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퇴 임 사

 

저는 이제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하여 주신 대법원장님, 동료 대법관 여러분, 그리고 지금까지 저를 위하여 헌신하여 주신 연구관과 행정처 직원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퇴임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법원에서 보낸 33여년의 세월은 긴 여정이었습니다. 초임 법관 시절 모든 업무를 손으로 처리하는 때였습니다.

이제는 시설이나 업무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지만 앞으로 더 나은 환경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공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늘 생각하였습니다. 때마침 논어를 읽다가 이천 년 전의 대화가 흥미로워 이 자리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공자께서 제자에게 포부를 말하여 보라고 하자 먼저 자로가 “수레와 말을 타고 가벼운 가죽옷을 입고 벗들과 그러한 재물을 쓰다가 헤어져 버려도 아깝지 않은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자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은 차를 타고 싶고 브랜드 옷을 입고 싶고 친구와 어울려 놀고 싶어 합니다.

이때 안회가 “내 좋은 점을 자랑말고 공로를 늘어놓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응수합니다. 정말로 명언이지만 실천하기 너무 어려운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법관의 처신에는 이 말이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공자의 포부를 묻습니다. 공자께서 “선배에게 편안함을 주고 동료에게 믿음을 주고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법관으로 사건을 심리할 때 선배법조인이 믿음직하게 생각하고 동료들이 의견을 존중해주고 후배들이 따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법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처리하는 기관이어서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여도 근본은 변함이 없어 우리는 고전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지만 남은 여러분께서는 보다 나은 법원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 7. 10.

 

대 법 관 박 일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