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촌놈과 天上의 선녀

           

                                                 주  례  사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은 주례입니다.

  다른 해보다 다소 늦기는 하였으나,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어 가는 4월의 화창한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 신부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모두 이곳 진주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친 후, 향학열에 불타 부모님 곁을 떠나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갔고, 거기서 螢雪의 功을 쌓아 마침내 신랑 박재영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신부 정화경양은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참으로 의지의 젊은 한국인들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신랑 박재영군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서 예비법조인으로서의 교육을 훌륭히 마치고 현재는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보기 드문 영재입니다.

  이처럼 굳이 덧붙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한 두 사람은, 서울에서 힘든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들이 계신 고향인 이곳 진주를 늘 생각하며 틈나는 대로 찾아왔고, 지난 해 가을 이곳 진양호반에 있는 “빨레트” 레스토랑에서 운명처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서로 "그래, 바로 이 사람이다. 니 모하다 이제야 나타났노?" 하며 사랑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고, 하얀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그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비록 첫 만남으로부터 7개월만에 오늘의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그 7개월은 남들의 7년에 버금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만나던 날 삼천포와 고성에서 데이트를 한 후 헤어질 무렵에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 비를 피하라고 신부 정화경양이 신랑 박재영군에게 건네준 우산은 두 사람의 장래를 결정지어 준 造物主의 선물이었습니다. 천생연분이란 바로 이런 사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신부 정화경양은 신랑 박재영군이 지닌 법조인답지 않은 수수함과 적당한 자신감, 그리고 동향인으로서의 동질감 비슷한 투박함이 마음에 들었고, 신랑 박재영군은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신부 정화경양의 고운 심성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촌놈 박재영과 天上의 선녀 정화경이 서로 상대방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신랑 박재영군에게 신부가 미스 경남 출신일 정도로 群鷄一鶴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데 그 건 마음에 들지 않았냐고 물으니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새삼 그런 말은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한 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의 신랑 박재영군을 사법연수원에서 1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제가 淺學非才하여 훈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랑 박재영군이 워낙 성실하게 제 가르침에 따랐던지라 주위의 동료들로부터 “영감”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王黨派라는 놀림까지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당시 신랑 박재영군이 자기가 훗날 결혼하면 저보고 주례를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겼었는데, 5년의 세월이 흘러 그것이 현실화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니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그 뿌듯한 감회를 가슴에 되새기며, 신랑 박재영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을 분석하듯, 문학작품을 고르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부탁하고 싶습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심성이 고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더욱 착하고 더욱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의 단독행위도 아니고, 마주보고 대립하는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서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연애기간 동안에 이미 많은여행을 하였겠지만, 그것을 결혼 후에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 4. 17.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