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안

   취임사  


   존경하는 여러 선배님과 후배, 동료인 법관과 직원 여러분,

   우리는 어느 대법관 개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법원의 새로운 구성과 출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참석해 주신 여러분 앞에서, 앞으로 6년 동안 대법관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고, 부족하나마 그 지향하는 바를 제시할 의무가 있음을 무겁게 받아 들입니다.

  저는 오늘 대법관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민과 국가 사이의 약속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 중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한 국가의 약속에 유념하고자 합니다.

  저는 대법관으로의 부름을 받고 직전 근무지인 광주를 떠나오면서, 그 곳 5.18 묘역에 머물러 있는 137인의 풀지 못한 한이 끝내 좌절하지 않고 의미 있는 미래의 역사가 되도록, 법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재판이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관 또한 청렴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눈에 청렴하게 비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공직자에게 사사로운 의리나 지키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에 공감하면서, 법원 구성원인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의리가 아니라 정의임을 유념하겠습니다.

  나아가 재판에 임하는 법관으로서는 불편부당하다는 신뢰가 생명이라고 생각되므로, 저 역시 저를 대법관 후보로 추천한 이른바 보수단체나 진보단체의 편파적 신뢰나 일방적 기대를 망설임 없이 털어버리고 기꺼이 배반하면서, 오직 국민들이 갈구하는 정의의 발견과 선언에만 전념하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고독한 성에 머무르거나 공허한 정의를 선언하는 대법관이 되지도 않겠습니다.
  다양한 법원 밖 비난의 목소리까지도 두려움 없이 두루 경청하여서, 높은 담을 넘어 들어오는 큰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겠습니다.

  작금의 현안들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일에도 유념하겠습니다.
  구두변론,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형성된 사실심의 심증과 사실인정에 대하여, 기록에 편철된 서면의 검토만으로 사실심의 조처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일에 시간을 쪼개지 않으려 합니다.
  대법원이 사실심 법원을 신뢰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이를 신뢰할 리 없습니다. 대법원이 사실심 법관에게 주는 신뢰는 남상소를 줄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사실심의 심리에 더욱 진지하게 임하도록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법원 내 소수자 내지는 자유주의자의 역할도 감당하고자 합니다.
  대법관은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동료 대법관과 대법원장에게까지도, 법원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법원 밖 정당한 목소리까지 가감 없이 전달하는 일에 용기를 내겠습니다.

  저는 우리 법원 또한 지금까지와 같이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보다는, 고치고 바꾸어서 더 나아질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다면 변화할 수 없으며, 모두가 그 절박함을 깨닫게 되는 때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저는 우리 법원의 변화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관행을 깨치며, 배타적. 폐쇄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개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변화란 결국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각성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한, 5년 후 10년 후의 법원은 분명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꿈꾸어 봅니다.

  이제 저의 개인적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대할 때는 오지 않던 기회가, 여러 번 스쳐 지나가기에 그냥 무심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때에야 문득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조금만 더 허락해 주신다면, 남도시인 문정희님의 시 한편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써 저의 소회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 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이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시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신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 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 <먼  길>

  끝으로, 좋은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함께 소중히 여겨 격려하고 희생을 감수해 준 가족들,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누구보다 좋아하셨을 아버지께 감사 드리고, 어린 제자를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셨으나 결국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저의 수많은 은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  7.   11.

                                                        대법관  전  수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