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의 된장찌개(어느 봄날의 주례사)

2010.02.16 13:17

범의거사 조회 수:13682

  방금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은 주례입니다.

  먼저, 오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와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4월의 무르익은 봄날에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윤웅기군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년 간의 사법연수원 교육을 마친 후, 현재 국방부 정책기획국에서 군사조약 담당 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인재이고,
  신부 이소영양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온미디어라는 케이블방송사의 재무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원입니다.

  제가 주례사의 첫마디로 지금이 4월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한 이유는, 4월이 시기적으로 결혼하기에 참으로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가 바로 4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7년 전인 1995년의 4월에, 밤낮으로 고시공부하는 학생 답지 않게 늘 미소를 머금는 앳된 모습의 미소년과 여드름이 많은 얼굴에 청바지를 입고 청자켓을 걸친 털털한 소녀가 처음으로 상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두 사람이 사랑의 불꽃을 태우기를 무려 7년, 미소를 머금던 미소년의 얼굴에서는 삶의 연륜이 배어나고, 청바지를 즐겨 입던 눈이 큰 그 소녀는 눈부시게 화사하면서도 성숙한 여인이 되어, 마침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0년이나 되어야 강산이 변했던 그 옛날도 아니고, 몇 달만 지나도 미처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는 오늘날에, 7년씩이나 사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여 온 신랑 윤웅기군과 신부 이소영양에게 우리는 뜨거운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만난 지 7년 만에 치러지는 두 사람의 오늘 이 결혼식은, 말 그대로 '인간 승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굳이 음식에 비유한다면, 냄비에 끓인 라면 맛이 아니라 뚝배기에 끓인 된장찌개 맛이 아닐까 합니다.

  신랑 윤웅기군과 신부 이소영양이 지내온 지난 7년, 깨가 쏟아지고 웃음이 넘쳤던 悅樂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신부 이소영양은 어머님을 여읜 슬픔을 이겨내야 했고, 신랑 윤웅기군은 사법고시에 낙방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힘들었던 시절, 두 사람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서로의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신부 이소영양은, 자신의 공인회계사시험 준비는 뒤로 미룬 채, 날마다 신랑 윤웅기군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격려와 뒷바라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랑 윤웅기군이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호사다마랄까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을 때, 병실에서 밤을 새우며 대소변을 받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신부 이소영양에게서 현모양처의 전형을 보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랑 윤웅기군은 어떨까요? 신랑 역시 신부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전국을 휩쓴 독감에 신부 이소영양이 몸져누웠을 때, 신랑 윤웅기군은 시장에서 파와 무를 직접 사다가 달인 물을 들고 신부 이소영양의 집으로 달려갔고, 그것도 모자라 다음 날에는 도시락과 반찬을 싸들고 가서 간호를 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는, 그 많은 술자리 모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최강의 사유가 되는 "여자친구의 항변"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한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흘린 이러한 땀과 눈물, 그리고 그것이 아롱져진 위대한 사랑의 결실이 바로 오늘 이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내빈 여러분! 이만하면 천생배필이라는 말이 바로 이 자리의 두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두 사람을 향하여 크게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의 신랑, 신부는 이처럼 7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의 불꽃을 태우고,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온 사이이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신랑 윤웅기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고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속을 거닐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현실로 돌아온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로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식의 단독행위나, 마주 보고 달리는 계약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낳고 길러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 자체를 커다란 보람으로 여기시고,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신랑의 착함과 신부의 지혜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 4. 21.

                                 주례      閔 日 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