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먼저 아우 먼저

2010.02.16 13:24

범의거사 조회 수:15862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이 가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 신부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소띠 동갑내기로 태어나 모두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두 사람 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불타는 향학열에 부모님 곁을 떠나, 개나리 봇짐을 짊어진 채 서울로 올라갔고, 물 설고 낯선 타향에서 외로움을 달래가며 형설의 공을 쌓아, 마침내 신랑 김도균군은 우리 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신부 장진영양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참으로 의지가 굳센 자랑스런 젊은이들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신랑 김도균군은 대학 졸업 후 제39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예비법조인으로서의 교육을 마치고, 현재는 국방부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영재입니다. 그리고 신부 장진영양 또한 신랑 김도균군이 사법연수원을 다니고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는 동안에, 이에 뒤질세라 행정고시에 도전하여, 마침내 며칠 후면 도착할 합격통지서를 기다리고 있는 재원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이면 신랑은 검사로, 신부는 행정부 사무관으로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굳이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두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1997년 11월 운명처럼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땐 두 사람 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 속에 소 닭 보듯 했지만, 그 해가 저물어가던 12월 31일,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짝을 정하려고 두 번째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호감을 나타냈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엔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아니라, 이미 진작에 정해져 있던 운명의 순서에 따랐을 뿐이 아닌가 합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나와 1분이라도 늦으면 화내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5분 정도는 늘 늦는 여자.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추진력이 강한 남자, 그런 그가 보기에는 메뉴 하나 고르는데도 한참 시간이 걸리고 옷 하나 사려면 온갖 매장을 다 돌아다니는 비능률적인 여자.
웬만하면 참고 지나가는 여자, 그런 그녀가 보기에는 자기 중심적이고 성격 급한 남자.
  처음엔 그 자잘한 차이에 서로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한 달이 지나고,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바로 그 남자인 신랑 김도균군은,
  화낸 다음에는 항상 먼저 손을 내미는 예의바른 남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소한만큼만 말하고 대신 최대한을 행동으로 보여 주는 성실한 남자.
  영화관의 많은 인파들 속에서 애인의 엄청난 구토물을 묵묵히 치울 줄 아는 착한 남자,
  많은 마담뚜들의 전화를 받았지만 한번도 한눈 안 판 외곬수 남자,
  애인이 고시공부를 시작하면 사귀던 사람도 떠난다는데, 멀쩡한 애인을 새삼스레 고시생으로 만들어 사서 고생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옆에서 용기를 불어 넣어준 순정파 남자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5년 전의 바로 그 여자인 신부 장진영양은,
  신랑 김도균군과 매일같이 만남을 지속하면서, 초반기의 지고지순함을 그대로 간직한 순수한 여자,
  이젠 약속시간에 일찍 나와 기다리기도 하는 센스 있는 여자,
  남자가 화낼 때는 한 템포 죽어주는 슬기로운 여자,
  두 템포 뒤엔 조용하지만, 가끔 눈물 등의 반격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끈기 있는 여자,
  가끔 나이를 잊은 엽기스런 애교로 남자에게 무섬증을 안겨주는 외경스런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인 신부 장진영양에게는 그 남자인 신랑 김도균군이, 그 남자인 신랑 김도균균에게는 그 여자인 신부 장진영양이 바로 서로에게 주어진 답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를 무려 5년, 마침내 바로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10년이나 되어야 강산이 변했던 그 옛날도 아니고, 몇 달만 지나도 미처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는 오늘날에, 5년씩이나 사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여 온 신랑 김도균군과 신부 장진영양에게, 우리는 뜨거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천생배필이라는 말이 바로 이 자리의 두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자리의 신랑 김도균군을 사법연수원에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에 신랑 김도균군이 자기가 결혼하면 저보고 주례를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겼었는데, 짧지 않은 세월이 흘러 그것이 현실화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랑 김도균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른바 똑똑한 사람들은 따지고 캐는 데도 능숙합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고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을 거닐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현실로 돌아온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식의 단독행위나, 마주 보고 달리는 계약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낳고 길러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신랑의 착함과 신부의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