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는 어디에(화악산)

2013.06.27 18:55

범의거사 조회 수:13612

 

  구암대사 보시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던가, 무더운 여름인데 잘 계신가?

지난 정초에 대사한테 대관령 능경봉과 양양 낙산사 이야기를 전한 후 한동안 적조했네.

기상청은 분명 장마중이라고 했는데, 비는 안 보이고 무더위만 계속되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땀을 많이 흘리는 대사에게는 시원한 빗줄기가 한층 더 기다려지겠네그려.

 

대사,

 

   범부는 지난 토요일(2013년 6월 22일)에 서리풀산악회원들과 함께 가평의 화악산(華岳山, 1,468m)을 다녀왔다네. 화악산은 남한 10좌 중 열 번째 산이라네. 10좌를 순서대로 적어 보면,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설악산(1,707m)->덕유산(1,614m)->계방산(1,577m) ->함백산(1,573m)->태백산(1,566m)->오대산(1,563m)->가리왕산(1,561m)->화악산(1,468m)의 순이네.

작년 9월의 가리왕산에 이어 이번에 화악산을 오름으로써 범부의 40여 년 등산 인생에서 마침내 10좌 완등을 달성한 셈이네.

전문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의 8,000m가 넘는 봉우리 14좌를 완등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우리네야 그런 건 언감생심이고 남한 10좌를 다 오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라네. 대사는 어떠한가?

 

   화악산은 경기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네. 경기5악(五岳 : 화악산, 포천의 운악산, 파주의 감악산, 서울의 관악산, 그리고 개성의 송악산)중 으뜸이지. 사실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에 걸쳐 있는 산이므로 경기도 산이라고 하는 것에는 다소 어폐가 있지만, 강원도에는 남한 10좌 중 6개가 있으니 경기도 산이라고 해도 강원도 사람들이 그다지 서운해 하지는 않을 듯하이.

그런데 말일세, 이처럼 경기도에서는 최고봉의 산인데도 강원도에 걸쳐 있어서인지, 아니면 정상에 공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별로 명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네.

 

  화악산0.jpg 

[화악산 지도]  

 

   하지(夏至) 다음날의 무더운 여름임을 감안하여 등산의 출발지점을 화악터널(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에 있네. 해발 850m)로 잡았는데, 서초동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차를 5-6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간이매점과 간이화장실도 있건만, 정작 그 흔한 등산안내도가 없더군. 그뿐인가, 등산로 입구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하나 없더라고. 단지 산의 정상방향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오솔길이 나 있어, 그 길로 알아서 올라가라는 것으로 보인다네. 하다못해 나무에 리본이라도 달아놓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공기가 맑아서인지 많은 나비들이 군무를 추면서 산객을 맞아주어 반갑더군. 그나저나 오솔길도 잠시, 곧 넓은 신작로 임도가 나오고 이어서 시멘트콘크리트로 포장된 군사도로(?)가 등장하여 정상 부근까지 이어지는 통에 중간에 앉아서 쉴 만한 곳이 전혀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다행히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 잔뜩 찌푸린 덕분에 속절없이 땡볕 아래를 걸어야 하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높은 산을 등산하는 재미는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네.

 

  화악산1.jpg

                           

       내내 이정표가 없어 이 길로 가는 게 제대로 가는 것인지, 얼마를 더 가야 정상인지 알 길이 없어 스마트폰의  네이버지도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 ‘아차’, ‘준아차’, ‘아리랑’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인 간판 같은 것들이 보였다네. 군사용어인지 외계인의 암호인지 모르겠네만, 그냥 궁금한 채로 남겨 두기로 했다네.

 

화악산2.jpg

  1시간 40분 걸려 정상 부근에 도착했는데, 정상(신선봉)을 향해 더 이상은 진전할 수 없네. 앞서 말했듯이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일세.

   그 동안 구름이 전부 걷혀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기는 하였지만, 애써 집에서 멀리 높은 산을 찾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정상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이라니...

 

   산 정상을 옆으로 돌아 중봉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에 처음으로 ‘중봉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네. 바야흐로 진정한 등산로가 나오는 것이지.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세. 그 길로 들어서면 이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정표도 리본도 없어 막막하다네. 화악산3.jpg 눈썰미가 있는 송봉준 회장이 이게 등산로가 맞나 싶은 길로 방향을 잡아 중봉으로 오를 수 있었다네. 그런데 이 등산로가 매우 험하고 오르막 경사가 대단하여 나무를 붙잡고, 바위를 타고... 네 발(^^)을 다 사용해야 한다네. 등이 금방 땀으로 젖더군.

 

   그렇게 20여 분 숨을 헐떡이면 중봉에 도착하지.

해발고도가 1423.7m. 지도에 따라서는 1,450m라고 되어 있는 곳도 있는데, 중봉임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1423.7m로 되어 있다네.

현재 화악산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

중봉 표지석 주위에 공간이 거의 없어 갑제1호증(증명사진)만 남기고 바로 하산길로 접어들었다네.

 

  화악산4.jpg

                                             [중봉 : 사실상 정상이나 다름없다]

 

중봉1.jpg

 

구암대사,

 

   대사도 알다시피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등산의 맛을 뭉개는 것이기에 하산길은 당연히 다른 방향으로 택하였네. 많이 알려진 조무락골쪽로 내려가는 것이지. 그런데 처음 능선길은 완만한 흙길에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 있어 마치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네만, 큰골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해발 1,300m)부터 조무락골 계곡(해발 550m)까지 난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이 길을 내려가려니 ‘아이고, 내 무릎~~’, 높은 산이니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네만, 등산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심활섭 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등산 매니어인 송봉준 회장까지 미끄러지더군.

화악산5.jpg    

   그렇게 힘들게 계곡으로 내려와(중봉으로부터 1.9km) 물을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 날이 더울수록 심심산속 계곡물은 더 차다고 했던가, 물속에 손을 담그고 30초를 견디기가 어려웠네.

 

   그래도 용감하기 그지없는 송회장은 양발을 다 담그고 1분 동안 버텨 일행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지. 그리고 잠시 후 계곡을 따라 더 밑으로 내려가서는 아예 물속으로 텀벙 들어가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네. 덕분에 내 지갑에서 1만원이 나갔다네.^^

 

   조무락골은 화악산과 석룡산(1,150m) 사이의 계곡으로 새(鳥)도 춤을 추며(舞) 즐겁게(樂) 놀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곳이라 그렇게 이름지어졌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소 과장이 심 듯하이.

   가평에 있는 비경인 것은 맞지만, 그런 식이라면 전국에 조무락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계곡이 수없이 생겨나야 할 걸세.

 

   그 조무락골 계곡을 4.1km 내려가 끝나는 지점에 삼팔교가 있네. 38선이 지나간다는 이야기이지. 조무락골은 많이 알려진 계곡인 만큼 이곳 등산로 입구에는 등산안내도가 있겠지 하는 기대는 나만의 환상이었네. 참으로 불친절한 산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네. 하기야 산이 무슨 죄가 있겠나. 산이 불친절한 게 아니라 명산을 알아보지 못하고 방치하여 둔 관계자들이 게으른 것이겠지.

 

   산행을 마친 오후 4시 15분, 계곡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도토리묵과 해물파전을 곁들인 막걸리 한 잔으로 피로를 달랬다네. 나야 술을 못하니 냄새만 맡았지만 잣의 고장 가평답게 막걸리에서 잣의 향기가 나더군. 이곳의 특산품인 모양일세.

화악산6.jpg  

   식당 주인더러 서울서 타고 온 차가 있는 화악터널까지 태워다 줄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택시는 가평읍에서 와야 해서 돈만 비싸고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며 자기가 쌍용 무쏘스포츠로 데려다 준다고 하더군.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덕분에 돈과 시간을 다 절약할 수 있었다네.

   듣자 하니 우리 같은 등산객들이 종종 있는 모양일세. 이런 정보는 알아 두면 편리할 것 같아 이야기하는 것일세. 교통이 불편한 오지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니 자가용영업행위 아니냐고 괜스레 탓하지 말게나.

 

   귀경길에 가평 읍내에서 목욕하고 저녁식사도 하고 서울에 오니 밤 10시였다네. 무더운 날씨에 멀리 있는 불친절한 산을 다녀오느라 힘이 들긴 하였지만, 힘들수록 산행 뒤의 정체 모를 뿌듯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름은 무슨 조화일까. 언제 날 잡아서 함께 등산화 끈을 한번 조여 보세나.(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