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찌 행복이 아닐쏘냐

2023.10.01 20:53

우민거사 조회 수:153

      

   일주일 전에 추분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 후면 한로(寒露)이다.

   비록 한낮에는 아직 더위가 남아 있지만, 금당천의 오늘 아침 기온이 영상 13도였다. 그래서 뚝방의 풀잎에는 이미 찬 이슬(寒露)이 맺혔다. 그만큼 가을이 한창이다.

   농촌의 황금 들녘은 추수로 바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촌부의 마음도 덩달아 바쁘다. “더워, 더워~” 했던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어느새 가을이 잔뜩 또아리를 틀고 있으니, 머지않아 동장군이 찾아올 것이고, 그렇게 1년이 훌쩍 가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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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르익어가는 가을 복판의 한가위(2023. 9. 29.)를 전후하여 개천절(2023. 10. 3.)까지 무려 6일간의 연휴가 이어지고 있다. 본래 10월 2일은 샌드위치데이로 휴일이 아닌데,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임시휴일로 정했다. 그 바람에 휴일이 길어진 것이다. 

 

    정규직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노는 날이 많아 좋지만, 가능한 한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려야 하는 생산자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긴 연휴가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이에 더하여 애초 기대했던 소비 진작은, 국내 소비보다는 인천공항을 꽉 메운 인파가 보여 주듯, 해외 소비만 권장한 꼴이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책 입안자들이 신중하게 판단할 일이다.

 

    올가을 들어 비가 자주 와 추석에 보름달을 못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구름 속을 들락날락할망정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의 이름값을 했다.

    특히 촌부는 금당천의 우거(寓居)에서 처음으로 두 손주(세원과 정원)들과 함께 달맞이를 하는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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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거창한 시각(視角)에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 했으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게 곧 행복이겠지만, 이런 거대담론은 어디까지나 위정자(爲政者)의 몫이지 한낱 촌노가 입에 올릴 일이 아니다.

    시각(視角)을 미시적으로 좁히면, 입시생은 시험에 합격하는 게 행복일 것이고, 사업가는 하는 일이 번창하는 게 행복일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근로자는 노는 날이 많아 연휴를 즐기는 게 행복일 것이다. 

 

   그럼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촌노(村老)는 어떤가. 

  공자님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라고 했지만, 촌노는 “두 손주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이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대구에서 근무하는 까닭에 자주 보기가 어려운 두 손주가 찾아와 함께 한가위를 지내며 보름달을 맞이하는 즐거움이야말로 행복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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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Immanuel Kant)는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활동을 하는 이상 할 일이 있고, 두 손주를 사랑하고,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나라의 동량재(棟梁材)가 되길 바라는 게 소박한 바램이니, 칸트의 기준으로도 분명 촌노는 행복한 사람인 셈이다.       

  

    행복을 말하다 보니 긴 연휴가 가져다주는 뜻밖의 행복이 있다.

   신문도 없고, TV도 안 보니 꼼수와 극한 대립으로 날을 지새는 볼썽사나운 위정자(僞政者爲政者)들의 소식을 접하지 않아서 무엇보다도 좋다.

    그 대신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새소리와 가을꽃을 벗 삼으며,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그 안에 즐거움이 가득하니(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 이 어찌 행복이 아닐쏘냐.     

 

베토벤 _ 월광 소나타-3-Peter Nagy, Ludwig V....mp3   (베토벤의 월광소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