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지 말기를....(어느 주례사)

2010.02.16 11:28

범의거사 조회 수:11402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이자, 2000년 들어 첫 정월대보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동안 맹위를 떨치던 강추위도 물러가고, 오늘은 언제 그랬냐 싶게 참으로 날씨가 화창합니다. 이는 아마도 天地神明께서도 오늘의 이 자리를 축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야흐로 봄의 문턱에 선 이 화창한 주말에, 여러 가지로 바쁘실 터인데도 불구하고 신랑 김태건군과 신부 박경희양의 화촉을 축하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김태건군과 신부 박경희양은 두 사람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법조인들입니다. 이 두 사람은 앞으로 1년 후면 판사 또는 변호사로서 사회에 진출하여 그 역량을 뽑낼 훌륭한 인재들입니다.

신랑, 신부 모두가 이처럼 훌륭하고, 더구나 사법연수원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공부한 사이이기에, 두 사람이야말로 한 쌍의 원앙새처럼 아주 잘 어울리는 천생배필이라 하겠습니다. 때문에 누가 무어라 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아주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이렇게 두 사람을 믿는 가운데서도 사법연수원에서 두 사람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두 사람이 서로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깨가 쏟아지고 장미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깨가 쏟아지는 때는 신혼 초의 짧은 기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살아가노라면 수시로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되고, 상대방에 대하여 짜증을 낼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신혼 때의 初心으로 돌아가, 그 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도록 하십시오. 어려움을 극복하는 묘약에 사랑만큼 더 좋은 약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다음에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고, 때로는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 두 사람이 모두 법조인이기에 두 사람의 법조 선배로서 두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법조인은 전후사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따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법조인으로 살다 보면 이러한 자세가 저절로 몸에 배게 되며, 이는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만큼은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 넷, 또는 열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따지면 절대 안 됩니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조건 이해하십시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제가 이 자리에서 이제까지 한 말은 사실 바로 이 따지지 말라는 말 한 마디에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지지 않아야 미움 대신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따지지 않아야 홀대 대신 공경할 수 있고, 따지지 않아야 서로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비록 두 사람 다 법조인이기는 하지만, 부부생활에서만큼은 따지지 말라는 저의 말을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신랑 김태건군과 신부 박경희양이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에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옆에서 때로는 격려를 하시고 때로는 채찍질을 하시면서 두 젊은이가 올바른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내빈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신랑, 신부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 2. 20.

                                주례 민 일 영



        


(c) 2000, Chollian In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