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1순위, 겨울 한라산!

2015.02.21 17:29

범의거사 조회 수:2364

    

 

              오르고 또 올라도

 

 

   남한에서 최고로 높은 산인 한라산을 처음 등정한 것이 198310월이다. 그 해 91일자로 법관으로 임용된 직후에 현장검증차 제주도에 출장을 갔다가 주말에 산에 오른 것이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은 한라산의 풍광이 무척 아름다웠던 반면 화산재가 널린 돌길 등산로를 걷느라 무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98. 2. 8.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동료 교수들과 눈 덮인 한라산을 올랐다. 당시에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에 입이 벌어졌고, 눈 덮인 등산로가 마치 양탄자 위를 걷듯이 푹신하여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이듬해 겨울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라산 설산등반을 하였고, 그 다음 해 겨울에는 역시 사법연수원 동료교수들과 영실에서 올라가 윗세오름을 거쳐 돈네코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해 산행을 하였다. 그 이후로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과 법원도서관장 시절에 각 한 번씩 겨울 한라산을 찾았다.

 

   그렇게 이어진 한라산 설산등반의 여정이 2015. 2. 7. 그 6회째를 맞이하였다. 매번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백록담까지 올라갔다가 두 번(가족과 함께 갔을 때와 사법연수원 동료교수들과 다시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관음사 쪽으로 내려갔다. 되풀이해서 오르고 또 올라도 언제나 참으로 멋진 겨울 한라산, 무릎이 허용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찾을 것이다. 다만 다음부터는 코스를 달리 하는 것도 고려해 보리라

 

    아래는 이번에 동행한 이영훈 부장판사의 산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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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리스트 1순위, 겨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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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인사발령으로 민일영 대법관님실 전속연구관으로 오기 전까지 내 주변에 산 애호가가 드물어 한라산을 화제 삼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언제까지는 어느 지점을 통과해야 완주 가능한 힘든 코스라든가, 만만치 않은 경사를 올라야 한다거나 갔다 오니 무릎이 아파 며칠을 고생했다는 등 산행 결심을 저어하게 만드는 얘기만 들었던 데다,  남한에서 가장 높다는 산의 명성 탓에 지난 2년 동안 제법 산을 다니면서 붙은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라산은 내게 그저 경외의 대상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작년에 설악산 대청봉, 오대산,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오고 나서, 민대법관님께서 '이제 한라산만 가면 되겠네'라고 하셨을 때 속으로 농담이시기를 바라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었는데, 웬걸, 우리 방 다른 두 분 연구관들(신우정 부장님, 김춘수 판사님)이 기다렸다는 듯 그 말씀을 반긴 탓에 덜컥 12일로 한라산을 다녀오기로 정해지고 말았다.

 

   가기로 결정하니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쉽게 간다고 결심하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전에 우리 방에 근무하셨던 분들께 이참에 가시자고 권하였더니 황진구, 변성환, 위광하 부장님이 선뜻 동행하시겠다 하시고, 얘기를 전해 들은 호제훈 부장님도 끼어 달라 부탁하셨다. 그렇게 네 분에다가 대법관님과 우리 방의 연구관 세 명, 김인숙 비서관님, 최희환 실무관 등 모두 10명이 가기로 정해졌다.

 

   그러잖아도 행동이 기민한 김비서관님과 최 실무관 등 부속실 식구들이 항공편숙소렌터카 예약, 식사장소 물색, 등산물품 준비 등을 신속하게 마쳤다. 특히 겨울 산행임을 고려해 당일 점심은 모 공중파 병영생활 체험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당기면 뜨거워지는 발열도시락으로 결정하였는데미리 사무실로 종류별로 하나씩 도시락을 배달시켜 작동법을 시험해 보고 맛도 보게 한 다음 취향대로 고르게 해 주문하는 등 그 치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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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기면 뜨거워지는 발열도시락]

  

    이미 여러 차례 한라산을 다녀오셨던 대법관님께서는 돌산인 한라산은 눈 위를 걷는 것이 무릎에 충격이 덜해 편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다고 우리를 안심시키셨지만, 산행에 있어 달인 경지이신 대법관님 말씀만 믿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가기 전에 한라산에 관해 알아보았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이라 불린다. 산이름 漢拏山은 산이 높아 산정상에 서면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으로, 예전에는 부악, 원산, 진산, 선산, 두무악, 부라산, 영주산, 혈망봉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정상에 지름 약 500정도 되는 白鹿潭이라는 화구호가 있는데, 흰 사슴이 물을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신선들이 백록을 희롱하며 놀았다는 전설도 있단다.

   한라산을 오르는 5가지 코스 중에 백록담을 보려면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성판악 코스는 출발지인 성판악탐방안내소에서 정상까지 9.6이고, 정상에서 관음사 코스를 이용해 하산 종착지인 관음사지구야영장까지는 8.7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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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탐방로]                                               

 

     우리 일행 역시 대부분이 한라산이 초행임을 감안해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성판악 코스로 올라가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마침 제주지방법원에 필자와 친한 분들이 근무하고 있어 연락하니 유석동, 이정권, 김태훈 부장님 등 세 분이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하기로 하셨다.

 

    드디어 출발하기로 한 26일 금요일이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후 비행기로 김포를 떠나 제주공항에 내렸는데 공항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대법관님께서 공항이 엄청나게 커졌다고 감탄하신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넓어졌고 시설도 깨끗해진 게 눈에 들어온다.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려 하니 렌터카 사무실은 공항 안에 없고 주차장 쪽에 따로 마련된 전용 건물로 가야 한다는 안내를 듣고 많이 달라졌음을 더욱 실감했다.

 

    저녁 먹기 전까지 비는 시간에 수월봉 근처 둘레길을 산책하기로 해 이동하는데,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날씨 걱정하는 것을 아신 대법관님께서 한라산 날씨는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니 지금 예측하기는 이르다고 하셨지만, 마음 한쪽에는 모처럼 왔는데 좋은 경치 못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목적지인 차귀도 포구에 도착했다. 차귀도 포구에서 수월봉 방향으로는 제주 올레길 12코스에 포함된 엉알해안 산책로가 나 있다. 깎아지른 듯 아찔한 퇴적층의 해안절벽인 엉알해안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해안절벽층에 박힌 다양한 크기의 화산탄들과 탄낭구조를 보니 엄청나게 격렬한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책로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는데, 쌀쌀하면서도 시원한 바람,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해안가의 검은 돌들, 출렁이는 파도소리 등 제주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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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알해안 산책로에서 바라본 수월봉 전망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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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알해안의 퇴적층 절벽]              

  

     수월봉 전망대 입구 안내판에는, 어머니 병을 고치려고 남매가 약초를 찾아 수월봉 절벽을 오르다 누이 수월이는 떨어져 죽고 그 누이 손을 놓친 동생 녹고는 한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얘기를 읽은 탓이었을까.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구름 가득 낀 우중충한 하늘 아래 바다는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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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출발장소인 성판악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좁지 않은 안내소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세 분은 벌써 와 출발 채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여전히 묵직하게 흐린 날씨에 청명한 풍광은 보기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법관님께서 여기 날씨는 수시로 바뀌니 올라가 봐야 안다는 말씀을 또 하신다. 과연 날씨가 바뀔까 반신반의하면서 8시 무렵 안내소에서 출발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산에 왔던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아야 될 정도였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을 가득 덮은 눈에 "와아~~" 하는 탄성들이 절로 터진다. 원래 한라산 등산로는 돌길이라고 들었는데, 눈으로 얼마나 두텁게 다져졌는지 걷는데 발에 돌부리 하나 차이는 것이 없고 마치 푹신한 융단 위를 걷는 느낌이다. 한라산 등반은 겨울이 더 쉽다는 대법관님 말씀이 몸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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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눈밭]

 

     출발지인 안내소에서 1차 기착지인 속밭 대피소까지는 4정도 되는데 거기까지는 경사가 완만해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속밭에서부터 진달래밭 대피소까지의 약 3.2구간은 경사가 점점 급해지면서 제법 숨이 차올랐다. 나만 힘이 드나 싶어 일행을 살피니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분들이 제법 눈에 띈다. 아이젠을 찬 채로 두꺼운 눈 위를 오래 걸은 것이 다리에 피곤함이 빨리 찾아온 이유인 것 같았다. 이번 겨울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산행을 게을리했던 것에 대한 갑작스러운 후회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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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달래밭 대피소]

 

    그럼에도 12시까지는 통과해야 하는 진달래밭 대피소를 우리 일행은 넉넉하게 11시 무렵 도착했다. 그러나 여전히 날씨는 출발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구름이 자욱하게 끼는 것 같았다. '이제는 맑은 하늘 보기는 어렵겠구나' 하고 체념하면서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의 2.3산행을 시작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자세히 보니 구름이 조금 걷히기도 했지만 우리가 구름 위까지 올라와 있기도 한 것이 이유였다.

 

   눈부시게 내리비추는 햇살에 보석같이 반짝이는 환상적인 설경이 그 자태를 뽐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슬쩍 대법관님을 바라보니 거 봐, 내가 뭐랬어하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우리 일행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사람들 발자국이 나지 않은 곳까지 안쪽으로 들어가 눈 속에 푹 주저앉거나 아예 드러눕기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그 순간을 만끽했다. 눈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것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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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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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위를 침대로 착각한 신우정 부장님]


      드디어 정상에 다다르니 눈 덮인 백록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왜 하얀 사슴이 뛰논다고 했는지가 가슴으로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내려가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푸르고 높은 하늘,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휘날리는 구름, 그 아래 온갖 신비를 담고 있을 것 같은 하얗고 커다란 은쟁반이 어우러진 모습은 조물주가 그려낸 한 폭 풍경화 그 자체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던 호제훈 부장님은 중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며 힘겹게 정상까지 올라오셨는데 백록담을 보시고는 언제 힘들어했느냐는 듯 웃음꽃을 활짝 피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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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록담을 배경으로]


      감탄을 거듭하면서 백록담을 눈과 가슴 깊이 가득 담아 두는 동안에 시간이 제법 지나  하산을 독촉하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다가 대법관님께서 찾아내신 아늑한 장소에서, 준비해 간 발열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허기진데다 정상에서 맞은 칼바람에 몸이 얼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따끈하게 데워진 도시락은 사무실에서 시험 삼아 먹었던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을 선사해 주었다.

 

    관음사 쪽으로 내려가면서 만나게 되는 백록담 쪽 산을 북벽이라고 하는데, 그 장엄한 산세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성판악 코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웅장한 파노라마, 외국의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기막힌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산에서 보는 경치라는 사실이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쌓인 눈도 성판악 코스보다 훨씬 많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행한 이정권 부장님 얘기로는 2주 전에 왔을 때는 눈으로 완전히 덮여 있어 나무가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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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벽을 배경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춘수 판사님, 신우정 부장님, 호제훈 부장님황진구 부장님, 민대법관님, 김비서관님, 유석동 부장님, 이정권 부장님, 김태훈 부장님  위광하 부장님, 최희환 실무관 / 필자는 사진 찍는 중임]

 

 

 북벽과 이어지는 능선길 지형은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산지대 지형과 비슷하기 때문에 겨울철에 산악훈련 코스로 이용된다고 한다.날도 멀리 떨어진 능선 절벽을 로프로 오르고 있는 훈련팀을 볼 수 있었다. 산을 향한 그들의 지고한 열정에 절로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하산길 군데군데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는 구간을 초긴장 상태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여러 번 겨울 한라산을 오르셨던 대법관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키를 타듯 쭉쭉 내려가시는 전문 산악인의 모습을 보여 주셔 우리 일행을 부끄럽게 하셨다. 김비서관님이 포대자루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다가 굴렀던 것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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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사 쪽 하산길]    

                      

      처음 오른 겨울 한라산, 9시간 30분에 걸친 총연장 18.3km의 산행길이 결코 쉬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청명한 하늘에 빛나던 햇살에 보석같이 빛나는 눈세상이 펼쳐지던 그 순간과 사슴이 뛰놀 것 같은 은쟁반 같은 백록담, 장엄한 북벽 능선의 온몸을 따뜻하게 녹여준 따뜻한 발열도시락의 환상적인 맛 등등, 이번 산행에서 받은 감동과 추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간직될 것이다.

 

    겨울 한라산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첫 번째 장소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산행을 마치기도 전에 꼭 다시 와야지 하는 결심을 하였다. 이제 두 가지 코스를 가봤을 뿐이니 나머지 세 군데 코스를 버킷리스트 1순위에 넣고 다음 산행을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