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판사님의 퇴직의 변

2010.02.16 11:38

권광중 조회 수:14868

아래의 글은 이해완 판사님(www.sol-law.net의 주인)이 퇴직에 즈음하여 법원 전체 전자 게시판에 올린 글로서 이해완 판사님으로부터 e-mail로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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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제 지난 12년 5개월간 몸담아온 사랑하는 법원을 떠나 새로운 미지의 곳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꿈이었고, 젊은 날의 치열한 목표였으며, 장성한 다음에는 저의 삶의 모든 의미와 꿈과 보람이 엮어진 아늑한 보금자리였던 법원을 이렇게 일찍 떠나게 될 줄은 저도 정녕 몰랐습니다.
오늘 인사발령문의 퇴직자 명단에 올라 있는 저의 이름을 보면서 저의 자원에 의한 것임에도 깊은 아쉬움과 미련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고 생각하니, 새삼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슴 가득 밀려옵니다.
인사발령문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하는 분들과의 통화가 오전 내내 이어지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부족하고 못난 저를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 많은 선배, 동료, 후배 법관들의 곁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게 된 것이 잘 실감나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법원은 저에게 너무나도 넉넉한 품이었습니다.
제가 불성실과 무능으로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관용으로 품어 주었습니다.
힘든 격무 속에서도 늘 깊은 지혜와 사랑의 마음으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시는 여러 법원가족들로부터 많은 귀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모신 여러 훌륭하신 부장님들의 귀한 가르침은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법원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되돌려 드리지 못하고 "좋은 판사"가 되리라는 자신과의 약속도 이루지 못하고 이른 시기에 법원을 떠나는 저에게 실망과 분노 대신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선배님들과 후배님들께 무엇으로 보답해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95년 2월에 창원지방법원을 떠날 때 회식자리에서 제가 사랑하는 어느 선배님께서 저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하신 상태에서 "이 판사님, 지켜볼 겁니다"라고 하셨던 것이 지금 몹시 마음에 걸립니다. 못난 후배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마음에 지워진 큰 사랑의 빚을 다 갚을 순 없겠지만 한 때 이 곳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작은 보답이 되리라 자위하며, 저의 새로운 인생의 푯대를 가다듬어 봅니다.

제가 가는 길은 돈을 벌기 위한 길은 아니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법의 정신을 아로새겨 보고자 하는 길입니다.
(우선은 변호사 일을 하지 않고 인터넷 법률정보화 사업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많은 서민들이 쉽게 법을 이해하고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양질의 법률콘텐츠를 개발하여 법률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벤처기업들도 온라인을 통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아 국제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제신인도 제고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그 밖에도 인터넷이라는 무한공간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많은 선한 일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법관직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영예롭게 생각해 왔고, 아직도 법원과 선후배 동료 법관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조금도 식지 않은 상태에서 만용과 같은 결단을 내린 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마음이 몹시 허전해 질 무렵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곤 하였습니다.
나는 법원을 떠나지만 법관으로서 품었던 이상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혼탁한 세상의 한복판에서 수익성을 논하는 기업에 몸담으려 하기에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상의 푸른 별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려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버는 수입 중에 과다한 부분이 있으면 사회를 위해 되돌리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우선은 저의 수입 중에서 작은 부분이라도 떼서 남북한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가져봅니다.

아무쪼록 제가 세상에서 타락하지 아니하고 바른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후에도 많은 충고와 관심,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첨부하는 파일은 제가 솔 홈페이지에 올려진 어떤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후배법관들에게 작은 참고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외람되지만 이곳에 남겨 둡니다.

법원 가족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
늘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이해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