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취독성(衆醉獨醒)
2016.06.16 22:52
지난 9일이 1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센 날이라는 단오(端午)였다.
고대 중국 초나라의 재상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난 후
비분강개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한 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이었고, 이 날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것이 단오의 유래라고 한다.
그가 지은 ‘어부사(漁父辭)’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가 들어 있다.
擧世皆濁我獨淸(거세개탁아독청)
衆人皆醉我獨醒(중인개취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하여도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취했어도 나 홀로 깨어 있네.
도도한 탁류가 흐르는 세상에 홀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려 했던 굴원은 결국 뜻을 펼치지 못하고 스스로 강물에 뛰어 들어 생을 마감하였다.
깨끗하고 고고했던 그였건만 어찌하여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였을까.
굴원은 위 글귀처럼 자기 혼자 깨끗하고 깨어 있으려 했기 때문에 벼슬길에서 쫓겨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고 스스로 진단하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水至淸則無魚(수지청즉무어)’라고 했던가,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게 이치이다.
몸을 숨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냥 혼탁한 시류에 휩쓸려 비몽사몽(非夢似夢)의 상태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어디에 머무르든 그곳의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기개가 더 요구되는 것이 아닐는지.
천문학적 규모의 국고 지원을 받고도 각종 특혜와 도덕불감증, 비리가 엉켜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고 급기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대상이 된 어느 거대 조선회사에 관한 기사와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亂)으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다 거액의 비자금으로 역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어느 재벌 그룹에 관한 기사가
번갈아가며 신문지면을 온통 장식하는 작금의 세태에서는
차라리 ‘중취독성(衆醉獨醒)’을 외치는 현자(賢者)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혼탁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취해 있지도 않아,
아예 독청(獨淸)과 독성(獨醒)을 외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닐까.
이것이 정녕 꿈속에서만 가능한 이상향인가?
아무튼 그런 세상이 온다면
凡人은 그저 아래 길재(吉再) 선생의 흉내를 내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시냇가 초가집에서 홀로 한가롭게 지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에 흥이 절로 나누나.
바깥손님 오지 않고 산새들만 지저귀니
대숲 아래에 자리 깔고 누워 글을 읽는다.
한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때 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모처럼 굵은 빗줄기가 대지를 적셨다.
그 시원함이 국민 모두의 마음속으로 스며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제 20대 국회가 개원을 하였다.
당리당략에 얽매어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19대 국회와는 달리
늘 국리민복을 우선시하는 진정한 민의(民意)의 전당이 되길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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