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不可思議(울진 백암산)

2010.02.16 11:36

범의거사 조회 수:10057


                       세 가지 不可思議


   지난 1월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태백산을 올랐던 사법연수원 28기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등산을 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울진의 백암온천에 도착한 것은 1999. 12. 4. 밤이다.
   올 초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 원통, 대전, 전주, 대구, 영덕 등지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 군법무관을 하고 있는 바쁜 몸들인데도, 연수원 졸업 후 처음 보는 얼굴을 대한다는 반가운 마음에 전국 각지에서 11명이 달려 왔다. 28기 7반 A조의 내 지도반원 총 16명 중 11명의 참석으로 기대 밖의 성황을 이루었다.01.jpg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지만, 예의 부지런한 최성환 검사(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가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국을 끓인 덕분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한 여름의 계룡산에서는 정상까지 수박을 짊어지고 갔고, 눈 덮인 태백산에서는 따끈한 라면을 대령하여 동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최검사는 그야말로 산행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안내자이다. 오는 12월 26일이면 결혼을 한다니 당분간은 더불어 산행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여 아쉽다. 이 자리를 빌어 그의 행복한 앞날을 기원한다.  

   1999. 12. 5. 아침 8시 30분.

   백암온천의 한화콘도 뒤 등산로입구에서 백암산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출발 전 콘도의 안내소에서 들려 준 바로는 왕복 4시간이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벼운 산책코스 정도이겠군.'
너나 할 것 없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실제로 출발 후 한 시간 정도는 등산로가 완만하고 더구나 흙길이어서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삼거리를 만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20여분 정도 헤매야 했다. 그 흔한 이정표나 리본은 어디로 갔는지... 일요일인데도 등산객마저 보기가 쉽지 않다. 작년 6월의 치악산 산행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완만한 길이 끝나고 한 동안 오르막길이 계속되자, 마침내 몇몇이 힘들어한다. 그러면 그렇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이 어찌 뒷동산 같으랴. 그에 비해 주말이면 서울 근교의 산을 찾는다는 이선희 변호사는 저 앞에서 가고 있다.  

   출발 후 2시간 정도 지나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가쁜 숨을 고를 수가 있다. 아울러 좌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햇살이 봄날처럼 따뜻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겨울인지라 가만히 서 있으면 등골에서 寒氣가 느껴진다. 헬리콥터 착륙장을 두 개 지나 드디어 해발 1,004미터의 정상에 도착한 때는 11시. 출발로부터 2시간 30분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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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산(白巖山)의 본명이 '밝(白)바위(巖)산(山)'임을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는 정상에 서니 사방이 몽땅 발아래 놓여 있고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동쪽은 동해바다요, 북쪽은 높은 산이 없고, 서쪽의 청량산은 해발 870미터이고, 남쪽의 주왕산은 해발 720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청량산은 도립공원이고, 주왕산은 국립공원인 반면 백암산은 아무 공원도 아닌 그냥 산일 뿐이다. 덕분에 앞의 두 산은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 비하여,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백암산은 찾는 이가 드물다. 사람들은 산을 보러 산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공원이라니까 산을 찾는 것인가. 산을 공원으로 지정한다 하여 산이 달라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영덕에 사무실을 낸 강봉성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인근 주민들의 청원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몇 번 있었지만, 절 하나 없는 곳이 무슨 도립공원이냐며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절의 존재가 공원 지정의 요건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러고 보니 이 산에서는 오르고 내리는 동안 유명사찰은 고사하고 이름 없는 암자 하나 볼 수가 없다. 不可思議가 아닐 수 없다.  

   백암산에는 또 하나의 不可思議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산 정상의 모습이다.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산의 정상을 보는 순간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정상에 오르는 능선에 효용가치가 의심스런 헬기장을 두 개나 만들어 놓아 볼썽사나운 판에, 산의 정상마저 넓직하게 깎아 평지로 만들고 거기에 헬리콥터가 이착륙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산의 정상을 뭉개버리는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不可思議이다. 등산을 매우 좋아하는 이 지역 군수가 서울 출장을 위하여 이용한다는 소문이 차라리 헛소문일 거라고 치부하고 싶을 따름이다.

   완만한 능선길의 北斜面과는 달리 南斜面의 하산길은 경사가 급하다. 그런데 거기에 돌로 된 산성이 있을 줄이야. 경상북도의 남동쪽 동해바닷가에 위치한 백암산에 산성을 쌓았다면 그 목적은 결국 왜구(倭寇)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추측하여 본다. 이 험하고 높은 곳에 돌로 된 성을 쌓느라 피땀을 흘렸을 民草들의 애환이 가슴에 찡하게 전해져온다. 日本人, 그들은 우리의 지나온 역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 것일까.  

   하산 도중에 일행 중 한 명이 탈진하였다고 드러눕는 바람에 시간이 예정보다 많이 지체되었다. 논의 끝에 선발대가 먼저 산을 내려가고 후발대로 4명이 남아 따로 천천히 하산하기로 했다. 그 결과 2시간 30분 만에 올라간 산을 3시간 30분 걸려 내려온 통에 선발대 후발대 할 것 없이 모두 점심도 굶은 채(후발대는 하산 후 온천물에 손 씻을 시간조차 없었다) 서둘러 포항행 자동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남자도 아침 먹은 지 4-5 시간 만에 탈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山行의 마지막 不可思議였다. 등산을 할 때는 아무리 코스가 짧아도 반드시 비상식량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그런 不可思議였다. (1999.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