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전어 한 상자

            

                                      주  례  사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은 주례입니다.

  다른 해보다 다소 늦기는 하였으나,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어 가는 4월의 화창한 주말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 신부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전보성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육군법무관을 거쳐 2003. 4. 1.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후 현재는 서울가정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인재이고,
  신부 정은진양은 연세대학교에서 의류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후 CJ홈쇼핑을 거쳐 현재는 신세계인터내셔널에서 구매담당 MD(상품기획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에 다닐 때 스키부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여 일류선수급의 스키실력을 갖춘 문무겸전의 재원입니다.  

  제가 주례사의 첫마디로 지금이 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한 이유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시기적으로 결혼하기에 참으로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가 바로 화창한 봄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랑 전보성군과 신부 정은진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정확히 2년 전인 2003. 3. 29.의 일입니다. 당시 이 자리에 하객으로 참석하고 있는 문준섭군과 그의 여자친구의 소개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이 오늘 이처럼 결혼에 골인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소개를 하는 사람도, 소개를 받는 사람도 모두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신부 정은진양이 입었던 옷을 기억 못하는 신랑 전보성군은 데이트 기간 내내 그 일로 시달림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만, 마음씨 고운 신부가 오늘 이후로는 용서를 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이렇듯 무덤덤하기 짝이 없던 첫 만남이었지만, 그로부터 100일이 지나는 동안, 상황이 급격하게 변해 갔습니다. 법무관에서 제대하여 갓 판사로 임관한 신랑 전보성군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신출내기 MD가 된 신부 정은진양이나 모두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때였던 까닭에, 고작 주말에나 얼굴을 잠깐 한 번 볼 수 있었던 정도였지만, 청춘남녀의 내심으로 흐르는 사랑의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보다 6살이나 어린 신부 정은진양에게서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과 예의바름에 호감을 느끼던 신랑 전보성군은, 신부의 해맑은 웃음과 발랄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반하여 마침내 넋을 빼앗기기에 이르렀고,
  신부 정은진양은 나이답지 않은 젊은 사고와 세심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착한 신랑 전보성군의 듬직한 모습에 더하여 끊임없이 탐구하는 열성적 생활태도에 감명을 받아 24년간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만나서 100일이 지나도록 손 한 번 잡지 못했던 두 사람이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한강 둔치에서 처음으로 손을 잡던 순간, 번갯불처럼 덮친 사랑의 전기스파크로 두 사람은 그만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두 사람의 것으로 된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였던가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고속도로가 환하게 뚫리자, 두 사람의 애정나들이는 이때부터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까지 고작해야 시내에서 심야영화나 보았던 데서 벗어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찾은 곳은 충청남도의 미량포구였습니다.
  떨어지는 석양이 연출하는 선홍색 노을을 바라보던 순간, 신부 정은진양의 입에서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오빠, 이런 곳으로 데려와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그 순간 신랑 전보성군의 가슴 속은 희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온 전어 한 상자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장인, 장모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초의 뇌물이 되었고, 나중에 벌어진 ‘연대 서문(西門) 심야 음주사건’을 계기로 신랑 전보성군은 장모님의 신뢰를 확실하게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세상이 좁다 하고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는데, 특히 두 사람 모두 식도락을 즐기는 터라, 임진강의 황복, 월곶포구의 쭈꾸미, 수덕사의 더덕구이, 서해안의 생굴 등이 주된 사냥감이 되었고, 이동 양념갈비의 감칠맛은 신부 정은진양으로 하여금 갈비집을 차리는 꿈까지 꾸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미확인 상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후에는 전국의 맛있는 먹거리들이 양가부모님께도 전해질 것으로 믿으며, 혹시 어쩌닾 남는 게 있으면 이 사람에게도 한 몫 돌아오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 자리의 신랑 전보성군을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에 신랑 전보성군이 자기가 훗날 결혼하면 저보고 주례를 맡아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여겼었는데, 5년의 세월이 흘러 그것이 현실화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뿌듯한 감회를 가슴에 되새기며, 신랑 전보성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을 분석하듯, 구매상품을 고르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부탁하고 싶습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착하고 슬기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더욱 착하고 더욱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의 단독행위도 아니고, 마주보고 대립하는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서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연애기간 동안에 이미 많은여행을 하였겠지만, 그것을 결혼 후에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 4. 16.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