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60주년 기념식사

2010.02.16 14:34

범의거사 조회 수:14804


  9월 26일은 우리나라 사법부 출범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48. 8. 15.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법원조직법이 만들어져 공포된 날이 1948. 9. 26. 이다. 60주년 기념식이 대법원 강당에서 열렸다. 아래는 그 기념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님이 하신 기념사의 전문이다.    

                                                    *    *    *

   대한민국 사법부가 출범한 지 60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명박 대통령님을 비롯하여 김형오 국회의장님, 이강국 헌법재판소장님, 고현철 중앙선거위원장님 등 내외 귀빈 여러분을 모시고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귀중한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 근대 사법제도는 1895년 재판소구성법이 공포,시행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주의 시혜나 식민통치의 도구가 아니면서, 행정권이나 입법권으로부터 독립한, 진정한 의미의 근대사법제도는 제헌 헌법에 따라 우리 법원이 새롭게 구성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지난 60년간 우리 사법부는 눈부시게 발전하여 왔습니다. 출범 직후 골육상쟁의 내전으로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입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2,350여 명의 법관과 11,400여 명의 직원으로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인적 기반을 갖추었으며, 사법시설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현대적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근래에는 법원을 이용하는 국민의 편의를 증진하고 재판의 질적 개선을 뒷받침하기 위한 시설의 개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원은 1962년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판결문과 재판 서류의 한글화를 단행하였습니다. 업무 처리에 한글타자기를 도입하여 한자와 일본어의 영향이 상존하던 우리의 문자생활이 자주화되고 현대화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법정보화 면에서 이룬 성과 또한 적지 않습니다. 등기는 전 과정을 전산화하였고, 독촉․송달 업무의 전산화에도 상당한 진전을 보았습니다. 사건관계인은 자기 사건의 진행상황을 인터넷으로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최신 판례와 법령도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선진 각국에서도 우리의 사법정보화를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법의 국제화와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선진 사법제도를 수입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주요 국가의 사법부와 대등한 자격에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외국 법관의 초청연수 및 교육프로그램의 제공, 시설원조를 통하여 우리의 사법제도와 사법운영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체제전환국에 전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법관이 국제형사재판기관의 재판관으로 진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성과는 국민의 폭넓은 지원 아래 사법부 구성원들이 뜻과 힘을 모아 정진한 결과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의 배려에 감사드리며, 역대 대법원장님 및 사법부 구성원의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특히 오늘 재판 서류의 한글화, 법조 인재의 양성, 사법의 정보화와 세계화에 공헌한 분들에게 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수훈자 개개인의 영광을 넘어서 사법부로서도 크나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법부는 건국 이후 온갖 역경 속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을 확보하고 법의 지배를 확립하는 데 힘써 왔습니다. 그 결과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난 60년의 자취를 돌아보면 자랑할 만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러한 불행한 과거가 사법부의 권위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적지 않은 손상을 주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을 드린 데 대하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구체적 작업은 사법 정의를 회복하는 큰 틀 안에서,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 안정성 같은 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춰가며 추진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재심절차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사법부는 재심을 통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꾸준히 바로잡아 왔습니다. 이미 민족일보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사건 등 상당수 사건에 대하여 지난날의 과오를 시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재심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와 별도로 대법원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각종 시국 사건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왔습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사법부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조만간 발간될 사법부 역사자료에 포함시켜 국민에게 보고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법부는 지난 60년을 거울삼아 새로운 60년 선진 사법의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출범의 참된 의미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기초한 사법제도를 마련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사법권은 국민이 맡긴 것이며 국민의 신뢰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기본 임무는 재판이며, 국민의 신뢰는 재판다운 재판을 함으로써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재판다운 재판은 법정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하여 국민의 소리를 성의를 다하여 듣는 데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서면 위주의 재판관행에서 벗어나 공개 법정에서 말로 하는 심리와 증거조사를 통하여 사건의 실상을 밝히려는 새로운 시도에 전국의 법관과 직원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만, 이러한 노력이 이어지면 재판 당사자가 자기 사건의 경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재판 결과를 납득하는, 더욱 바람직한 재판의 모습을 보여드릴 날이 머지않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형사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사법절차에 주권자인 국민의 건전한 양식과 감각이 반영되어 국민참여재판이 조기에 정착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누구나 법률전문가의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법부는 사회적 소외계층이 사법구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소송구조 및 국선변호제도의 수혜 범위 확대와 질적 개선에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 밖에도 민원절차 합리화와 서비스 정신 함양을 통하여 국민이 자기 집처럼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친근한 법원, 원하는 정보와 편의를 쉽게 제공받을 수 있는 법원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이제껏 이룬 정보화의 성과를 기초로 전자소송을 더욱 고도화함으로써 국민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자기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미래형 법원을 가꾸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 모두는 국민과 더 잘 소통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섬김으로써 국민이 믿고 의지하는 사법부를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과거의 불행한 일들을 교훈 삼아 법관의 양심과 사법의 독립을 굳게 지켜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사법부의 이런 노력을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뜻 깊은 행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법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안정된 사회가 되고 우리나라가 명실 공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는 날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사법부 구성원 모두 제 몫을 다할 것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  9.  26.

                                                         대법원장    이  용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