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


                                                          퇴   임   사


저는 오늘 6년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공직자로서 마지막 정열을 바쳐 일했던 정든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6년은 정말로 무거운 짐을 지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무척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만, 그러나 보람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막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서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동안 대과 없이 임무를 마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신 대법원장님과 동료 대법관님들,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을 마다하지 않으신 연구관들과 직원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에 힘입어 우리 사법부도 때로는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하였으나 우리 모두의 부단한 노력으로 공정한 재판을 위한 토대인 사법권위 독립을 어느정도 성취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는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사회 일각에서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하려는 언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말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사법질서에 대한 불신입니다.  대부분의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런 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들이 아직도 이런 말들을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법조인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할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또 한편 우려스러운 것은, 근간 우리사회에 심화되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분열과 대립 양상이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또 있어야 마땅한 다양한 의견의 표출을 넘어 자기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법분야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법의 잣대로 재단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조정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들 조차도 사법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보수니 진보니, 걸림돌이니 디딤돌이니 하면서 승복하지 않으려 하고, 나아가 건전한 비판의 정도를 넘는 원색적이고 과격한 언동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높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만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이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한 자세로 묵묵히 법과 양심에 따라 이 나라의 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존중되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생각이 시끄러운 소수의 강경한 목소리에 묻혀서는 진정한 사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보수의 편도 아니고, 진보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법과 정의와 양심의 편일뿐입니다.

  돌이켜보니 6년이란 참으로 어렵고 긴 세월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법부 발전에 디딤돌이될 작은 돌 하나 더 놓지 못하고 떠나는것 같아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여러분 곁을 떠나려 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