까지 8,700km. 9시간 반 걸리는 비행시간에 할 일은 잠자는 것뿐.
아듀 알프스~~!!!
이 글의 첫머리에서 TMB 대신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을 선택한 것이 꿩 대신 닭이 될지 봉황이 될지 가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했다. TMB는 유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 내 발로 직접 걸은 것이 아니기에 단정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후자를 마치고 난 지금,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을 꼭 해 보라고!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트레킹이라고!!! (끝)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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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17.11.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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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텃골
2023.12.21 11:47
참 대단한 여정이네요.
감동적이고여.
얼마나 대단한 팀이면 현지 국영방송에서 까지 방영을 할까
이런 저런 풍경들 다 대단하지만 케블카대신 걸어 내려오며 만나는 소소한 풍경들과의 교감이나 야생화 밭에 누워 천상의 삶을 경험하고 산정호수에서 철녀선녀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네요.
이런 멋진 삶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져
덕분에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합니딘 -
우민거사
2023.12.22 09:44
아무나 못 누리는 삶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요.
강추입니다. 꼭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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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공영방송 SRF에서 본문 중에 나오는 융프라우 트레킹 동행 취재한 내용을
2017. 10. 26. 방영했다.
아래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i2BIATQHo
https://cafe.naver.com/hyechotrekking/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