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간 데 없는 향기

2016.04.06 21:14

범의거사 조회 수:462


어제는 청명(淸明)이자 한식(寒食)이자 식목일(植木日)이었다. 

1365일 중에서 이처럼 한 날이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벚꽃,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동시에 피어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에 만화방창(萬化方暢)이.

 

그런데 봄 가뭄과 공해 탓에 하늘이 맑지 못해,

사법연수원 연구실 창가에서 바라보는 일산의 명물 호수공원이 선명히 다가오지 않는다

큰 비가 한차례 내리면 여러 모로 좋을 텐데 기약이 없다 


  호수공원.jpg

                                     [사법연수원에서 본 일산 호수공원의 모습]

 

그래서 그 호수공원 봄의 향기를 가까이에서 직접 맡으려고 호숫가로 갔다.

호수에 내리쬐는 햇볕이 벌써 따갑다는 생각이 든다면 과장일까?

그런데 9층 연구실까지 날아오던 그 봄의 향기가 정작 호숫가로 가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하릴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문방사우(文房四友) 꺼내

익제 이제현(益齊 李齊賢)의 '용야심춘(龍野尋春)'이라는 시를 

예서 죽간체(隷書 竹簡體)로 화선지에 옮겨 보았다.

 

                용야심천.jpg

 

偶到溪邊藉碧蕪(우도계변자벽무)

春禽好事勸提壺(춘금호사권제호)

起來欲覓花開處(기래욕멱화개처)

度水幽香近却無(도수유향근각무)

 

                           우연히 시냇가에 다다라 푸른 풀을 깔고 앉으니

                           봄새들이 좋아하며 술을 들라 권하네

                           자리에서 일어나 꽃 핀 곳을 찾아 나서는데

                            물 건너오던 그윽한 향기 가까이 가니 온 데 간 데 없구나

 

정녕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으나 끝내 못 찾고(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화나무 밑을 지나노라니(歸來適過梅花下. 귀래적과매화하), 

그 나무 끝에 봄이 이미 와 있더라(春在枝頭已十分. 춘재지두이십분)”

는 어느 시인의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닌가 보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총선거가 열기를 더해 간다

20대 국회는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국회의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데

제발 그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온 국민이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멀리서 볼 때는 훌륭한 사람인 줄 알고 애써 뽑아 놓은 선량이 

그 후 실제로 일하는 것을 보니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마치,

향기 나는 곳을 찾아 물을 건너갔더니 정작 그 향기가 어디로 갔는지 온 데 간 데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울러,

정작 봄은 이미 집 앞의 매화나무에 걸려 있는데, 그 봄을 찾아 온 산을 쏘다니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데 있건만,

그걸 모르고 미망(迷妄) 속에서 헤매는 게 인간의 한계이자 비극이 아닐는지.