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그리고.....

2010.02.16 11:57

전보성 조회 수:12231

<담>은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아니 자우림 1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꾸준히 이야기해 온 주제인, '온전한 의사소통의 불능'에 관한 노래입니다.
  같은 모국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인지, 저는 종종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자기 방어와 자존심, 상대에 대한 배려의 부족, 이기심, 인간관계에의 무성의, 그리고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부족 등으로 우리는 서로의 언어와 몸짓을 종종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실제의 연애와 인간 관계에서 제가 느꼈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얘기해 보고 싶어서 쓴 곡이 바로 이 노래, <담>입니다.

                  * * * * *

  프리챌 게시판 광고로도 나오는 김윤아 첫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섀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에 수록되어 있는 김윤아의 에세이 중 일부입니다. 음악보다는 웬지 그녀의 에세이집이 눈에 들어 구입하였습니다.
  문득 위 글을 이곳에 전재하고픈 생각이 든 것은, 이 세상의 온갖 편견과 오해 그리고 고통과 불행은 김윤아도 밝히고 있듯이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누군가가 제게 던진다면 저는 '타인과의 유대'를 통하여 존재의 의의를 찾겠노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타인과 유대를 가질 수가 있겠고 나아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의 벽을 만들고 그 벽을 넘어 상대가 넘어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벽을 넘어가는 것 모두를 허용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 속에 안주하며 서글프고 덧없는 몸부림과 넋두리만 늘어놓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는지?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김윤아는 혼자만의 성을 쌓고 한 가지에 탐닉하고 중독되어 살아가는 자신의 체험을 고백합니다. 이 대목에서 김윤아가 몹시 부러워지더군요. 그녀는 하늘이 두쪽나도 이것 없이는 살지 못하는, 좋아하는 일(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과연 자다가도 벌떡 깰 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기나 한 건가? 이런 질문에 부정적인 결론이 나오자 괜시리 서글픈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이건 간에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위해서 살아갈 만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어쨌건 제 개인적으로는 약간은 싸이코적인, 부연하자면 그녀의 생활방식이 현 사회제도와는 다소 어울리기 힘든 신예 밴드의 리드싱어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김윤아도 나와 생각이 공통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조금 기뻤다고 해야 하나요?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분명히 사는 기쁨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 * * * *

그리고 아래 푼글은,

쓰마치엔(사마천)이 사기를 통해서 세상에 도대체 정의란 것이 있는지 비분강개하며 쓴 글입니다. 아주 예전에 쓰여진 글이긴 하지만 사마천이 피를 토하며 열변하는 모습을 마치 옆에서 보는 듯 실감납니다. 사마천의 생존 당시인 2,00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 보아도 사태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군요.  

  혹자는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해서 항상 착한 사람을 돕는다"라고 하였다.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처럼 인덕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였음에도 그들은 굶어서 죽었다.
  어디 그뿐이랴! 70문도(七十門徒, 공자의 3,000 제자 중 현인이 약 70명이었는데 이를 지칭함) 중에서 공자는 오직 안연(顔淵, 공자의 수제자) 하나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안연도 항상 가난해서 조강(糟糠)같은 거친 음식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상해 준다고 한다면 어째서 이럴 수가 있는가?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살을 회쳐서 먹으며 포악무도한 짓을 함부로 하며 수천명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끝내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한 덕행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이런 것들은 다 크고 뚜렷한 사례이다.
  또 이를테면 근자에 이르러서도 조행(操行)이 정도(正道)를 벗어나고, 오로지 사람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안일향락하고 부귀함이 여러 대에 그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또 갈 만한 곳을 골라서 가고 말할 만한 때를 기다려 말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으며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분발해서 하지 않으면서도 재화를 당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은 어찌 된 것인가? 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의혹스러움을 느낀다.
  만약에 이런 것이 이른바 천도라고 한다면 그 천도는 과연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

司馬遷, [史記], (伯夷列傳)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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