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중원인가(중원산)

2011.06.15 14:33

범의거사 조회 수:10570

 

  존경하옵는 옥봉선사님께,


  오랫동안 문후 여쭙지 못하였습니다.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신지요?


  남녘에는 태풍이 상륙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천리 북쪽의 한양 땅은 바야흐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입니다.

  하여 소생은 그 푸르름에 몸을 의탁하고자 지난 주말에 양평에 있는 중원산을 찾았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상 중원(中原)이라 하면 충주지역을 일컫는데[옛날 옛적 충주의 명칭이 중원경(中原京)이었지요], 정작 중원산은 양평에 있으니 그 이름을 지은 작명가가 성명권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보니 ‘中元山’으로 표기하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中元은 7월 백중을 뜻하는데, 이건 또 무슨 의미람? 의문을 해소할 길이 없네요. 선사님께옵서 한 수 지도하여 중생의 우매함을 깨우쳐 주심이 어떠하신지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소생이 법원산악회장직을 맡게 되어 5월 14일 북한산에서 취임식을 한 이후 이번 나들이가 사실상 첫 산행이었습니다. 42년 전통의 산악회에서 정한 산행길인 만큼 명불허전(名不虛傳)이더군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은 하였지만, 그렇게까지 힘이 들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하니 회장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정한 여정은 아니었을 것으로 믿어도 되겠지요.^^


  사실 한양의 산객(山客)들이 수시로 찾는 북한산의 백운대가 해발 837m인지라 해발 800m의 중원산은 높이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힘들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 산의 등산로는 통상의 등산로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겹쳐지며 정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가파르게 올라가기만 하는 까닭에, 찾는 이로 하여금 기가 질리게 하더이다. 더구나 초입의 중원폭포(과연 ‘폭포’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 건지 의심스럽답니다)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40분 동안 너덜지대가 계속되는지라 입에서 단내가 나더군요.

  그 너덜길이 끝나면 이어서 경사가 매우 급한 깔딱고개가 기다리고, 30분 동안 헉헉대며 여기를 기어올라야 겨우 사거리(동으로 중원리, 남으로 정상, 서로 신점리, 북으로 싸리봉) 안부(鞍部)에 도착한답니다.

  이쯤 되면 무릎도 아플 뿐만 아니라, 연례행사로 산에 다닌다는 황진구 부장(소생의 연구부장입니다)이 걱정되어 쉬면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20여 분 후에 간신히 뒤쫓아 온 황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더군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숲이 우거져 등산로가 대부분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이지요.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다시 30분을 올라가야 하는데, 이 길은 바위 사이로 이어져 곳곳에서 밧줄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극기훈련이 따로 없더군요. 그러고 보니 정상에 다다르도록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같은 편은 물론이고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를테면 중원산을 전세 낸 셈이지요. 덕분에 주말임에도 고즈넉한 산행을 즐길 수 있어 좋긴 한데, 오지탐험에 극기훈련을 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원리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2시간 거리가 노동강도로는 4시간 거리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중원산1.jpg

 

   중원산의 정상에 서니 용문산, 백운봉, 용조봉, 폭산 등이 한 눈에 들어오더이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전후좌우로 보이느니 그저 산뿐인지라 우리나라에는 정말 산이 많다고 늘 감탄하는데, 중원산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어떤 사람들은 용문산(1,157m)은 주봉을 포함해 장군봉(1065m), 용문봉(947m), 백운봉(940m), 도일봉(864m), 중원산(800m), 용조봉(635m) 등 멋진 봉우리를 많이 아우르고 있어 가히 ‘경기의 금강산’으로 부를 만하다고 하더이다만, 소생이 보기엔 그건 ‘뻥’이 좀 심하지 않나 싶더군요. 높은 산에 오르면 늘 보이는 경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저 푸른 산하에 희로애락을 담고 사는 게 바로 우리네의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산 정상에 만들어 놓고도 관리를 하지 않아 망가져 버린 헬기장 때문만은 아니었겠지요. 이 망가진 헬기장은 덕분에 그늘만 없애버려 힘들여 올라온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그만큼 햇볕이 강했으니까요.


   오르막이 험하면 내리막도 험한 게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비록 너덜지대는 아니었으되, 가파른 경사를 30분 이상 속절없이 내려가려니 무릎이 어지간히도 아프더군요. 지친 몸을 이끌고 타박타박 걷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요. 용계계곡의 찬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피로가 싹 가시더이다. 욕심 같아서는 거풍(擧風)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의 눈도 있고 더구나 회장 체면에 그럴 수는 없으니 족욕(足浴)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코를 자극하는 시큼한 김치라면 냄새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용계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조계골계곡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더군요. 산에서 취사를 금지한 게 언제부터인데, 아직도 온 산에다 음식을 만드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러니 어찌하오리까.    


   참, 잊을 뻔했네요. 중원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이내 길 옆에 펜션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그 이름이 “솔수펑이 펜션”입니다. 솔수펑이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한참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지요. 황진구 부장이 잽싸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본즉, “솔숲이 있는 곳”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랍니다. 참 예쁜 말이지요? 문명의 이기도 잘 이용하고 볼 일이고요.

   그런데, 중원산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답니다. 등산길 내내 소나무는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중원산의 수종은 참나무가 주를 이루어서 등산로 옆의 곳곳에 참나무 숯가마터가 지금도 남아 있더군요. 안내문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숯을 구웠다고 하네요.


  선사님,


  지난 사월 초파일 무렵에 찾았던 옥천 근처 월류봉(月留峰)의 멋진 경치와 반야사 문수전이 눈에 선하네요. 휘영청 밝은 달이 머무는 곳에서 곡차 한 잔 하심이 어떨는지요?

 

  더운 여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2011. 6. 14.


  범의 합장

     

중원산등산로.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