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이윤기 주례사)

 

                                                    눈 속에 핀 매화 한 송이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이라는 입동이 진작 지나고 이제 이틀 후면 소설입니다. 예년 같으면 눈도 내리고 본격적으로 겨울로 접어들 때가 되었건만, 아직은 이렇다 할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포근하고 상쾌한 주말입니다.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주인공이 뿜어내는 사랑의 열기에 동장군이 겁을 먹고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좋은 날씨에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주말의 바쁜 시간임에도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이윤기군은,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함과 동시에 영국 Northumbria 대학의 공동학위과정을 이수한 후,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최고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에서 Scheduling System Engineer로 일하고 있는 산업역군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용세희양은 신랑 이윤기군과 마찬가지로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진로를 바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의 영어교사양성과정을 거쳐 현재 정철어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훌륭한 재원입니다.


  신랑 이윤기군과 신부 용세희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7년 전인 2003년이었습니다. 당시 신부 용세희양은 서울산업대학교 2학년인 반면, 신랑 이윤기군은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신부가 선배이고 신랑은 그 후배인 셈입니다.


  당시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선배 용세희양의 눈에 띈 후배 이윤기군의 얼굴에는 신비한 후광이 서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도 그 후광이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때부터 용세희양의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용세희양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이윤기군은 재학 중에 군대를 갔고, 강원도 전방의 산골에서 병영생활을 하던 2006년 1월의 첫째 주말이 되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한껏 운치를 뽐내건만,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었던 이윤기상병이 부대원들과 함께 PX에서 불어터진 라면그릇에 젓가락을 담근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부대 면회실에 한 마리 학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타났습니다. 그 여인은 하얀 눈 속에 핀 한 떨기 매화꽃 그 자체였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란 이윤기상병 앞에 나타난 이 여인, 다름 아닌 바로 용세희양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통닭과 피자를 들고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 때의 광경을 과연 어떻게 표현하여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면회시간은 고작 30분, 그렇지만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만남이 바로 오늘의 축복받는 자리로 연결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신부 용세희양에게 물었습니다. 이윤기군의 어떤 점이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하게 되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부 용세희양은 이윤기군의 착한 마음과 차분한 성격이 무엇보다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동안 어릴 적부터 보아온 신랑 이윤기군의 모습은 “착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이윤기군에서 그런 착한 모습을 발견하고, 첫눈에 반한 신부 용세희양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지혜를 갖추었기에 신부 용세희양의 아름다운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착한 남자의 표상 이윤기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상징 용세희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커다란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컴퓨터의 전산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영어의 문장을 분석하듯, 그렇게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시구(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옛말에 “꽃은 벌을 부르고 벌은 꽃향기를 좋아하니, 꽃과 벌은 서로 도우며 영원히 상생한다(花召群峰 蜂樂花香, 花峰相助 終古不變)”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 꽃과 벌처럼 살기 바랍니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에는 서로 공부하느라, 또 갓 취업한 직장에 충실하느라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 사랑스런 사위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 11. 20.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