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퇴 임 사

 

 

오늘 이 귀한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해 주신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법원행정처장님, 여러 대법관님, 그리고 법관 및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판사로서, 또 대법관으로서 근무하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저를 도와주신 여러 판사님, 재판연구관님, 그리고 비서관님, 실무관님, 김정은씨, 이주화씨를 비롯한 직원 여러분에게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저는 행운이었고, 또한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아울러, 그저 저를 믿고 응원해 준 제 아내 김문경씨와 두 아들, 형제자매와 가족, 친구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합니다. 이제 저는 법복을 벗으면서,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저의 생각 한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저의 퇴임 일자는 이미 6년 전에 정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후임 대법관 임명을 위한 절차가 마무리되기는커녕 오늘에서야 인사청문 절차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퇴임하게 된 것을 무엇보다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후임 대법관이 임명되기를 희망하며, 대법관 인사청문제도의 개선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누구나 사법신뢰의 위기, 법치주의의 위기를 말합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를 뜻하고, 사법은 법을 발견하고 선언하는 것을 본질로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무엇이 법인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면 그에 따라 법적 분쟁이 종결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여러 번에 걸쳐 합헌이라고 선언하였던 법률을 헌법이 바뀐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위헌이라고 합니다. 또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에서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위반되지 않는지를 선언하여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않고 법률의 해석론을 전개하여 어느 법률을 이렇게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법원은 그런 법률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하지도 못하면서, 이상한 논리로, 끊임없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 재판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려고 합니다.

이럴진대 무엇이 법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헌법이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선고된들 그것으로 법적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당에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는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최근에 사회지도자랄 수 있는 어느 저명한 분조차 자신이 당사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법원에서 심리되고 있는 특정사건에 관하여,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대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하여 재판이 확정되더라도, 그에 만족하거나 승복하지 않은 채 다른 불복의 길을 찾으려는 심사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법의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분쟁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나는 걸까요? 그로 말미암아 증가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만 하는 걸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차라리 헌법재판소가 가지는 여러 권한 중 법률의 위헌 여부의 심사권과 법원의 법률해석권한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시켜서 관장하게 하는 편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더 유익하고,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 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음으로는 사회의 지도자에 해당하는 분들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행태도 지양되어야만 합니다.

 

재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재판은 과거의 사실관계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권리의무가 어떤 것인지를 선언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법률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정한 주의, 주장이나 이념 같은 것은 법관의 관심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법관의 관심대상은 우리 헌법이 선언하는 가치와 질서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어떻게 고양시키고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에 있을 뿐입니다.

최근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대폭 확대되었습니다만, 법관은 모든 재판에 있어 항상 배심원단과 같은 일반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고 상정한 가운데 절차를 진행하고 종국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재판절차의 공정성과 결론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며, 사법에 있어서 주권재민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며, 국민으로부터 재판의 신뢰, 사법의 신뢰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법의 밝은 미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실력과 인품은 물론, 모든 면에서 출중하신 대법원장님과 여러 대법관님, 그리고 정의감과 열정에 불타는 법관 여러분과 직원 여러분이 법원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의 건승을 축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2. 7. 10.

 

대 법 관 김 능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