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와 인재(人災)
2019.07.06 21:12
이미 2주 전이 하지(夏至)였고, 내일이 소서(小暑)이다.
그런가 하면 1주일 후인 12일은 초복(初伏)이다.
바야흐로 더운 여름이라는 이야기이다.
지난달 26일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나, 정작 비는 찔끔거리고 기온만 치솟고 있다.
오늘(6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무려 36.1도였는데,
7월 상순의 기온으로는 80년 만의 더위라고 한다.
벌써 이렇게 더우면 올여름은 그야말로 찜통더위 속에서 보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더위가 올해 처음으로 생긴 기상이변이 아니라서 상황이 심각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기후로 변하고 있다는 말이 이제는 새삼스럽지 않다.
나아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찜통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더위뿐인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오늘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중국 만주에서는 지난 3일에 최대풍속 초속 23m의 강력한 회오리바람(용오름. 토네이도)이 불어 19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열대에 가까운 저위도지역에서나 발생하는 줄 알았던 토네이도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고위도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만주보다 위도가 낮은 한반도도 토네이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이 망쳐놓은 자연환경 탓에 그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인과응보인 셈이다. 이런 자연현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예전처럼 하늘에 대고 주먹질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연재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작금의 대(對)일본 관계는 또 무언가.
일본이 지난 4일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세 가지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최악의 경우 3-4 개월 후에는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실로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일본이 이런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한다. 과연 일본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일본이 경제면에서 세계적으로 부유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지만(그들은 ‘경제대국’임을 자처한다), 그들의 평소 언행은 여전히 예전의 속 좁은 왜국(倭國)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일본에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강제징용에 관한 판결은 우리 대법원이 심사숙고 끝에 법리에 충실하게 내린 판결이다. 사법부는 독립된 기관이고, 그 사법부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법리에 따라 내린 판결을 두고 법리 외적인 관점에서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런데 그에 따른 후속 조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교적인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서, 이는 전적으로 외교 당국이 나서서 해결할 일이다. 강제징용판결과 관련하여 일본이 반발할 것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고, 그 판결이 나온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만큼, 그동안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에서 그에 관한 대책을 세워 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일본의 보복 조치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현실화되기에 이르러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촌부 같은 무지렁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막연히 손 놓고 있다가 속 좁은 일본인들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고, 그제야 뒤늦게 허둥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피해야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이지만, 일본과의 관계에서 당하고 있는 지금의 피해는 정녕 인재(人災)가 아닐까. 감정이나 당파적 이익이 국익을 앞서는 순간 외교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 있음을 우리는 구한말의 난맥상에서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자연재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인재(人災)만큼은 막아야 한다.’
너무나 평범한 말인데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밤에 새삼 곱씹게 된다.
아,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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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인재(人災)만큼은 막아야 한다.’
이 말에 정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