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네(백화산 주행봉)

2010.02.16 12:44

범의거사 조회 수:13780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네


  6월 25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가슴을 졸이기 몇 날이던가. 다행히 장마전선이 제주도 남쪽에 머물러 남부지방까지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말에 안도하며, 6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27일 영동 백화산 주행봉 등산길에 올랐다.
  지난 4월에 금수산을 다녀온 후 두 달만에 청주지방법원 구룡산악회가 정기산행에 나선 것이다. 금수산 산행은 봄이 한창인 때 했건만, 정작 산행날에는 하늘이 잔뜩 흐려 금수산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없었는데, 이번 산행은 그 반대였다. 장마철에 접어들었음에도 이 날은 햇볕이 너무 따가워 더위를 먹을 지경이었으니까.

  아침 7시 50분에 청주법원을 출발한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떼니 어느새 황간 나들목(IC)을 벗어나고 있다. 8시 30분이다. 도중에 영동지원 산악회팀을 만나 그들을 앞세우고 가다가 석천(石川) 위에 놓인 반야교 앞에서 하차하였다. 반야교를 건너는 32명의 산악인(?)들은 지혜를 찾아 나선 중생이런가.      


      
오전 9시,
백화산 등정의 첫발을 떼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북 상주시 모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화산(白華山)은 우리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국 어디에서나 당일로 찾을 수 있는 산이다. 주봉인 한성봉(漢城峰)은 높이가 933m이고, 그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가 주행봉(舟行峰)으로 해발 874m이다. 백화산(白華山)이란 이름은 산 전체가 티 없이 맑고 밝다는 뜻이라고 한다. 울울창창한 신록이 무성한 활엽수림도 일품이지만, 이 산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스릴 만점의 암릉(岩陵)이다. 그 암릉을 찾아 나섰다.

  반야교를 건너면 바로 길이 좌우로 갈리는 삼거리인데, 이 곳에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곧바로 주행봉으로 오를 수 있고, null오른쪽으로 난 길은 왼쪽으로 출발하여 주행봉에 올랐다가 원점회귀형으로 돌아오는 길도 되지만, 한성봉으로 올라가는 길도 된다. 우리는 주행봉이 주된 목적지인지라 당연히 왼쪽 길을 택했다. 주행봉까지는 2.8km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몇 분 안 가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산림욕장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50m쯤 오르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바야흐로 숲이 우거진 산길이 열린다. 잘 가꾸어진 계단길이다. 하지만 아직은 산림욕을 즐기는 산책로의 성격이 짙다. 길 좌우로 쉴 만한 평상과 체력단련기구가 눈에 띈다.
   돌계단이 돌길로 변하면서 산책로는 사실상 끝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은 지그재그길이 이어져 걷기가 수월하다. 길섶의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길손의 소매를 부여잡는다. 그냥 지나칠 달마대사가 아니다.

   주행봉까지 1.9km 남았음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비탈진 등산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주행봉까지는 오로지 오르기만 하는 고행길이다.
   등산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쏟아지는 땀을 식히기 위해 잠시 쉬기로 했다. 달마대사가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내더니 입을 열심히 놀린다. 아니 산행 시작할 때 그 동안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운동을 많이 하고 먹는 것은 자제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사님 왈, “그런 말은 본래 한 시간만 지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고 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달마대사로 인한 웃음이 제2의 ‘백구두’로 인하여 계속 이어졌다. 이번 등산에는 달마대사와 수석부에서 함께 근무하는 신정일판사와 이지영판사가 처음으로 동행하였는데, 이런 세상에나, 홍일점 여판사인 이지영판사는 점심거리와 음료수, 간식을 담은 배낭을 힘들게 짊어지고 가건만, 신정일판사는 빈 손을 덜렁덜렁하며 걷는 게 아닌가. 구룡산악회의 원조 백구두인 황성광 판사가 안 온 자리를 기어코 메우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오늘도 백구두가 출현했다’고 쏟아지는 야유(?)를 견디다 못해 신판사가 이판사의 배낭을 넘겨받아야 했다.   운동화 차림으로 등산길에 나선 영동지원 나상훈 판사는 신판사 덕분에 그냥 묻혀 지나갔다.^^    
  
  주행봉까지 1.05km 남았다고 씌어 있는 팻말을 지나면 지능선이다. 이 팻말이 재미있다. 이제껏 나름대로 산을 많이 다녔지만 거리 표시에 10m 단위까지 표시한 팻말은 처음 본다. 영동군의 백화산 관리가 그만큼 치밀하다는 것일까?
  국립공원은 고사하고 도립이나 군립공원조차 아닌 산의 관리를 그렇게 한다면 정말 감탄할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감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나오는 팻말에는 방향표시만 되어 있을 뿐 거리 표시가 아예 없었으니... 안타깝게도 앞뒤가 안 맞는다.

   능선에 올라서면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시원한 바람으로 식힐 것으로 기대하였건만, 오호라!   6월의 태양은 머리 위에서 붉게 작렬하는데 산풍(山風)은 도대체 어드메로 갔다뇨?
    주행봉 못 미쳐 855봉에 서자 발아래로 굽이굽이 흐르는 석천의 물줄기와 반야사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855봉부터는 본격적인 암릉길이다. 그렇다고 위압감을 주는 험한 암릉은 아니다. 촘촘하고 앙증맞다고나 할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가운데 스릴을 느끼게 한다. 밧줄이 없으면 오르내리기가 곤란한 급경사도 있다. 숨이 찰 만하면 마침맞게 평탄한 숲길이 나타나 한 숨 돌리게 하는 것을 보면 조물주가 일부러 각본을 꾸며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영동지원 산악회팀이 전방에 근사한 바위가 있다고 가리키는 곳에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암벽이 도사리고 있었다. ‘상어지느러미바위’란다. 어이쿠 저길 어떻게 통과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주행봉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에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상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이다.
   영동지원산악회에서 준비한 홍어무침으로 때아닌 호사를 한다.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의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 이런 별미를 맛볼 줄이야! 


12시 10분,
주행봉 정상(해발 874m)에 도착했다. 거리에 비하여 산행 속도가 매우 느린 셈이다. 아무렴 어떤가, 염천(炎天) 하의 산행인데 서두를 일이 있는가.
   주행봉(舟行峰)은 그 이름 자체에서 산세를 짐작할 수 있다. 배(舟)가 떠가는(行) 봉우리(峰)! 능선상의 기묘한 바위들로 이어지는 암릉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배가 떠가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할 밖에.




    주행봉 정상은 평지에 가깝다. 맨땅의 한가운데에 이름없는 허름한 산소가 하나 있다. 산소 주인공의 후손이 분명 명당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묘터를 잡았을 터이지만, 등산객 입장에서 보면 ‘이 넒은 백화산의 하고 많은 자리를 제쳐 두고 하필 이곳에다? 그나마 관리도 제대로 안 하면서...’ 하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산소도 산소지만 주행봉 정상에서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을 발견했다.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있어야 할 표지석은 온데간데없고 흰 받침대만 덩그러니 뒹굴고 있다. 그 받침대를 세워 보니 뒷면에 연필로 ‘주행봉 814m’라고 씌어 있다.
    과거에 이곳을 올라 본 경험이 있는 영동지원산악회 사람들에 의하면 본래 검은색 표지석이 있었다고 한다. 후에 하산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니 지난 4월에 찍었다는 사진에서도 검은 표지석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 표지석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받침대 뒷면에 쓰인 글씨와 연관시켜 보면 누군가가 표지석을 가져가고 대신 받침대에 연필로 써 놓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불행하게도 만일 이 추론이 맞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세상에 참 별별 인간이 다 있네.”       

  구룡산악회 총무 조성철계장이 이곳까지 배낭에 통째로 넣어 갖고 올라온 수박 한 덩어리를 안주삼아 정상주를 돌리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달콤한 수박맛이라니....
  주행봉부터 한성봉까지의 5km에 달하는 능선의 이름이 공룡능선이다. 설악산에 있는 공룡능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작은 공룡능선’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칼날능선이다.

   이 능선길은  좌우 모두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한 발 한 발 움직여야 한다. 왼발을 잘못 디디면 경상북도 상주에서, 오른발을 잘못 디디면 충청북도 영동에서 시체를 찾아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바위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기도 하고, 밧줄에 의지해 절벽을 오르내리기도 하는 게 마치 산악훈련에 나선 기분이다. 처음 산행에 따라나선 이지영판사가 못내 염려되었는데, 팔다리가 긴 덕분에 안전하게 잘 가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한 굽이 넘으면 또 한 굽이가 나오는 능선이지만, 산의 높이나 암릉의 길이로 치면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설악산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설악산은 국립공원인지라 안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데 비하여 이곳에는 그 흔한 쇠막대 하나 없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영동군에서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능선길에서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좌우로 눈을 돌리면 발 아래 오른쪽으로 구절양장의 석천이 여전히 동행하고, 왼쪽 상주 땅에는 골프장(뉴스프링빌컨트리클럽2)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근교도 아닌데 이런 깊은 산골에 만들어 놓은 골프장에 누가 찾아올까 싶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워낙 날씨가 더워서인지, 그도 아니면 내 눈이 나빠서인지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골프장에 사람이 거의 안 보인다.

    칼날능선에서는 바위에 매달리고, 다소 평탄한 곳에서는 땀을 식히며 이제까지 온 길을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전진, 또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755봉도 넘고 마침내 공룡능선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안부(鞍部)에 닿았다. 이곳의 이정표에도 역시 거리 표시는 없다. 참으로 무심하다.
  시계바늘은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당초 예정보다 1시간 늦어졌지만, 사람의 발걸음이 느린 것 같아도 지나 놓고 나서 보면 참으로 빠른 게 바로 사람 발걸음이라는 송우철 부장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래서 걷는 포수가 달리는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안부에서 계속 직진하면 공룡능선의 종점이자 백화산의 최고봉인 한성봉에 도달한다. 욕심 같아서는 이왕 나선 길이니 한성봉까지 가고 싶은데, 32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함께 왔으니 내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다.

    대신 인터넷에서 한성봉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고려 때 몽고군이 침입하였다가 백화산에서 고려군한테 대패하고 한탄한 데서 처음에는 한성봉(恨城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한성봉(漢城峰)으로 변했는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정상 아래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의미에서 포성봉(捕城峰)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당연히 본래의 이름인 한성봉(漢城峰)을 되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지도에 따라서는 아직도 포성봉으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지도 제작자가 각성할 일이다. 이 땅에서 언제나 일본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 버리려나...

   혼자 한성봉에 다녀오겠다고 따로 나선 어수용 부장과 헤어져 안부에서 반야교 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등산지팡이를 펼쳤지만 길이 완만하여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반쯤 내려오자 계곡이 나타났는데, 안타깝게도 물이 거의 없다. 올해는 봄부터 비가 자주 오긴 했어도 매번 큰 비가 아닌 찔끔거리는 것이었기에 계곡이 메마른 것이다. 여름 산의 계곡에 물이 없으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야 계곡에 물이 조금 있어 손발을 적실 수 있었다.


   출발지인 반야교로 원점회귀하니 3시 15분이다.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었지만 인근에 있는 반야사로 향했다. 석천(石泉)가에 있는 이 절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해서 ‘반야사(般若寺)라고 명명했다고 한다(’반야‘는 문수보살을 상징한다).
   절의 모습은 흔히 몰 수 있는 형태 그대로여서 별 특징은 없다. 다만 대웅전 옆의 산기슭에 오래된 파쇄석들이 쌓인 너덜지대가 호랑이 형상을 띄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오래된 배롱나무도 볼거리라면 볼거리라고 할까.
   대웅전 앞에는 고려 초기에 세워졌다는 3층 석탑이 있는데, 마침 수리하느라 보호막을 둘러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대웅전 뒷산에 있는 문수전에 올라가면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영동지원에서 예약하여 놓은 식당에서 백숙, 도토리묵, 두부, 빈대떡 등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영동 최고의 명승지라는 월류정(月留停)으로 갔다.
  월류봉과 그 밑을 흐르는 석천의 물길이 너무 아름다워 달마저 머물다 가는 곳이런가. 속세의 하릴없는 나그네 눈에도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영동지역 관청에 가면 어디나 이곳의 경치 사진이 걸려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석천의 물이 좀 더 많았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게 아쉽다. 가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 어쩌랴. (2009. 7. 5.)

(후기) 멋진 산행을 준비하여 주신 영동지원의 김명한 지원장 이하 산악회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