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 (속, 어느 주례사)

2010.02.16 11:32

범의거사 조회 수:11746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은 1년 열두 달 중 나머지 열한 달을 이 달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다는 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 바야흐로 신록이 우거져 가는 이 5월의 화창한 주말에, 여러 가지로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신랑 전성우군과 신부 김선희양의 화촉을 축하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전성우군은 대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신부 김선희양은 충주여자고등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한 영재들입니다. 특히 신랑 전성우군은 대학 졸업 후 제40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법조인입니다.

제가 주례사의 첫마디로 지금이 5월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한 이유는, 5월이 시기적으로 가장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가 바로 5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바로 11년 전인 1989년의 5월에,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서울대학교의 교정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정확히 11년 동안 사랑의 꽃을 피워, 마침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문화발전의 속도가 느렸던 그 옛날에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미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는 오늘날에, 11년씩이나 사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여 온 신랑, 신부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빈 여러분, 다시 한번 크게 박수를 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일반화된 작금의 현실에서, 만난 지 11년만에 치러지는 두 사람의 오늘 이 결혼식은 말 그대로 '인간승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굳이 음식에 비유한다면, 냄비에 끓인 라면 맛이 아니라 뚝배기에 끓
인 된장찌개 맛이 아닐까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지내온 지난 11년, 깨가 쏟아지고 웃음이 넘쳤던 悅樂의 시절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신부 김선희양은 부모님을 모두 여의는 큰 슬픔을 겪어야 했고, 신랑 전성우군은 사법고시에 낙방하는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힘들었던 시절. 두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서로의 사랑이었습니다.
특히 신부 김선희양은, 1997년에 신랑 전성우군과 혼인신고를 하고도, 면사포를 쓰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뒤로 미룬 채, 학원강사를 하면서 신랑 전성우군의 사법고시 준비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습니다. 신부 김선희양의 이러한 땀과 눈물,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어린 딸 선화야말로, 신랑 전성우군으로 하여금 사법고시에 합격하게 한 원동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자리의 신랑, 신부는 이처럼 11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의 불꽃을 태우고,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온 사이이입니다. 때문에 누가 무어라 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이미 아주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꾸려 나왔고, 앞으로도 또한 그렇게 하여 갈 것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믿는 가운데서도 사법연수원에서 신랑 전성우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이제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이 서로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겠지만,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깨가 쏟아지고 장미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노라면 수시로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되고, 상대방에 대하여 짜증을 낼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지난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때의 初心으로 돌아가, 그 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도록 하십시오. 어려움을 극복하는 묘약에 사랑만큼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고, 때로는 어려워 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할 것을 거듭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십시오.

결혼은 일방통행식의 단독행위나, 마주 보고 달리는 계약이 아닙니다. 결혼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님이 두 사람을 낳고 길러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번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생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너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일심동체의 공동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결혼생활을 논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 넷, 또는 열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조건 이해하십시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신랑 전성우군과 신부 김선희양이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에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옆에서 때로는 격려를 하시고 때로는 채찍질을 하시면서 이 두 젊은이가 올바른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끝으로,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내빈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신랑, 신부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0. 5. 21.

                                주례 민 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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