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찬 서리도 있다
2021.04.03 22:58
亂條猶未變初黃(난조유미변초황)
倚得東風勢便狂(의득동풍세편광)
解把飛花蒙日月(해파비화몽일월)
不知天地有淸霜(부지천지유청상)
어지럽게 늘어진 버들가지 누레지기 전에
봄바람을 맞아 기세를 한껏 떨치니
버들솜 흩날리며 해와 달을 덮는구나
저런, 세상에는 찬 서리도 있다는 걸 모르네그려
증공(曾鞏. 1019∼1083)이 지은 詠柳(영류. 버들을 읊다)라는 시이다.
냇가에 늘어선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버들눈이 노르스레 움튼다. 그리고 연녹색 잎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진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 것이다.
거기에 동풍이 불어오면 버들솜이 흩날린다.
바람이 셀수록 버들솜은 더욱 기세를 부려 마침내 해와 달을 가릴 정도가 된다. 온천지가 마치 버들솜의 세상이 된 듯하다.
그렇지만, 자연의 섭리가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시간이 흐르면 찬 서리가 내리고 기세 좋던 버드나무도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물론 그 기세 좋던 버들솜은 천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버드나무도 버들솜도, 아니 봄바람마저도 그 이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오늘 아침 일찍 사전투표를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증공(曾鞏)의 위 시를 떠올렸다.
권세를 뒷배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세도를 부리는 모리배들 위로 찬 서리의 존재를 모르는 버드나무와 버들솜의 모습이 겹쳐진다.
내일은 부활절이자 청명(淸明)이다.
그 옛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이 나라가 맑고 밝은 세상으로 부활하려나.
이를 위해 대지를 적시려는 걸까, 밤이 깊도록 봄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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